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관은 민생 현장 고민하는데, 윤 대통령은 이념 현장으로

안홍기 2023. 10. 26.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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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실에서 일하는 실무자들의 고민이 깊다.

여당의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8일 만인 지난 19일 윤 대통령은 "나도 어려운 국민들의 민생 현장을 더 파고들겠다"면서 "용산의 비서실장부터 수석(비서관), 비서관 그리고 행정관까지 모든 참모들도 책상에만 앉아 있지 말고 국민들의 민생 현장에 파고들어서 살아있는 목소리를 직접 들으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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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 현직 대통령 첫 박정희 추도식 참석... 이태원 1주기 추모식은 불참 예고

[안홍기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긴급 경제·안보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통령실에서 일하는 실무자들의 고민이 깊다. 자기가 일하고 있는 분야에선 어떤 민생 현장을 파고들지가 고민거리다. 기자에게 의견을 물은 행정관도 있었다.

여당의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8일 만인 지난 19일 윤 대통령은 "나도 어려운 국민들의 민생 현장을 더 파고들겠다"면서 "용산의 비서실장부터 수석(비서관), 비서관 그리고 행정관까지 모든 참모들도 책상에만 앉아 있지 말고 국민들의 민생 현장에 파고들어서 살아있는 목소리를 직접 들으라"고 지시했다. 국정 기조가 '이념'에서 '민생 현장'으로 전환되리라는 전망이 나왔다.

지난 8월 28일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윤 대통령이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라고 말한 다음날, 대통령실을 취재하는 기자들이 대통령실 관계자에게 윤 대통령이 이념을 강조하는 배경이 무엇인지 설명을 부탁했다.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달리 설명할 필요도 없이 여기 있는 지금 우리 자체가 그 증거입니다. 똑같은 DNA를 가진 민족이 있습니다. 한쪽은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경제를 발전시키고 문화 강국으로 부상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다른 한쪽은 세계 최악의 경제 파탄국, 세계 최악의 인권 탄압국이 됐습니다. 도대체 두 나라에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이죠?

똑같은 사람, 똑같은 DNA를 가지고 있는데, 바로 이념과 체제의 차이입니다. 한쪽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통해서 세계가 부러워할 정도로 발전했고, 또 한쪽은 세습 독재, 통제 경제를 통해서 나락으로 떨어진 겁니다. 그런데 이념을 얘기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남북의 체제 경쟁이 남한의 승리로 끝났다는 건 이제는 세계가 알고, 북한 사람들도 안 지 오래됐다. 지금 한국에 세습 독재나 통제 경제를 주장하는 이들이 있단 말인가? 아니면 체제 경쟁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것인가?

이렇게 우격다짐으로 그 중요성을 강변해왔던 이념이, 보궐선거 뒤엔 '민생 현장'으로 대체된 건 무엇을 의미할까.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념이 아니라 선거라는 얘기다. 이념을 내세우면 선거에서 이길 줄 알았는데, 졌다. 다가오는 총선이 가장 중요하니 이제 이념 말고 다른 걸 내세우겠다는 것이다.

박근혜 만난 윤석열, 이 행보의 의미
 
 윤석열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2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에서 열린 박 전 대통령 서거 제44주기 추도식에서 함께 박수치고 있다. 2023.10.26
ⓒ 연합뉴스
 
그렇다면 국정기조의 전환은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을까. 

윤석열 대통령은 26일 중동 순방을 마치고 서울공항에 도착한 뒤 여독을 풀 사이도 없이 박근혜씨를 만났다.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44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윤 대통령은 추도사를 통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렸고, 박근혜씨에게는 "자녀로서 그동안 겪으신 슬픔에 대하여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매년 열렸지만 이전의 현직 대통령들은 참석하지 않던 행사다. 이 행보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등을 돌리기 시작한 보수층을 되돌려세우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이 행사에선 문재인 정부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발언이 나왔다. 행사를 주최한 정재호 민족중흥회 회장은 전 정부를 향해 "문재인 주사파 운동권 세력", "배은망덕의 극치", "북한 김정은의 비위 맞추기에 급급했던 '자칭 남쪽 대통령' 문재인" 등의 말로 문 대통령과 전 정부를 비방했다. 대통령이 직접 말한 게 아니라 해도, 전 정부에 각을 세우는 행사에 대통령이 참석한 꼴이 되었다.

한편으론 29일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10.29 이태원참사 1주기 시민추모대회'에 초청받은 윤 대통령이 불참하기로 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대통령실은 대통령에 참석을 건의하려 했지만, 이 행사에 야당이 대거 참석한다는 점 때문에 정치집회 성격이 짙다고 보고 윤 대통령의 불참을 확정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어떤 민생 현장을 파고들지 고민했던 대통령실 직원들의 머리 속은 더 복잡해진다. 정부의 도움이 필요한 현장, 위로가 필요한 현장을 찾으라는 얘기인줄 알았는데, 대통령의 행보는 '지지층을 결집시킬 수 있는 현장' '전 정부를 비난하는 현장'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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