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기·마블링까지…대체육의 진화
국내 식품 기업이 미래 먹거리로 ‘대체육’ 사업을 정조준했다. ‘당장 국내 시장은 크지 않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대체육 사업에 뛰어들지 않은 곳을 더 찾기 힘들 정도로 관심이 뜨겁다. 식량 문제와 탄소 배출 이슈 탓에 ‘언젠가는 대세가 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저마다 제품군을 늘리고 연구개발을 확대하는 등 대체육 관련 투자를 늘려가는 추세다. ‘맛없는 콩고기’라는 인식도 흐려진다. 캔 햄·캔 참치를 비롯해 버섯 고기, 대체 고등어 등 제품이 다변화되고 있는 데다, 이제는 모양과 식감까지 실제 고기와 흡사하게 만들 수 있는 기술도 등장했다.
CJ 채소 만두, 글로벌 수요 급증
기존 대체육 시장의 한계 중 하나는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먹어보고 싶어도 접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많지 않았다. 최근에는 달라졌다. 제품 개발이 활발히 진행된 덕분에 이제는 대체육을 활용한 제품 종류 수가 빠르게 늘어났다. ‘스팸’ 같은 캔 햄을 비롯해 만두, 참치, 치킨 등으로 다변화되는 모습이다. 스타벅스에서도 대체육을 활용한 신제품을 내놓을 정도다.
포문을 쏘아 올린 건 신세계푸드다. 2021년 론칭한 대체육 브랜드 ‘베러미트’를 통해 다양한 대체육 신제품을 선보이는 중이다. 최근 대체육 시장에서 가장 제품 개발이 활발한 ‘식물성 캔 햄’ 역시 신세계푸드가 지난해 8월 업계 최초로 내놨다. ‘베러미트 식물성 런천 캔 햄’은 대두단백과 식이섬유 등 100% 식물성 원료로 동물성 햄 맛을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올해 9월에는 베러미트 대체육을 활용한 새 브랜드 ‘유아왓유잇’을 추가했다. 강남 스타필드 코엑스몰에 레스토랑을 열고 여러 대체육 제품 판매를 시작했다. 예를 들어 베러미트 고기로 만든 ‘식물성 자장면’, 대체육 커틀릿을 넣은 ‘멘치카츠 샌드위치’, 베러미트 다짐육을 넣은 ‘식물성 라구’ 등을 파는 식이다.
신세계그룹 계열사를 활용한 대중화 전략도 인상적이다. 올해 6월 신세계푸드는 스타벅스에서 베러미트 대체육을 활용한 신제품 3종을 선보였다. 대체육 미트볼을 활용한 샌드위치와 수프 등이다. 판매 시작 2주 만에 10만개를 돌파할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전국 이마트 내 ‘E-베이커리’ 등 베이커리 매장에서도 베러미트를 활용한 토스트·버거 등을 내놓은 바 있다.
동원F&B는 올해 3월 ‘대체 캔 참치’를 시작으로 대체육 제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식물성 대체 식품 브랜드 ‘마이플랜트’를 앞세워서다. 식물성 참치 ‘동원참치 마이플랜트 오리지널’은 100% 식물성 원료로 만들어 콜레스테롤 함량 0%를 자랑한다. 그간 축적한 참치 가공 기술력을 기반으로 기존 참치와 동일한 식감을 낼 수 있도록 참치 특유의 살코기 결과 형태를 만들어냈다. 칼로리는 기존 살코기 참치 제품 대비 최대 31% 낮춘 것이 특징이다.
올해 8월에는 ‘캔 햄’ 신제품을 선보이며 도전장을 냈다. 국내 식물성 캔 햄 가운데 가장 낮은 칼로리(175㎉/100g)로 차별화를 꾀했다. 짠맛은 유지하면서 나트륨 함량을 줄일 수 있도록 2018년 독자 개발한 원료인 ‘디솔트’ 기술력을 적용해 캔 햄 본연의 맛을 그대로 구현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스팸’을 만드는 CJ제일제당도 최근 식물성 식품 브랜드 ‘플랜테이블’을 통해 식물성 캔 햄을 내놓으며 견제에 들어갔다. 올해 9월, 일부 기업 자사몰 등 B2B 채널에 ‘플랜테이블 식물성 캔 햄’ 선물세트 판매를 시작했다. 풀무원 역시 대체육 캔 햄 제품을 비롯해 식물성 치킨 텐더와 대체육 직화 불고기, 닭강정 등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캔 햄뿐 아니라 떡갈비, 만두, 함박스테이크까지 다양한 제품군을 구성했다. 특히 올해부터는 글로벌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성과를 내고 있다. 식물성 만두, 이른바 ‘채소 만두’ 수출이 크게 증가하면서 올해 9월 기준 누적 수출액 약 100억원을 달성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배가량 늘어난 액수다. 올해 10월에는 ‘비비고 잡채 찐만두’ ‘비비고 청양고추 찐만두’ 등 2종을 영국과 호주, 싱가포르에 새롭게 선보이기도 했다.
롯데는 ‘닭고기’ 대체육 제품에 열심이다. 롯데웰푸드 ‘제로미트’는 국내 최초로 치킨 너깃과 가스 제품을 대체육으로 선보인 바 있다. 통밀에서 100% 순식물성 단백질만을 추출해 고기 근섬유를 재현하고 닭고기 특유의 쫄깃한 식감을 구현했다는 평가다. 롯데중앙연구소와 롯데웰푸드가 약 2년간 연구를 통해 완성한 결과물이다.
3D 바이오 프린팅으로 식감 구현
그간 대체육 한계로 꼽혔던 부족한 맛과 식감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 연구개발 투자도 늘어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올해 10월 3D 바이오 프린팅 기술을 보유한 ‘티앤알바이오팹’과 대체육 공동 개발 협약을 체결하며 업계 이목을 집중시켰다. 티앤알바이오팹은 식품 사업과는 무관한 ‘메디테크’ 기업이다. 3D 바이오 프린팅 기술로 인공 조직과 인공 장기를 개발하는 재생의학 스타트업이다. 바이오 프린팅 기술로 근육과 혈관을 구현하는 것처럼 섬세한 인공육 개발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배양육’ 투자에 적극적인 기업도 많다. 배양육은 식물성 재료로 만든 ‘식물성 고기’와는 다른 형태의 대체육이다. 동물에서 추출한 세포를 영양분이 담긴 세포 배양액으로 길러내 맛과 모양을 구현한다. 기존 고기와 큰 차이가 없다.
종가집 김치를 운영하는 대상은 배양육 투자에 가장 적극적인 기업 중 한 곳이다. 동물세포 배양 선도 기업인 ‘엑셀세라퓨틱스’ ‘스페이스에프’ 등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지분 투자를 진행했다. 대상은 배양육 대량 생산을 위한 배양 설비를 도입하고 2025년까지 배양 공정을 확립해 제품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상 관계자는 “대상은 배양 배지 원료인 여러 아미노산과 식물성 유용 소재 제조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직접 생산도 하고 있다”며 “우수한 품질의 원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어 배양육의 가장 큰 한계로 지목되는 비싼 제조원가를 절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롯데는 롯데중앙연구소를 중심으로 배양육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롯데중앙연구소는 올해 7월 배양육 전문 기업 ‘팡세’ ‘네오크레마’와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배양육 사업을 본격화했다. 이들과 협업해 식용 배지(배양액)를 개발, 배양육에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롯데중앙연구소는 대체육 개발을 위해 롯데벤처스와 함께 푸드테크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농심 역시 최근 벤처 펀드에 100억원을 출자하며 배양 관련 스타트업 발굴 육성에 나섰다. 기존 식물성 대체육 브랜드인 ‘베지가든’과 시너지를 노린다는 계획이다. 농심은 올해 10월 스타트업 투자사 두 곳이 운용하는 투자 펀드에 각각 50억원을 출자하기로 했다. 배양육 등 푸드 밸류체인을 혁신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 육성에 집중할 예정이다.
친환경·건강 트렌드에 규모 급증
대체육 시장 성장 잠재력에는 이견이 없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AT커니는 2040년까지 전 세계 육류 시장 60%를 인공육이 대체할 것으로 예상했다. 전 세계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는 데 반해 단백질을 공급할 축산업 성장 속도는 더디기 때문이다. 가축을 기르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와 메탄 등 지구온난화를 유발하는 물질이 배출되는 탓에 환경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올해 글로벌 시장 규모는 8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아직 대체육 수요가 해외 대비 부족하다고 평가되는 국내 시장도 꾸준히 성장 중이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대체육 시장은 2018년 75억원에서 2022년 212억원으로 4년 만에 약 3배 성장했다. 2025년에는 300억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최근 소비 환경도 우호적으로 변하는 모습이다. 신세계푸드가 전국 2030세대 남녀 1000여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대체육 조사에서 67.8%가 대체육에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대체육 소비 이유로는 ‘환경을 생각해서(71%, 중복응답 기준)’ ‘동물 복지 차원(57.7%)’ 등 답변이 많았다.
국내 대체육 스타트업 기술이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점도 향후 전망을 밝힌다. 국내 최초 대체육 브랜드 ‘언리미티드’로 잘 알려진 지구인컴퍼니가 최근 세계 최초로 영국 정부의 글로벌 스타트업 유치 프로그램(GEP)에 선정되는가 하면 ‘더플랜잇’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주가 후원하는 한 글로벌 단백질 식품 개발 대회에서 결승에 오르기도 했다.
‘버섯 고기’로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는 ‘위미트’도 빼놓을 수 없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버섯 등 균류 소재를 활용해 정육 고기 같은 원료육을 개발한 푸드테크 스타트업이다. 버섯 고기로 만든 치킨 대체 식품을 시작으로 꿔바로우, 버섯통살 치킨덮밥 등을 선보이며 버섯 고기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다. 최근 싱가포르에서 열린 ‘빅 아이디어 식품 경진대회(BIFC)’에서는 아시아태평양 500여개 대체 식품 참가 업체 중 2위를 차지하며 글로벌에서도 경쟁력을 인정받았다. 설립 2년밖에 안됐지만 올해 호주 시드니 수출을 시작으로 홍콩·싱가포르까지 글로벌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밖에 실제 쇠고기 등심 마블링 패턴을 구현한 배양육(약 3㎏)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티센바이오팜’, 실제 닭고기와 유사한 결 형성 습식 대체육을 국내 최초로 개발한 ‘휴닉’ 등도 유망주로 꼽힌다.
양 사는 삼성웰스토리와 퓨처플레이가 공동으로 스타트업을 발굴·육성하는 프로그램에 나란히 선정되기도 했다. 한 식품 투자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기술력을 보유한 국내 대체육 스타트업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중”이라며 “대체육 시장에 관심이 많은 식품 대기업과 앞으로 제휴·투자가 활발히 전개될 경우 훨씬 더 고도화된 기술과 제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기차도 보조금 주는데”…대체육도 지원을
국내 푸드테크 권위자인 이기원 서울대 푸드테크학과 교수(한국푸드테크협의회 회장)는 다른 무엇보다 대체육의 ‘사회적 가치’에 주목한다.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이 주요 키워드로 떠오른 가운데, 고기를 대체육으로 전환할 경우 축산업에서 배출하는 탄소를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A. 대체육 시장 성장은 ‘정해진 미래’다. 대체육 제품이 현재 소비자가 만족하는 품질까지 올라왔는지와는 상관없이 언젠가 대체육 시장은 무조건 대세가 된다. 기존 축산 방식만으로는 앞으로 지구나 인간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식품 기업이 해당 시장을 선점할 것이냐가 관건인 상황에서, 저마다 관련 사업에 투자를 늘려가는 현재 분위기는 자연스럽다.
Q. 대체육 시장이 더 빠르게 안착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과제는.
A. 대체육 시장에서 ‘가공육’ 분야는 어느 정도 성장을 이뤘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아직 ‘원육’ 분야 기술 개발은 미흡한 상황이다. 쉽게 말하면 식물성 콩고기 같은 가공 제품은 현재도 잘 만들지만, 고기 특유의 붉은색이나 질감, 식감 등을 구현해낼 수 있는 원천 기술 특허는 부족하다. 소비자가 식물성 고기에 갖는 거부감 중 가장 큰 원인도 기존 고기와 비슷하지 않은 맛과 생김새에 있다. 대체육 전문 기업이 부족하다는 점도 한계다. 현재 시장 규모가 크지 않다 보니 대체육 기술 특화 기업끼리 협력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되지 않았다.
Q. 대체육 시장에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보는지.
A. ‘저탄소 식생활’에 대한 정부 정책 지원도 필요하다고 본다. 사회적 가치를 고려해 전기차에 보조금 지원을 해주는 것과 추구하는 목표가 다를 바 없다. 학교와 같은 공공기관에 ‘식물성 고기 먹는 날’을 정하거나 공공 차원에서 저탄소 식생활에 대한 홍보를 추진하는 등 여러 방안을 강구해볼 만하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1호 (2023.10.25~2023.10.3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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