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의 ‘중립금리’ 딜레마…“경기 침체에도 ‘통화 완화’ 힘들수도”
향후 통화정책의 변수로 ‘중립금리(neutral rate of interest)’가 주목받고 있다. 중립금리란 한국은행 등 각국의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결정할 때 참고로 하는 준거 금리로,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기조적 물가하락)을 유발하지 않고 잠재성장률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이론적 금리 수준을 말한다.
2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중립금리는 2~3% 수준으로 추정된다. 한은은 현재 기준금리가 연 3.5%로 중립금리보다 소폭 높은 상태이기 때문에 ‘긴축적’인 상태라고 말한다.
최근 중립금리 상승론이 주목받는 이유는 미국의 특수한 경제 상황 때문이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지난달 20일(현지시간) 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기준금리가 5.25%~5.50% 범위로 높음에도 미국 경제가 견조하고 노동시장도 강력한 것은 중립금리가 올라갔기 때문일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의 중립금리가 올라가는 주된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건 불어난 정부부채다. 미 정부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95% 수준으로, 2020년 80%에서 15%포인트 급증했다. 미 재무장관 출신인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재정적자 규모가 커진다면 추후 중립금리를 더 끌어올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외신들도 “미국의 중립금리가 높아져 고금리 장기화가 아니라 고착화할 가능성이 있다(WSJ)”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문제는 한국의 경우, 주요국과 달리 성장이 둔화해 중립금리가 하락하더라도 일본처럼 ‘나홀로 통화 완화’ 정책을 고수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기축통화국이 아닌 한국은 한ㆍ미 금리 격차(현재 2%포인트 차) 장기화에 따른 원화 약세와 자본유출 우려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서다.
유혜미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일본은 한국보다 내수 중심인 데다 엔화가 기축통화이기 때문에 장기간 저금리 정책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이 이를 지속 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며 “만약 중장기적으로 한국만 성장이 둔화해서 중립금리가 하락한다면 통화정책으로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고 구조조정 등 다른 경기부양책을 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9일 금융통화위원회 후 기자간담회에서 “선진국은 (중립금리가) 오르고 우리는 내릴 경우 어떤 변화가 있을지 모른다. 한은 내부에서 논의해봐도 답이 잘 안 보인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한은 관계자는 “중립금리를 추정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어느 한 가지 방법이 절대적으로 우월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내부적으로도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며 “자칫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중립금리 추정치를 섣불리 공개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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