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서 훔쳐 온 '고려불상'…대법 "돌려줘라" 부석사 패소, 왜
한국 절도단이 일본에서 국내로 훔쳐 온 14세기 고려 불상은 일본 소유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26일 대한불교 조계종 서산 부석사가 국가를 상대로 ‘불상을 돌려달라’며 제기한 유체동산 인도 소송에서 원심의 부석사 패소 판결을 확정했다.
이 사건은 한국인 절도범 10명이 2012년 10월 일본 나가사키현 쓰시마섬관음사에 봉안돼 있던 ‘금동관음보살좌상’을 훔쳐 나와 국내로 밀반입하며 시작됐다. 절도범들은 곧장 붙잡혀 유죄가 선고됐고, 불상은 정부가 몰수했다. 일본 정부는 유네스코 협약에 따라 불법 반출된 일본 문화재를 돌려 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구했다. 불상은 나가사키현 지정 문화재이고 관음사 소유라는 게 일본 측 주장이었다.
그러나 부석사는 2016년 국가를 상대로 “왜구가 약탈해갔던 불상인 만큼 원소유자인 우리에게 돌려달라”며 유체동산(불상) 인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실제 1951년 불상 속 복장유물에선 ‘1330년 2월 서주 부석사에 관음상을 만든다’는 문구가 발견됐다. 서주는 충남 서산의 고려시절 명칭이다. 또 고려사(高麗史)에는 왜구가 1352~1381년 서주 일대를 5회 이상 침탈한 사실도 적혀 있다. 부석사는 이런 사실을 근거로 원소유권을 주장한 것이다.
1심은 2017년 1월 부석사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이 사건 불상은 서기 677년 창건된 후 조선 초기 중건한 사찰인 서주 부석사의 소유로 추정할 수 있다”며 “과거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도난이나 약탈 등의 방법으로 관음사로 운반돼 봉안됐다”고 판단했다.
반면 2심은 판단을 뒤집었다. ▶불상이 불법 반출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미 취득시효가 완성돼 소유권이 넘어갔고 ▶서산 부석사가 고려시대 서주 부석사와 동일한 종교단체라는 점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취득시효는 물건을 소유할 의사를 갖고 다툼 없이 공연하게 오래 점유하면, 그 소유권을 인정해주는 제도다. 우리 민법은 부동산은 20년간, 동산의 10년간 소유 의사로 점유하면 소유권을 인정한다. 일본 민법도 20년간 소유의 의사로 점유하면 소유권을 인정한다.
이날 대법원은 “원심판결 결론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할 수 있다”며 부석사의 상고를 기각했다. ‘취득시효 법리’에 따라 당초 부석사의 물건이더라도 일정 기간 문제 없이 점유했다면 관음사에게 소유권이 넘어간 것으로 보는 게 맞다는 것이다. 한·일 민법 중 어느 나라 것을 적용할지도 쟁점이었지만, 대법원은 옛 섭외사법(현 국제사법) 법리에 따라 ‘취득시효가 만료하는 시점에 물건이 소재한 곳의 법을 적용하는 게 맞다’고 봤다. 대법원은 “관음사가 법인격을 취득한 1953년 1월26일부터 2012년 10월6일경 절도범에 의해 이 사건 불상을 절취당하기 전까지 계속하여 이 사건 불상을 점유했다”며 “관음사는 취득시효가 완성된 1973년 1월26일 당시 일본국 민법에 따라 이 사건 불상의 소유권을 취득했다”고 했다. 또 “불상이 고려 시대 왜구에 약탈당해 불법으로 반출됐을 개연성이 있다거나 우리나라 문화재라는 사정만으로 이러한 취득시효 법리를 깰 수는 없다”고 봤다.
다만 대법원은 2심 판단과 달리 조계종 부석사와 서주 부석사가 동일한 주체라고 봤다. 대법원은 “(1330년부터 현재까지) 사찰의 인적요소인 승려 등의 계속성을 완전히 상실하거나 물적 요소인 종교시설 등이 완전히 소실된 것으로 볼 만한 자료는 없다”며 “서주 부석사가 독립한 사찰로서의 실체를 유지한 채 존속해 현재 조계종 부석사에 이르렀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했다.
이날 재판을 지켜본 부석사와 신도, 서산시는 “불상은 일본 소유”라는 결정이 내려지자 한숨을 내쉬며 크게 실망했다. 1심과 2심에서 상반된 선고가 이뤄졌지만, 상고심에선 다시 부석사의 소유권을 인정할 것이라는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서산 부석사 주지인 원우 스님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부석사의) 모든 신도와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뜻을 모아 불상이 되돌아오기를 기도했다”며 “대법원의 판결로 불상을 되돌리는 것은 어렵게 됐지만 관음보살좌상이 부석사의 소유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부석사 신도 가운데 일부는 오전부터 법당에 모여 불공을 드리고 불상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도했다. 부석사의 한 신도는 “재판 날짜가 다가오면서 조바심이 들고 초초한 마음도 있었다. 모든 게 부처님의 뜻이니 순리대로 받아들이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서산부석사불상봉안위원회 이상근 상임대표는 “2016년 (반환) 소송을 제기한 뒤 많은 국민이 불상이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응원해주신 점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이번 소송은 단순히 불상을 찾는 재판이 아니었다는 점을 분명히 말하고 싶다. 재판 결과에 관계없이 일본(관음사)과의 교류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석사 소재지인 충남 서산시 문화재 담당 공무원들도 이날 대법원에서 재판 과정을 직접 참관했다. 서산시 관계자는 “불상을 돌려받기 위해 신도와 시민 모두가 힘을 합쳤지만 결국 뜻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다”며 “변호인과 부석사, 지역사회와 논의를 거쳐 앞으로의 대응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관음사의 다나카 세츠료 주지는 “불상이 돌아와 지역민들이 안심하는 것을 보는 게 제일 큰 소원”이라며 “조기 반환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NHK 방송은 전했다.
무라이 히데키 일본 관방 부장관도 이날 열린 정부 대변인 정례 기자회견에서 “불상이 간논지(관음사)에 조기 반환될 수 있도록 한국 정부를 설득하고 간논지를 포함한 관계자들과 연락해 적절하게 대응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원·신진호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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