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르포]아세안 中 경제 의존, 고속철도 건설로 가속도
1000㎞ 10시간만에 주파
라오스, 농산물·원자재 수출↑
2조원대 중국 부채는 문제
중국 경제 종속 심해질 수도
코로나19 이후 다시 북적이는 태국 방콕. 공항서부터 관광지까지 외국인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오랜 침체를 겪은 대학가도 활력을 되찾았다. 최근 태국 대학의 가장 큰 손님은 다름 아닌 중국 유학생이다. 태국어는 한마디도 못 하는 귀한 손님들이 창출하는 거대한 경제효과로 인해 대학 당국까지 전전긍긍할 정도. 중국 젊은이들이 선진국인 미국과 유럽만 갈구하는 것이 아닌 게 흥미롭다. 아시아의 국제도시인 방콕, 싱가포르, 마닐라 등지도 젊은 중국인들이 학업을 발판으로 각종 글로벌 사업을 꿈꾸고 있다. 특히 저렴한 물가와 세계로 열린 국제도시 방콕의 인기가 뜨겁다.
◇철도로 인해 뒤바뀐 지정학= 여기엔 방콕을 중심으로 하는 동남아의 지정학적 위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흥미롭다. 과거 중국에서 방콕까지 가려면 항공편이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윈난성 쿤밍(昆明)에서 라오스 비엔티안(Vientiane)까지 고속철도가 놓였기 때문에 육로도 가능해졌다. 라오스의 수도이자 역사 도시 비엔티안은 메콩강을 사이에 두고 태국과 국경을 접한다. 중국과 멀찌감치 떨어진 태국과 캄보디아까지 순식간에 중국의 이웃사촌이 됐다. 중국은 대륙 전체를 최첨단 고속철도로 촘촘히 연결한 ‘철도의 땅’이다. 그 기세가 이제는 국내를 넘어 아시아 대륙 전체를 향하고 있는데, 그 선봉장이 바로 대륙의 서남쪽 관문인 쿤밍에서 라오스를 관통하는 아세안 익스프레스인 셈이다.
험준한 산맥과 물길에 가로막혀 과거 3박 4일도 부족했던 1050㎞의 국경지대를 지나는데 이제는 통관 시간 포함 10.5시간으로 단축됐다. 난공사로 꼽힌 라오스 구간(417㎞)은 2015년부터 라오스 국내총생산(GDP) 3분의 1인 7조원을 들여 2021년 12월에 완성됐다. 중국의 자본과 기술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시스템 전체가 모조리 중국식이다. 특히 중국의 기술력이 총동원됐는데, 라오스 구간에만 교량이 61㎞ 터널이 198㎞에 달한다.
이 고속철도는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 탓에 주로 화물수송에 전념하다 올해 4월부터 국경을 넘는 승객 수송을 본격화했다. 이동의 자유가 주어지니 특히 라오스행 열차의 인기가 폭발적인 것은 당연한 결과다. 지난 2년 가까이 하루 평균 1만1000t의 화물이 노선을 오갔고, 8월 말까지 총 승객수도 200만명을 넘어설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중국의 경제 영토 남방으로…중국으로 향하는 과일= 중국의 고속철 시스템의 동남아로의 확장은 남방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의 기점사업이다. 최종 목표는 방콕을 거쳐 말레이반도를 타고 싱가포르까지 연결하는 것. 중국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방법은 라오스뿐만 아니라 미얀마나 베트남 방향도 있지만, 라오스가 맨 먼저 선택된 이유도 충분하다. 내륙국가 라오스가 중국의 인프라 투자를 가장 뜨겁게 환영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반중(反中) 정서’가 가장 약한 나라이자, 바다로 연결된 항구가 없어 경제발전이 가장 뒤처진 상황. 인구는 적고 기술력이 부족해 철도 건설은 언감생심이었는데, 중국이 막힌 혈을 뚫어 준 것이다.
개통 후 22개월간의 쿤밍~라오스 고속철도 운영에서 가장 특기할 만한 사실은 화물 물동량의 90%가 라오스에서 중국으로 향한다는 데 있다. 제조업이 취약한 라오스가 중국산 공산품을 대거 수입할 것 같지만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중국으로 수출되는 주요 제품은 과일, 카사바 가루, 보리, 고무, 철광석 등이다. 중국이 부족한 농산물과 원자재를 동남아를 통해 수급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 중 가장 흥미로운 품목은 과일이다. 고속철을 통해 동남아 특산품인 ‘두리안’과 ‘망고’가 중국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이를 위해 해당 고속철도는 냉장 시설(콜드체인)을 갖춘 화물기차를 운영하고 있다. 중국이 빨아들이는 동남아 과일의 수요는 실로 엄청난 규모인데, 가장 값비싼 과일인 두리안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라오스에만 지난해 50㎢(여의도 6배 넓이)의 전용 농장이 만들어졌다. 망고와 리치 가격 상승도 중국의 내수 수요 덕분이다. 인근 태국과 베트남에서 과거 화물 트럭을 활용하던 것을 이제는 라오스 고속철도로 제철 과일을 공수할 수 있게 됐으니, 소득 2만달러 시대에 성큼 다가선 중산층 중국인의 식탁을 동남아가 책임지는 시대가 된 것이다.
신화통신 CGTN 등 중국 관영 언론 역시 자국의 지지부진한 경제 상황과 늪에 빠진 일대일로 사업의 부활을 위해서라도 라오스로의 진출을 ‘우호증진’과 ‘상호이익’이라는 미사여구로 대대적으로 포장하고 있다. 여기엔 중국의 위상을 라오스에만 그치지 말고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전역으로 확대하자는 메시지도 숨어 있다. 이 밖에도 전통적 미개척 지대인 윈난성 남부 지역도 최대 수혜 지역으로 꼽힌다. 어찌 되었건 중국의 경제 영토가 남쪽으로 크게 늘어난 셈이다.
올해 특히 중국인의 라오스 투자가 급증했고, 중국인 집단 거주지도 크게 늘었다. 대표 관광지인 루앙프라방과 비엔티안은 중국인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국제문제 전문가들은 "인구 740만명에 불과한 라오스 경제가 급속도로 중국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라고 경고한다.
아세안에서 가장 낙후된 라오스 입장에선 고속철도를 내륙국가의 한계를 극복할 좋은 기회로 여긴다. 대륙부 아세안에서 사상 최초로 고속철도를 도입한 국가가 된 만큼 이를 기반으로 낙후된 북부 산악지대와 메콩강 유역을 획기적으로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기대감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고속철 건설로 생긴 약 2조원 규모의 대중국 부채는 풀어야 할 숙제다. 한때 중국의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막았던 강력한 자연 장벽의 빗장이 허물어지면서 라오스와 아세안 경제는 점점 더 북쪽의 큰 이웃 국가에 종속될 위기에 놓였다.
정호재 고려대 아세안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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