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억 적자에도 좋은 배추만…김치회사 대표 된 식당 사장님 [쿠킹]
작지만 강하다. F&B 산업에 새로운 방향을 만들어 가는 스타트업 이야기다. 로컬에서 먹거리 혁명을 일으키고, 소비자가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가치 소비를 유도하고, 소외된 이웃과의 동행을 이끈다. 이들이 만들어낸 작은 틈이 세상을 바꾸는 큰 흐름으로 이어진다. 쿠킹은 F&B 흐름을 바꾸는 창업가를 소개하는 [뉴노멀을 만드는 F&B 리더들]을 연재한다.
“어떤 해는 배추가 부족해 아주 난리가 났었어요. 일찌감치 배추 관리하던 우리도 여파가 있었죠. 동서남북을 가리지 않고 밤새 배추 구하러 다녔어요. 근데, 배춧값이 금값이 되니 시시한 배추도 값을 엄청나게 부르더라고요. 평소 제구실이나 할까 싶은 작은 배추가 2000원에 달했죠. 그래도 그건 살 수 없었어요. 손해가 크더라도 4000원 주고, 크고 속이 꽉 찬 배추를 구매했어요. 그래야 김치가 맛있으니까요.”
도미솔 박미희 대표는 그해 김치를 만들기도 전에 5억원 적자를 봤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았다. 좋은 재료로 만든 김치는 소비자가 먼저 알아볼 것이라 확신했다.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413억. 높은 매출을 기록했다. 신념은 홈쇼핑 김치 분야 매출 1위, 재구매율 1위라는 성적표를 만들었다. 또 국내 유명 호텔에서 선보이는 김치도, 손맛 좋은 연예인 김치도 도미솔에서 생산했다. 300여 곳 이상의 학교 급식과 대한축구협회, 대기업 급식 등 납품 요청도 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도미솔 김치를 만든다. 주문 생산 공장에서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는 브랜드 김치가 되었기 때문이다. 김치 잘하는 식당 사장님이 김치회사 대표가 되기까지, 어떤 날들이 숨어있을까. 도미솔의 박미희 대표를 지난 20일, 수확을 앞둔 경기도 연천 배추밭에서 만났다.
Q 김치 맛있는 식당에서 김치회사를 차리게 되었다.
친정어머니가 흑산도에서 호남관 식당을 운영했다. 김치 때문에 식당을 찾는 손님이 있을 정도로 김치로 유명한 식당이었다. 이후 남편과 운영하던 목장을 접고 식당을 시작했는데 어머니 손맛을 물려받았는지 김치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자주 들어왔다. 그래서 김치 문화를 알리는 전시관과 김치 생산시설이 함께 있는, 식당보다 좀 더 큰 공장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2005년 회사를 차렸다. 그런데 회사를 세운 해에 ’기생충알 김치파동‘이 일어나 배추김치 회사에 해썹(HACCP·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 인증이 의무화되었다. 다 지은 공장에 추가 설비를 해야 했다. 큰돈이 필요했고 달라진 법도 공부해야 했다. 당시 시설 투자를 위해 대출을 받았는데, 인증을 받고 김치를 생산할 때까지 압류와 해제를 반복했다. 이후 9개월 만에 인증을 받고 학교 급식 납품이 가능해졌다. 당시 인증을 받은 시설이 별로 없어 학교 판로가 만들어졌다. 초기 매출의 90%가 학급 급식일 정도였다. 과정은 힘들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이후엔 품질을 인정받아 대기업에 납품하기 시작했다.
Q 호텔 김치와 연예인 김치도 생산했다.
재료 수급부터 생산까지 도미솔처럼 철저하게 관리하는 곳이 드물다고 생각한다. 그 점이 높게 평가했는지 다양한 곳에서 김치 생산을 요청했다. 지금은 90%가 우리 김치를 만든다. 명성보다 맛을 본 소비자들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마음이 너무 고맙다.
Q 지난해 대한민국 김치 품평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김치 맛의 비결은.
‘신념’이다. 김치 재료들은 농수산물이기 때문에 가격 변동이 심하다. 요즘 배추 가격이 크게 오른 것처럼, 원물 가격이 크게 오르면 김치 회사들은 선택해야 한다. 비싼 재료를 사서라도 기존 품질을 유지할 것인지 말지를 말이다. 심지어 생산을 잠시 중단하는 회사도 있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가격에 맞추지 않고 ‘소비자 마음에 들 수 있는 김치’를 만들려고 했다. 이 원칙만 지키겠다고 마음먹으면 결정은 아주 쉬워진다. 물론 이 신념 때문에 손해를 볼 때도 있다. 지난 배추파동 때는 질 좋은 배추를 고집했다가 그달에만 5억의 적자가 났다. 하지만 손해는 잠시다. 좋은 건 고객들이 먼저 알아본다.
Q 그래서, 직접 밭을 매입해 운영하고 있나.
눈으로 직접 본 재료를 쓰고 싶어 100% 국내산을 고집하고, 계약 재배나 밭을 운영한다. 계약 재배는 농사가 잘못되었을 때 위험을 모두 회사가 부담해야 해 다른 회사에서는 잘 시도하지 않는 방식이다. 하지만 농부와 신뢰를 쌓고 제대로 지원을 잘하면 좋은 품질의 농산물을 얻을 수 있다. 산지 답사는 자정에 출발해 차로 6~7시간을 달려 아침에 밭을 둘러보고 다시 돌아오는 강행군이다. 하지만 양질의 배추, 고춧가루, 마늘 등을 구하기 위해 일일이 전국 각지의 산지를 돌아다니며 직접 확인한다. 또 재배에 필요한 좋은 거름과 비료도 제공한다. 좋은 제품은 가격이 비싸 농부들이 선뜻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직접 매입한 밭도 있다. 6611㎡(2000평) 정도다. 또 도지(賭地)식으로는 1만5867㎡(4800평) 정도를 운영하고 있다. 밭에서는 배추뿐만 아니라 천수무, 깻잎 등 다양한 농작물을 키우는데 이 농작물들은 제일 맛있을 때 수확해 계절 김치로 선보인다. 올봄엔 천수무를 심어 천수무 김치를 판매했는데 소비자 반응이 아주 좋았다.
Q 좋은 김치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꼽으면.
‘염수’다. 도미솔은 해남, 진도, 양구 등 전국 계약 재배 산지에서 배추를 받는다. 배추는 토양에 따라 배춧결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배추를 절이는 염수를 달리해야 한다. 그래야 일정한 맛과 식감의 김치를 만들 수 있다. 이제는 배춧결만 만져봐도 몇 퍼센트의 염수에서 몇 시간 동안 절여야 할지 느낌이 온다. 수십 년의 경험이 준 노하우다.
Q 최근 ‘작은김장 꾸러미’ 상품도 출시했다.
절임배추와 김치 양념으로 구성된 간편 김장 키트다. 김장이 어려운 젊은 소비자와 소통하고자 만들었다. 절임배추 물기를 제거하고 양념을 묻히면 끝이다. 기호에 따라 밤이나 쪽파, 갓 등을 넣어 먹을 수 있게 양념도 넉넉히 담아 보낸다. 양념도 저당을 선택할 수 있다. 천연 재료로만 단맛을 잡았다. 5kg 제품인데 가격도 2만 원대로 좋다. 이 제품은 식문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지글지글클럽에서 쿠킹 클래스도 진행할 예정이다. 김장에 처음 도전하는 분들이 이 제품으로 직접 담그는 김장의 맛과 즐거움을 알아 갔으면 좋겠다.
Q 앞으로의 다른 계획이 있나.
최근 R&D센터에 식품기술사나 박사님을 모셔 여러 가지를 연구 개발 중이다. 김치의 전통성을 살린 김치 파생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기존 공장에 만들 수도 있는데, 새로운 공장도 짓기로 했다. 아무래도 공장 시설이 겹치면 기존 김치 맛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공장이 완성되면 수출용 김치나 다른 상품군으로 생산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앞으로도 인스턴트 김치가 아니라 제대로 된 김치를 만들 거다. 그건 늘 변하지 않는다.
안혜진 쿠킹 기자 an.hye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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