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신설vs국립대 의대 확대… 지역·필수의료 담당할 ‘의대생’ 어떻게 늘리나
의대 정원 확대 규모에 따라 차이는 있겠으나 의대가 신설될 경우, 그만큼 국립대 의대 증원 가능성이 작아진다. 반대로 국립대 의대 인원을 증원하면 의대 신설 가능성이 희박해진다. 곳곳에서 신경전이 벌어지는 이유다.
정부는 아무것도 확정된 것이 없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2025년 입시에 의대 정원 확대가 반영되기 위해선 연내에 의대 정원 확대 방향이 결정되어야 한다. 과연 미래의 의대생들은 어떤 곳에서 공부하게 될까?
의대 정원 확대의 첫 번째 방식은 국립대 의대 신설이다. 필수의료 공백이 심각한 지역에서 강력히 원하는 방식이자 지역의 선호도가 높은 방식이다. 의대 정원 확대가 본격화되자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의대 신설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 교육부가 지난 20일 이은주 정의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의대 신설 수요가 있는 대학은 ▲수도권 : 인천대(인천) ▲충청권 : 카이스트(대전), 공주대(충남), ▲전라권 : 목포대(전남)·순천대(전남), 군산대(전북)·국립공공의대(전북) ▲경상권 : 부경대(부산), 창원대(경남), 안동대(경북)·포항공대(경북) 등 총 11개 대학이었다.
의대 신설이 지역·필수의료 강화로 이어질 것이란 이들의 주장엔 근거가 뚜렷하다. 그 지역에서 의대를 나와 수련까지 마치면, 지역에서 의사 활동을 이어갈 확률이 훨씬 높단 연구 결과가 존재한다. 대한의사협회가 발간한 '의사의 지역근무 현황 및 유지방안 연구'를 보면, 의대 졸업지역이 지방광역시와 도 지역인 경우, 수도권인 경우보다 지방에 근무할 가능성이 각각 2.12배, 2.01배 높다. 전문의 수련지역이 지방광역시와 도 지역이면, 수도권인 경우보다 지방에 근무할 가능성은 각각 12.41배, 5.94배 높다.
의사들이 수도권으로만 몰리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필수의료가 열악한 지역에 국립의대를 신설하는 게 답이 될 수 있는 셈이다.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의원이 국세청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21년 지역별 의료인 평균 사업소득은 수도권이 3억 3300만원, 비수도권이 3억 5300만원으로 비수도권 개업의가 수도권 개업의보다 높은 소득을 올린다. 그러나 병·의원 사업장은 수도권에 집중된다. 전국 4만 1192개의 병·의원 사업장 중 수도권에 절반 이상인 2만 2545개가 있다. 즉, 국립대 의대 신설은 지역·필수의료 강화를 위한 효율적인 대안이 된다.
의대 신설이 확정될 경우, 의대 신설이 유력한 곳으로는 전남이 언급된다. 전남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의대가 없는 지역이다. 의대 정원 확대의 방향이 의사과학자 양성 등에 초점을 맞춘다면, 카이스트가 있는 대전이나 포항공대가 있는 경북에 의대가 신설될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의대 신설 가능성에 대한 의료계의 평가는 냉정하다. 의료계는 의대 신설 가능성은 적다고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외과 전문의 A씨는 "미니 신설의대였던 서남의대 폐교 사태를 겪었기에 의대 신설은 쉽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A씨는 "의대 교육 특성상 기존 시스템 확대에도 매우 큰 비용이 드는데 미니 의대가 아닌, 일정 규모 이상의 의대를 신설하려면 막대한 예산이 필요할 것이다"며 "정부와 지자체가 모두 나서야 가능한 일일 텐데 과연 정부가 그만한 지원을 할 준비가 됐을지 의문이다"고 밝혔다.
의대를 졸업한 지역에서 의사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내과 전문의 B씨는 "다만, 수련을 마친 병원이 있는 곳에 자리를 잡는 경우가 많은 건 사실이다"며 "의대 신설을 통한 의대 정원 확대가 이뤄진다면, 지역 선정에 신중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의대생이 필요한 건 기존 의대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비수도권 국립 의대와 정원 50명 미만의 '미니 의대'는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크게 체감하고 있다.
항상 인력이 부족한 비수도권 병원의 경우, 의대 정원 확대로 부족한 인력을 보강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있다. 졸업한 의대의 수련병원에서 수련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아서다. 출신 학교 병원에서 근무 중인 신경외과 전문의 B씨는 "인원이 부족해 은퇴를 앞둔 교수들까지 며칠 밤을 새우며 당직을 선다"며 "필수의료 지원책과 함께 의대 정원이 확대된다면 조금이나마 인력난이 해결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니 의대의 경우, 교육질 향상 차원에서 의대 정원 확대를 원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전국 40개 의대 중 17곳이 정원 50명 미만의 미니 의대다. 복지부는 효율적인 의대 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해선 정원이 최소 80명은 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지방 국립대 의대 교수 C씨는 "양질의 의대 교육이 이뤄지려면 최소 80명 이상의 정원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이 복지부에 의견을 전한 데는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의대 교육은 실습, 수련이 중요한데 정원이 적으면 일정 수준 이상의 시스템을 갖추는 데 한계가 있다"며 "지방 국립대 의대생이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고 싶다며 수도권 의대를 가기 위해 다시 수능을 보는 게 현실이다"고 말했다.
비수도권 국립대 의대이면서 미니 의대인 곳은 강원대와 충북대(각 49명), 제주대(40명) 총 3곳이다. 다만, 교육부 조사에 따르면, 의대 정원 확대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힌 곳은 충북대뿐이다.
◇복지부, 가능성 다 열어두고 검토
조규홍 장관은 "의대 정원이 50명 미만일 경우 학교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어렵고, 교육의 질도 낮아질 수 있어 미니 의대 증원을 우선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다만 여론조사를 통해 5개 지방 국립대에 의대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데에 국민 80%가 동의하고 있었다는 점도 강조하겠다"고 말했다. 조 장관은 "지역에 의사 확충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한다"며 "공공의대라는 별도의 모델을 만들 것인지 아니면 현재의 국립 의대 모델을 통해 지역 의사를 양성할지는 충분히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의대 정원 확대 규모나 방식 등 그 어느 것도 확정된 건 없단 게 현재 복지부의 입장이다. 복지부는 조규홍 장관이 효율적인 의대 운영을 위해 최소 80명 이상의 정원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것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이 개진한 의대 교육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는 데 필요한 정원 규모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복지부 측은 "의대정원 확대 규모는 지역의 의료 인프라 상황, 대학의 수용 가능성 및 현장의 수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해야 하는 사안이다"며 "아직 확정된 바 없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이 같은 정부의 미적지근한 태도에 여야 모두 질타를 쏟아내고 있다. 2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종합국정감사에서는 의료계 눈치를 보지 말고, 의대 정원을 과감히 늘려야 한다는 주문이 이어졌다.
국민의힘 최연숙 의원은 "2020년 의약분업 당시 의료계의 요구를 들어주는 과정에서 의사정원이 351명 줄었다"며 "당시 의사 수를 줄이지 않았다면 6000명 정도의 의사가 더 배출됐을 것이다"고 말했다. 최 의원은 "그 수를 더해도 현재 우리나라는 OECD 평균보다 턱없이 의사 수가 모자라기에, 지금의 의료 불균형과 필수 의료 붕괴는 예측된 상황이었다"며 "정부는 문제가 반복되지 않게 신경 써야 한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은 "지난 19일 정부가 발표한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필수의료 혁신전략'은 속 빈 강정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책에도 골든타임이 있다"며 "의사 수 부족으로 필수 의료는 죽어가고 지역 의료는 무너지고, 재앙적 수준으로 내몰리고 있어 정부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의당 강은미 의원도 "필수 의료 혁신 전략에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서 매우 실망스러웠다"며 "의사단체 강경 발언이 이어지고 그래서 정부가 알맹이를 빼놓은 거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다만, 복지부는 2025년부터 의대 정원 확대를 위해 오늘(26일)부터 전국 의대에 정원 수요 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각 대학의 수용 능력 등을 파악하고 구체적인 증원 계획을 마련하기 위한 사전 조사로, 조사 결과에 따라 의대 정원 확대 규모의 윤곽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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