"탈북민은 '아무나'가 아니다"…中 강제북송, 흔들리는 가치외교 [현장에서]
"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 주민은 ‘아무나(anybodies)’가 아닙니다. 우리는 탈북민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같은 비극을 겪은 듯 눈물을 흘립니다. 먼 훗날 우리가 오늘을 되돌아볼 때 북한 주민을 위해 옳은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2014년 12월 22일 한국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임기 종료를 앞둔 마지막 안보리 회의에서 오준 당시 주유엔 대사는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관심을 당부했다. “안보리를 떠나며 우리는 북한에 있는 무고한 형제자매들을 위한 간절한 마음을 담아 북한 인권 문제를 이야기한다”면서다. 오 대사의 이날 연설은 “(북한 주민은) 우리와 똑같은 인권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묵직한 메시지로 막을 내렸다.
오 대사의 연설 10년째가 되는 2024년 한국은 다시 한번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임기를 시작한다. 그사이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은 급격히 높아졌지만 반대로 북한 주민의 인권은 한층 처참해졌다. 코로나19에 따른 국경 봉쇄와 가뭄·홍수 등 자연재해가 겹치며 경제난이 가중됐고, 김정은 정권은 핵·미사일 야욕을 본격화하며 국제적 왕따 신세가 됐다.
北 국경 열리자 지옥문도 열렸다
일각에선 조만간 중국이 랴오닝성 백산 지역 등에 구금된 탈북민을 중심으로 2차 대규모 강제북송에 나설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구금된 재중(在中) 탈북민 입장에선 북한의 국경 개방됨과 동시에 지옥문이 열린 셈이다.
우리는 종종 북한 주민이 헌법상 우리 국민이란 점을 잊는다. 탈북민 역시 우리 국민이고, 강제북송되는 탈북민 문제는 우리 국민의 인권 문제다. 더구나 윤석열 정부는 인권·자유를 중심에 둔 가치 외교를 대외 전략의 핵심 기조로 삼고 있다.
하지만 정작 중국의 탈북민 강제북송 건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미온적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 13일 정재호 주중대사가 “중국 체제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 건 한·중 관계의 최전선에 있는 주중대사관이 탈북민 강제북송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지 의심케 한다.
통일부는 “외교채널을 통해 강제북송이 재발하지 않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지난 23일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 정례브리핑)고 하지만, 이같은 ‘조용한 외교’를 통해 중국의 반복되는 북송을 저지하는 게 가능할지 의문이다. “어떤 경우에도 해외 체류 탈북민이 자유의사에 반해 강제북송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만 반복하는 외교부 역시 무책임한 건 마찬가지다. 당위만 있을 뿐 행동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한·미·일 약속한 “북한 인권 공조” 나서야
26일 왕이(王毅)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의 미국 방문을 계기로 미·중 정상회담 개최가 가시화한 만큼 시기적으로도 한·미·일이 공조하는 대중(對中) 인권 압박의 효과는 극대화할 수 있다. 일본의 강력한 요청과 물밑 작업으로 역대 미·일 정상회담과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 결과문서에 납북자 문제가 수차례 언급된 것처럼 한국 역시 탈북민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한 강력한 대미 외교에 나서야 한다. 미국을 움직여 각급에서 이뤄질 미·중 간 논의 테이블의 의제로 북송 문제를 다루게 해야 한다.
북한 주민과 탈북민을 “아무나”로 보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하는 정부의 대응 앞에 가치외교는 시험대에 섰다. 9년 전 오준 대사의 호소를 다시금 되새겨야 할 때다. “먼 훗날 우리가 오늘을 되돌아볼 때 북한 주민을 위해 옳은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길 바랍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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