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품었을 꿈과 사랑, '광기'에 담다

김상목 2023. 10. 26.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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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소개] <너와 나>

[김상목 기자]

<너와 나>는 바람에 지는 이파리에도 괴로워할 수밖에 없었던 감독이 2시간 꾹꾹 눌러 자신에게, 그리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고픈 손 편지 같은 작업이다. 이 영화는 명백히 2014년 4월의 어느 날, 그 하루 전을 담아내고자 한다.

'하루 전'이라는 좌표 설정은 본 작품이 지금까지 4.16을 다룬 여타의 작업들과 결정적으로 차별화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해당 소재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머릿속에 등장할 이미지인 검푸른 바다는 끝내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는 그런 충격과 공포의 순간과 멀찌감치 떨어져 존재한다. 거리두기의 태도가 확고한 셈이다.

그 대신에 이 영화는 색다른 과잉에 도전한다. 우리가 2014년 4월 16일 이후 영영 잃어버리고 만 수백의 안타까운 이들이 각자의 처지에서 누렸던, 그리고 좀 더 누릴 수 있거나 누려야만 했던 개별의 삶과 행복의 가능성에 대해 영화를 만든 감독과 제작진은 끝장을 보겠다는 각오로 매달린다. 그렇게 집착에 가까운 태도로 그들을 연민하고 애도하려 작정한 영화다. 마치 원수를 갚고야 말겠다는 무협지의 주인공 마냥 감독은 영화 내내 시종일관 그 기세로 밀고 나간다. 전혀 아무런 타협도 우회도 없다.

친구와 함께 수학여행을 가고픈 아이의 숨은 욕망
 
▲ "너와 나"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그린나래미디어㈜
 
'세미'는 다음날 인생에서 단 한번 지나가는 이정표 격인 수학여행 출발을 앞두고 있다. 동료들은 잔뜩 부푼 기대감으로 이것저것 챙기고 준비하는 사이, 세미 혼자 안절부절 못하는 중이다. 세미에겐 절친 그 이상의 존재인 동기 '하은'이 있는데, 하필 하은은 직전에 자전거와 부딪히는 바람에 다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한 상태이다. 물론 하은이 중환자실에 있거나 생명이 위독한 건 아니다. 다만 거동이 불편해 수학여행에 함께 갈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세미는 어떻게든 하은과 함께 수학여행을 가고 싶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미칠 것 같은데 하필 그 전날 밤 꿈자리가 뒤숭숭했다. 세미의 꿈속에서 하은이 풀밭에 엎드린 채 죽어 있던 것이다. 불길한 꿈 때문에 꺼림칙해진 세미는 하은을 어떻게든 데리고 수학여행길에 올라야 한다는 비상한 결의로 충만해 있다. 수업도 땡땡이치고 하은의 병실로 찾아간 세미는 온갖 수단을 다한 회유로 하은에게 조건부 승낙을 받는다.

하지만 형편 넉넉하지 않은 하은의 집안 사정에다 전날 급하게 수학여행경비를 마련해야 할 상황. 물론 새미는 마음만 앞섰지 실질적인 대비는 전무한 상태다. 하은에게 선물을 받았지만 쓸 일 없는 캠코더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낸 둘은 대충 중고거래 가격을 알아본다. 얼추 수학여행 경비랑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둘은 후다닥 중고거래 매물을 내놓는다.

하지만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하은과 함께 내일 길 떠날 것을 재촉하는 세미에 비해 하은의 속내는 통 알 길이 없다. 진행상황만 봐서는 새미 혼자 길길이 설치는 것처럼 보인다. 하은은 빙그레 잘 웃지만 정작 수학여행에 열의는 그리 없어 보인다. 그리고 무엇인가 자꾸만 숨기는 모양새다. 새미는 자기 마음 몰라주는 하은이 원망스럽고 죽고 못 살 것 같은 상대에게 자신이 모르는 은밀한 무엇인가 감춰져 있다는 것을 참을 수 없다. 끝내 갈등이 폭발하고 다툼으로 이어진다. 반나절 만에 둘은 헤어지고 연락이 두절된다. 하지만 일정한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 새미는 이제 다시 하은이 걱정되어 안절부절 따름이다. 과연 둘은 함께 수학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친구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온갖 상황 묘사가 대단하다!
 
▲ "너와 나"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그린나래미디어㈜
 
그런데 세미와 하은의 관계는 보통의 단짝 친구를 넘어서는 것처럼 보인다. 세미는 하은에게 집착을 보인다. 새미는 하은과 모든 것을 공유해야만 한다. 마치 애정결핍이나 소유욕처럼 보일 정도다. 하은은 성격도 무던하고 인기가 두루두루 많지만 정작 속마음 나누는 친구는 오래 알고 지내는 '다애' 정도다. 그렇게 차이가 나는 둘은 자석의 동일 극과 반대 극이 서로 밀어내고 달라붙는 것처럼 끊임없이 붙었다 떨어지기를 영화 속에서 반복한다. 물론 그런 밀고 당기기를 주도하는 건 새미이다. 하은은 벙글벙글 웃으며 그런 새미의 바가지를 받아주는 것처럼 보인다. 따져보면 은근히 궁합이 잘 맞는 커플이다.

새미와 하은은 꽤 차이 나는 캐릭터이지만 공통적으로 어떤 대상에게 아낌없이 관심과 사랑을 투여하려는 점은 동일하다. 하은은 최근에 오래 동고동락했던 반려 견 '젤리'와 이별의 아픔을 겪었다. 새미는 반려 앵무 '조이'와 죽고 못 사는 관계다. 이들은 교정 한 구석에 차디차게 굳은 작은 동물의 유해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매장해줘야 마음이 놓인다. 애타게 집 나간 반려 견을 찾아주려 밤길을 헤매고 담을 넘는 수고를 기꺼이 감내한다.

모난 구석도 있고 이기적일 때도 있지만 그 나이 또래의 선량함을 유감없이 뿜어내는 그런 존재들의 표상이랄까. 그들의 친구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언제든지 옥신각신 다투기도 하지만 유쾌하게 훌훌 넘기고 위로하거나 공감해줄 수 있는 그런 청춘의 군상 표본을 보는 느낌이다. 대책 없이 까르르 넘기기도 하지만 친구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드는 좋은 친구들을 보고 있자면 그들 앞에 다가올 예정된 비극이 더 견딜 수 없을 지경이다.

그런 존재감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너와 나>는 시종일관 새미와 하은을 비롯해 수학여행을 떠나게 될 동료들이 등장하는 장면에 이들이 마치 신기루로 보이게 만들려고 시도한다. 마치 지난 세기말 이와이 순지의 영화들에서나 쓰일법한 과도한 필터를 시작부터 끝까지 뿌옇게 내뿜는다. 그래서 영화는 몽환적인 느낌이 은근히 짙다. 그런 과잉된 이미지 조성과 함께 실제 영화 속 현실감과 심리묘사의 시각화가 교차되면서 환상성은 배가된다. 철저히 계획된 처리과정임은 확실히 전달된다. 그렇다면 용도가 궁금해지는 단계로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마련이다.

그렇게 목적을 명확히 띄고 배치된 장치들 덕분에 관객으로선 어디까지가 실제 주인공들의 눈앞에 펼쳐진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그들(특히 새미의 시선) 심리의 표현인지 칼 같이 구분하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다. 특히 다른 주변인물들이 사라지고 새미와 하은, 단 둘만이 남게 되는 대면의 순간들에서는 언어 외적인 수단까지 극한의 클로즈업으로 집중된다. 그렇게 온갖 방법이 총망라된 둘의 감정 선과 시시각각 변화는 관객이 상당한 집중력을 유지하지 않고서는 순간순간 놓치기 딱 좋을 정도로 팽팽하고 촘촘하게 들어차 있다. 이들의 '금단의 사랑'이 갖는 무게감을 소화하려면 그 정도 긴장은 필수일 테다.

의도된 과잉을 통해 이 영화는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는가?
 
▲ "너와 나"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그린나래미디어㈜
 
(다들 짐작했을 테지만) 모든 상황의 출발점이 된 새미의 예지몽은 결국 수미상관을 이루고 만다. 새미가 꾼 꿈의 온전한 형태와 전모는 이야기의 막판에 가서 관객 앞에 시각적으로 구체화된다. 상징과 암시가 가득한 해당 묘사를 풀어내기 위해 주인공들은 하루 동안 그 치열한 밀고 당기기 과정을 지켜봐온 셈이다. 그렇게 모든 실마리가 풀리고 감정이 절정에 달하는 마법 같은 순간이 도래하다. 뭉클하고 애잔하다. 헤어질 결심을 새미와 하은은 도무지 내리지 못한다.

하지만 슬슬 끝을 내야 할 때가 오게 마련이다. 이쯤 되면 그만 정리하고 에필로그 장면을 선보일 때가 지났음에도 감독은 그 애잔한 순간을 놔줄 수 없다는 것 마냥 도무지 끝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라도 모두가 아는 결말, 예정된 비극으로의 추락을 막아보려는 시도처럼 느껴질 정도다. 상업영화 개념으로 기획되고 완성되었더라면 절대로 용납될 리 없는 일종의 폭주가 그렇게 벌어진다. 물론 영화 내내 감독의 '폭주'(?!)를 목격해온 관객이지만 두 주인공이 서로의 진심을 깨닫고 공유하는 카타르시스의 해소 이후에도 감독이 온갖 핑계를 내며 군더더기를 넣고 또 넣으면서 붙잡아두는 결말부는 어찌 보면 장절할 정도의 집념이다.

아마도 감독은 그 지연시킨 순간만큼은 관객들 또한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함께 공유하며 더불어 기억하고 애도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그 집념이 오로지 순전한 선의의 발로라는 점에서 이 영화가 보이는 기이한 늘어짐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작품에 대한 호-오 평가는 관객 각자 선택의 몫이 될 수밖에 없겠지만, 근래 일정부분 관습화되고만 한국 독립영화들을 겪다 보면 <너와 나>가 선보이는 맹목적 돌격은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촉발한다.

즉 이 영화는 어떻게 보면 '팬시' 상품 마냥 과잉으로 느껴질 구석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상당수 관객들에겐 그런 과잉이 그저 '뽀샤시'로 그치지 않고 감독의 순수한 추념이 형태를 갖춘 것처럼 보일 게 분명하다. 그런 감상은 딱히 꿈보다 해몽인 것만은 아니다. 그래서 함부로 쉽게 몇 마디 글자로 <너와 나>를 평가하기 어렵다는 하소연을 전한다. 영화가 끝나버리면 곧 그 다음날 검푸른 남해의 격류에 직면해야 할 이들을 감독은 도저히 견딜 수 없었나 보다.

그들이 콩닥거리는 가슴으로 잠을 설쳐가며 하루 전날 밤 두 손 모아 기원했던 온갖 꿈들, 장래에 대한 염원들이 얼마나 다채롭고 풍성했던가에 대한 상상과 함께 한국사회가 대체 왜 이렇게 괴물처럼 추악해져 버렸는가에 대한 질문이 다시금 날을 벼리며 결국 돌아오고 만다.

오직 영화의 출발점에 초지일관 집중하려는 태도의 영화
 
▲ "너와 나"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그린나래미디어㈜
 
<황야의 무법자>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웨스트> 등으로 잘 알려진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은 자신의 평생 숙원이던 영화역사에 길이 남은 걸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촬영 당시 예정된 기한을 3배나 초과했다고 전한다. 물론 시나리오나 감독의 연출력 문제가 아니었다. 실제로 예산은 원래대로 집행되었다.

다만 촬영현장을 지켜 본 감독의 가족과 스태프들이 회상하길, 감독은 10여 년 넘게 걸린 해당 작품의 촬영장에서 떠나고 싶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이제 완성된 영화가 내 손을 떠나면 어떻게 하나 심정이었을 테다. 조현철 감독은 세르지오 레오네의 사례와는 궤가 다르긴 해도, <너와 나>에 대해 너무나 간절하고 애틋해 차마 작별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뒤를 돌아보던 영화 속 주인공들의 심정과 다를 바 없었을 게 분명하다.

새미 역 박혜수, 하은 역 김시은 배우는 근래 한국영화를 주시해온 이들이라면 낯이 익은 얼굴들이다. 여기에 그들의 친구들로 등장하는 오우리, 이도은 등의 신예 독립영화 출신 배우들 역시 그림처럼 잘 녹아든다. 두 주인공의 합은 이 영화의 개연성을 확보하는데 필수일 만큼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데 감독 역시 이를 명확히 간파하고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역력하다. 하지만 주변 친구들이 조금 더 활약했더라도 괜찮아 보인다. 반면에 주변의 '어른' 캐릭터들은 다소 기능적 캐릭터에 머무는 편이다.

물론 이 영화에는 단점도 적지 않다. 감독의 순전한 집념 때문에 통상적인 밸런스를 초과해 거듭되는 부분도 누누이 언급한 것처럼 꽤 있지만, 그저 군더더기로 여겨질 법한 장면도 제법 존재한다. 배우로서 일정한 경력을 축적한 감독의 지인들이 물심양면 총출동해 화면 구석구석을 메우고 있기에 숨은그림찾기의 재미도 발생하지만 굳이 이들이 등장할 필요가 크게 다가오지 않는 장면에서 눈에 띄는 바람에 몰입이 방해되는 경우가 왕왕 드러난다.

올스타 조연과 특별출연으로 가득히 채워진 엔딩 크레디트를 보면서 뿌듯함보다는 낭비적 요소가 적지 않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어떤 장면은 이야기 전개에 필수적이기보다는 그들에게 몫을 나눠주기 위해 늘어진다는 기분도 든다. 그래서 현장에서 감독의 폭주와 주변의 방치가 맞물린 소모적 결과는 혹시 아닐까 하는 혐의가 슬쩍 씌워지기도 한다.

근본적으로 <너와 나>는 '실낙원'을 향한 좌절과 회한이 비판의식이 아니라 상실감을 극대화하는 형태로 완성된 결실이다. 우리가 사회적 비극을 기억할 때 그것이 초래한 파국으로 각인할지, 아니면 잃어버린 것들의 소중함으로 포장할지는 선택의 몫이다.

이 영화는 명백히 후자의 방향을 취했고 그런 방향으로 세상의 끝까지 자신이 갈 수 있는 한 나아가고자 결의하고 실행한 결과물이다. 이제 해석과 수용은 관객에게 넘어간 몫이 될 테다.

<작품정보>

너와 나 The Dream Songs
2022|한국|드라마
2023.10.25. 개봉|118분|12세 관람가
감독 조현철
주연 박혜수(세미 역), 김시은(하은 역)
출연 이도은(한나 역), 박서경(예진 역), 오우리(다애 역),
이태경, 강애심, 김신비, 박정민, 길해연, 박원상
제작 ㈜필름영
배급 ㈜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대성창업투자㈜
공동제공 싸이더스, 그린나래미디어㈜

2022 27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 비전
2022 48회 서울독립영화제 새로운 선택
2023 10회 마리끌레르영화제 나우앤넥스트
2023 11회 무주산골영화제 한국경쟁 '창', 무주관객상
2023 25회 정동진독립영화제
2023 23회 가오슝영화제
2023 18회 파리한국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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