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구에 카네이션을 꽂았던 이 나라의 혁명 [가자, 서쪽으로]

김찬호 2023. 10. 26.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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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유라시아 대륙의 끝이자 시작

[김찬호 기자]

마드리드에서 기차를 타고 리스본으로 향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유럽에서는 마지막으로 넘는 국경이었습니다. 의외로 두 나라의 수도를 직접 잇는 기차편이 없더군요. 기차를 두 번 갈아타고서야 리스본에 도착했습니다.

다음날 리스본에는 비가 내렸습니다. 오전부터 조금씩 떨어지던 비는 점심 때를 지나자 더 굵어졌습니다. 카페나 성당에서 비를 피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비에 젖은 광장의 모습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비 오는 리스본
ⓒ Widerstand
그렇게 리스본의 골목과 언덕을 걸었습니다. 리스본의 풍경은 제가 좋아하는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나온 리스본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영화가 만들어지고 10년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구시가의 모습은 달라질 게 없었습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포르투갈의 독재 시대를 다룬 작품입니다. 스위스의 교사 그레고리우스가 우연히 주운 책을 따라 리스본으로 향하면서 영화가 시작되죠. 그레고리우스는 리스본에서 독재정권에 저항하던 이들의 과거와 현재를 추적해 갑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촬영지
ⓒ Widerstand
포르투갈은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에 위치한 나라입니다. 12세기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세워진 국가였죠. 
대륙의 서쪽 끝에 위치했던 만큼, 바다를 향한 탐험에서도 포르투갈은 선두에 섰습니다. 남쪽으로는 몰아낸 이슬람 제국이 있고, 동쪽으로는 강력한 카스티야 왕국이 있는 상황에서 포르투갈이 확장할 수 있는 길은 서쪽의 바다 뿐이었죠.

포르투갈은 15세기부터 아프리카 항로 탐사에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1488년 희망봉을 발견한 바르톨로뮤 디아스도 포르투갈 사람이었죠. 포르투갈은 지중해 항로를 대체하게 되는 대서양 항로의 개척자로 성장합니다.

유럽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뒤, 포르투갈은 스페인과 전 세계를 둘로 나누는 조약을 체결하기도 했습니다. '토르데시야스 조약'이죠. 이 조약에 따라 스페인은 주로 아메리카 대륙을, 포르투갈은 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을 대상으로 식민지를 건설합니다.

포르투갈은 거대한 식민 제국이 되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에는 브라질을 식민지로 삼았죠. 아프리카 해안에도 여러 도시를 건설했습니다. 케냐 몸바사나 앙골라, 모잠비크 등이 포르투갈의 식민지였습니다.

강력한 국가가 자리잡고 있던 인도나 중국을 대상으로도 고아와 캘리컷, 마카오 등에 항구도시를 건설했습니다. 말레이시아 믈라카나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역시 포르투갈의 지배를 겪었죠. 한때는 일본과도 교역했습니다.
 
 발견 기념비
ⓒ Widerstand
포르투갈은 최초의 식민 제국이었습니다. 세계 곳곳에 포르투갈의 영향력이 투사되고 있었죠. 특히 넓은 강 하구를 낀 항구도시 리스본의 입지는 그런 면에서 탁월했죠. 
하지만 포르투갈은 금세 몰락했습니다. 포르투갈이 지배한 항로에는 네덜란드나 영국을 비롯한 후발 주자들이 끼어들었죠. 특히 '신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한 스페인에 비해, 포르투갈은 원래 중앙집중적 권력이 있던 땅의 일부 도시를 장악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포르투갈의 패권은 그 기반부터 부실했습니다.

포르투갈은 그 기반을 강화하는 것에도 실패했습니다. 무역으로 쏟아져 들어온 부를 국내 산업자본으로 전환하지 못했죠. 결국 포르투갈은 주변국과의 갈등 속에서 식민지를 하나둘 상실했습니다. 결국 포르투갈은 1580년 왕가가 단절되면서 스페인에 병합되기도 합니다.

포르투갈은 한 세기가 지난 1668년 독립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포르투갈의 쇠락한 국력은 여전했습니다. 18세기 리스본에는 대지진으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19세기에는 브라질 식민지마저 왕세자의 주도로 독립을 선언하죠. 이후 포르투갈에서는 왕당파와 공화파가 나뉘어 내전까지 벌어졌습니다. 이 극심한 갈등은 결국 1926년 군사 쿠데타와 독재정권의 수립으로 절정을 맞게 됩니다.
 
 카르모 수녀원
ⓒ Widerstand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이 독재 정권 시기의 리스본을 다루고 있습니다. 1933년 집권한 안토니우 살라자르와, 1968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그의 뒤를 이은 마르셀루 카에타누가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독재자였죠. 
2차대전과 전후 시대를 거치며 그나마 남아 있던 포르투갈의 식민지는 대부분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포르투갈의 독재 정권은 식민지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각지의 독립 세력과 전쟁을 벌였죠. 앙골라나 기니바사우, 모잠비크 등에서 전쟁이 이어졌습니다.

이미 지나간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시대에 대한 집착이었습니다. 포르투갈 내에서는 독재와 전쟁에 대한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프랑스에서 알제리가 독립하면서, 포르투갈이 '최후의 식민 제국'이 되었다는 의식이 퍼졌죠.

결국 1974년, 독재와 전쟁에 반대하는 청년 장교들을 주축으로 쿠데타가 벌어집니다. 시민들은 독재를 물리친 쿠데타를 환영했습니다. 쿠데타 소식을 들은 시민들은 군인들에게 카네이션을 선물했습니다. 군인들은 시민들에게 발포 없는 무혈 쿠데타를 벌이겠다는 의미로, 이 카네이션을 총구에 꽂았습니다.

그렇게 '카네이션 혁명'이 벌어졌습니다. 이들은 시내 주요 거점을 무혈 장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카에타누 총리는 브라질로 망명을 선택했죠. 그렇게 포르투갈의 독재는 무너졌습니다.

새로 만들어진 정부는 식민지들의 독립을 공식적으로 인정합니다. 노동조합과 야당의 활동이 합법화되는 등 민주화 조치도 이어졌죠. 포르투갈의 독재와 함께, '최후의 식민 제국'도 무너진 것입니다.
 
 리스본
ⓒ Widerstand
포르투갈은 유라시아 대륙의 끝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유라시아 대륙의 시작이 곧 포르투갈이기도 했죠. 
덕분에 포르투갈은 최초의 식민 제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식민지를 포기하지 못한 마지막 식민 제국이기도 했죠. 포르투갈은 폭력적이었던 한 시대의 시작이자 끝을 장식한 국가였습니다.

그 시대의 흔적은 복잡한 리스본의 길에도 남아 있는 듯합니다. 고풍스러운 건물과 복잡한 골목은 도시의 깊은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었습니다. 영광도, 몰락도. 독재도, 결국 쟁취한 민주도. 이 거리 위에서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오후가 되자 어느새 비는 그치고, 해가 들기 시작합니다. 본격적으로 복잡한 골목을 돌아다니던 저는 몇 번이나 길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그조차 리스본을 걷는 경험이겠죠.

역사를 담은 도시 속에서,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나온 문장 하나를 생각했습니다. 극중에서 혁명군에 동참했지만, 혁명 당일 뇌동맥류로 사망한 아마데우 프라두의 묘비명은 이렇게 쓰였습니다.
 
 "독재가 현실이라면, 혁명은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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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CHwiderstand.com)>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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