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혐오 하는 아이들, 이 무대에서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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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유정 기자]
"예술은 혐오에 맞서는 강력한 힘이다."
▲ 수업 활동기록. 변화, 상처, 행복, 분노 등의 주제에 대해 아이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
ⓒ 권유정 |
사실 나는 심포지엄에 참석할 만큼 예술과 가까운 사람은 아니다. 내가 근무하는 청평은 영화관도 없는 시골이다.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기도 어렵고, 작고 소중한 내 월급으로는 물가상승률을 따라 무섭게 치솟는 티켓값을 감당하기도 버겁다.
그러나 올해 2학년 학생들과 '연극과 인간관계, 언어 수업을 통합한 공연제작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면서 어쩌다 보니 예술 심포지엄에도 참석하는 사람이 되었다.
1학년 프로젝트 수업이 학생들 스스로 대학 생활의 버킷리스트를 정하고 도전하는 '청년도전 프로젝트'로 자리 잡은 반면, 2학년 프로젝트 수업은 해마다 학생들의 특성에 따라 다양하게 운영된다.
예를 들어, 인지 능력이 비교적 우수하고 컴퓨터 활용이 능숙한 아이들과는 '메타버스 프로젝트'로 시대에 흐름에 발맞추어 새로운 학습을 했다. 기본생활기술이 현저히 미흡하던 아이들과는 '나혼자산다 프로젝트'로 대중교통이용, 정리정돈, 요리 등 자립생활에 필요한 기술들을 집중적으로 연습했다. 그 밖에도 자전거 라이딩, 목공, 영상제작 등의 수업을 운영했었다.
연극을 통한 소통은 어떨까
현재 2학년 학생들은 유달리 사회성이 부족하고, 자기표현이 거의 없는 편이다. 타인에게 관심이 없고, 자발적인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인간관계와 언어를 가르치며 우리는 기존의 수업방식에 한계를 느꼈다.
보다 실제적이고 효과적인 교육방법을 고민한 끝에 연극을 매개로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적절하게 표현하며 소통하는 방법을 가르쳐 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더욱 동기를 부여하고 성취감을 줄 수 있도록 작품을 하나 만들어 무대에 올려보자는 목표를 세웠다. 마침 학교에 연극과 뮤지컬 분야 전문가가 두 분이나 있었기 때문에 용감하게 시도할 수 있었다.
1학기 동안 공연을 만들기 위한 밑작업을 했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모아 대본을 만들었다. 제목도 아이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투표를 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광주 시민연극제 본선에 진출했고, 2학기부터는 본격적인 공연 연습에 돌입해 곧 공연을 앞두고 있다.
대사와 동작을 외우고, 타인과 호흡을 맞추고,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필요한 교육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의미가 크다.
▲ 공연 포스터다. 광주시민연극제에 나가게 됐다. |
ⓒ 이헌용 |
<시선, 그때 우리는>은 연극 제목 그대로, 사회의 시선 속에서 상처받았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스무 명의 학생들 중 주연은 치열한(?) 오디션을 통해 선발했다. 선정기준은 연기의 기술적인 면보다는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가'였다.
여러 사람 앞에서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 일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부끄럽고, 외면하고 싶고, 감추고 싶은 마음을 똑바로 마주보고 용기 내어 꺼내 놓은 것만으로도, 나는 아이들에게 아주 큰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혐오에 맞서는 예술의 힘을 나는 이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하며 체감하고 있다. 장애를 혐오하는 건 비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장애를 가진 당사자들 역시 사회의 시선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자신의 장애를 혐오하고,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한다.
틀림이 아닌 '다름'인데 그 다름을 포용하지 못하고, 비뚤어진 우월감으로 타인을 무시하고, 저만 옳다는 편협한 사고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 그 사람이 잘못인 건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약자들은 화살을 자신에게 돌리고 만다.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고 장애인임을 싫어하고, 소통을 거부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무대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꺼낼 준비를 하고 있다. 같은 마음을 가진 친구들에 힘입어 처음으로 내보는 목소리일 것이다. 아이들에게 이 무대가 상처를 공유하고 공감을 받는 치유의 과정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비슷한 아픔을 가진 또 다른 누군가도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위로받기를 감히 바라본다.
▲ 광주시민연극제 포스터, 본선에 진출하여 공연을 앞두고 있다(11월 3일). |
ⓒ 광주시민연극제 |
# C는 도움을 받는 것에 익숙한 친구다. 장애가 있기 때문에 마음 착한 친구들은 늘 C의 할 일을 대신해 준다. C도 힘들게 스스로 하는 것보다 도움을 받는 것이 편하다. 그렇게 C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점점 더 줄어들고, 마침내는 넘어졌을 때 일어나는 것조차 혼자 하지 못하고 애타게 외친다. "도와주세요! 누구 없어요??"
# K는 남들보다 배움이 더디다. 다른 친구들은 금방 해내는 것에 K는 더 많은 연습을 필요로 한다. 그렇지만 친구들은 K에게 더 이상 기회를 주지 않는다. 좋은 대학, 좋은 성적이 중요한 학교에서 약자는 배려가 아니라 배제의 대상이다. K는 자신을 무시하는 친구들이 원망스럽지만, 더욱 원망스러운 건 자기 자신이다.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되지?"
# W는 친구들과 함께 하고 싶다. 하지만 친구들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W를 놀리고 따돌린다. W의 마음에는 매일 분노가 쌓인다. 결국 W는 욕을 하고 친구들의 놀이를 망쳐 버린다. 화를 내는 W를 보며 친구들은 점점 더 멀어진다. W에게 친구란 대답 없는 메아리 같다. "얘들아, 내 말 안 들려?!"
# J는 남들과는 조금 다른 세상에 빠져 있는 친구다. 다른 친구들의 마음을 읽기 어렵고, 그래서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도 잘 모른다. J가 친구들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은 엉뚱한 말과 장난으로 친구들을 자극하는 것이다. 친구들은 그런 J가 싫다고 말하지만, J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어차피 자신은 늘 혼자였다. "난 혼자인 게 편해."
# M는 남들 앞에 서는 것에 자신이 없다. 제대로 못하고 비웃음을 당할까 봐 긴장이 되기 때문이다. 긴장감이 높아지면 말이 잘 나오지 않아 말을 심하게 더듬는다. 하지만 사실 M은 노래를 잘한다. 무대에 올라가 노래솜씨를 뽐내는 친구들을 보며, 나도 노래하고 싶다는 꿈을 꾼다. 그러나 진짜로 내가 떨지 않고 노래를 잘 부를 수 있을지, 용기가 좀처럼 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을까?"
# H는 자신에게 장애가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 장애인이라는 걸 알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나쁘게 볼 것이 틀림없다. 겉으로 보이는 H는 장애인이라는 티가 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H는 귀찮은 척, 하기 싫은 척,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척하는 걸로 자신을 감춘다. 부모님과 선생님은 H에게 맞는 교육을 받게 하고 싶지만 H는 거부한다. "나는 장애인이 아니야, 나는 일반 (비장애인) 아이들과 더 잘 어울려."
다가오는 연극을 통해 스무 명의 아이들이 세상 앞에 자신을 드러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어설프고 미흡한 부분도 있겠지만 누구보다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공연입니다. 따뜻한 시선과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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