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립 도서관 독서 동아리 1년간 운영해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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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주 기자]
며칠 전 오후, 갑자기 도서관 사서 선생님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올해 동아리를 담당하고 계신 분이었다. 갑자기 타 도서관으로 발령을 받아 미처 인사를 드리지 못하고 가게 되어 죄송하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도서관 독서 동아리 중 하나를 운영하고 있기에 알림톡을 보낸 것이다.
구립 도서관 사서 선생님도 공직이기에 몇 년에 한 번씩 바뀐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사서 선생님은 작년 말에 우리 도서관에 오셔서 아직 임기를 1년도 채 채우지 못했기 때문에 좀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앞으로 우리 동아리 일에는 어떤 영향이 있으려나 하는 걱정도 일었다.
당장 작년 동아리 담당 사서 선생님과 올해 담당 선생님만 해도 스타일이 많이 틀렸다. 이제 겨우 적응이 될 만하니 다시 또 담당이 바뀌는 것이다. 이렇게 어수선한 상황에 마음이 편안하지는 않았다. 문득 그간 독서 동아리를 하며 겪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지난 1년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몇 년간에 걸친 수차례의 알바 실패 경험 이후 작년부터 나는 독서와 글쓰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나의 경제적 자존감을 세우는 길인양 몇 년간 아등바등 매달려 봤지만, 제대로 되지 않아 거꾸로 자존감만 잡아먹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제는 돈을 벌지는 못해도 좋아하는 일이라도 열심히 하며 살아 보자고 결심한 것이다.
▲ 가을은 독서의 계절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온도가 책 읽기에 딱 알맞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독서란 종이책을 읽는 행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
ⓒ unsplash |
도서관 동아리는 책과 영화를 보고 토론하는 모임이고 맘카페 독서 모임에서는 책에 대한 감상만 나눈다. 사적 모임인 맘카페 독서 모임과는 달리 도서관 동아리는 형식상 매년 새로 동아리 신청을 해서 갱신해야 한다. 이때 최소 유지 인원이 있다.
지난달 모임이 끝났을 때, 회원들에게 내년에도 계속 이 동아리에 가입할 의사가 있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다들 당연히 그러겠다고 했다. 심지어 한 회원이 말했다. "전 평생 참여할 겁니다!" 독서 동아리를 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이었다.
매년 새로 신청을 해야 하는 일이 번거롭긴 하지만, 도서관 소속 동아리는 사적 모임에 비해 몇 가지 혜택이 있다. 첫 번째는 도서관에서 모임을 가질 수 있다. 도서관 동아리이니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매번 모임 장소를 고민하고 찻값도 따로 챙겨야 하는 일반 독서 모임에 비하면 이것은 단연코 매우 큰 장점이다.
두 번째로는 동아리 예산을 꼽을 수 있다. 동아리 활동 지원금이 있어서 필요하면 신청할 수 있다. 금액이 대단한 건 아니지만 '지원금'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모임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런데 앞서 '대단한 건 아니'라고 한 금액이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서울 지역 내 우리 도서관의 경우, 올해 각 동아리에 배정된 지원금은 30만 원이다. 그것도 전액 도서 구입비로만 써야 한다. 작년에는 40만 원이었다. 그리고, 그때에는 도서 구입비 이외에도 동아리에서 특별 강좌라도 기획할 경우, 강사 초빙비로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도서 구입과 강사비, 둘 다 충당하기에는 40만 원이라는 액수도 부족하기 때문에, 대개 도서 구입비로만 썼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올해부터는 명목상으로라도 존재했던 강사비 항목이 빠졌다. 오로지 책을 사는 데에만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었다.
작년 말, 구청 소속 도서관 동아리 전체 회의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각 동아리당 대표 및 회원 한 명과 동아리 담당 사서들이 구청의 도서관 담당 공무원들과 직접 만나 동아리 활동 방향에 대해 논의하고 건의사항을 말하는 자리였다.
이런 자리가 처음이었던 나는 그때 관청 소속 단체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사정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먼저 말해두고 싶은 것은 각 도서관의 독서 동아리들의 활동은 정말 인상적이었다는 거다. 어린이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연극을 기획하고, 글쓰기 교실을 운영하는 등, 각 동아리에서 정말로 다양한 활동들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원금이 너무 적고, 또 그나마도 집행하기가 매우 불편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동아리가 입을 모았다. 지원금의 사용처가 엄격하게 정해져 있는 것은 납득이 가지만, 조금이라도 변경이 있을 시에는 그 절차가 몹시 번거롭고 까다롭다는 거였다.
예를 들어 코로나 시기 모임이 어려웠을 당시 대부분의 동아리는 온라인 모임으로 대신했다. 그런데 유료로 사용해야 하는 화상 회의 사이트 결제비 등은 지원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 회원들이 그 비용을 감당하거나 무료로 회의할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불편을 겪었다고 했다. 다들 이런저런 고충과 의견을 쏟아내는 통에 회의 시간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올해 들어와 나도 이러한 현실을 직접 경험하게 되었다. 위에 말한 대로 지원금이 줄어든 것은 물론, 사용처도 도서 구입비로 한정되었다. 우리 동아리는 책과 영화를 보는 모임이지만 지원금은 무조건 도서 구입 용도로만 써야 했다. 토론할 영화를 함께 관람하는 것조차 안 된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강사비 항목도 빠졌다. 동아리 활동 지원금이라는 명목이 무색할 지경이다. 그나마 지원금 신청은 5월에 이루어져 집행은 8월에 되었다. 1년 예산인데 이미 1년이 절반도 넘게 지나가서야 사용할 수 있는 거였다.
물론 코로나 이후 전반적인 경기 침체로 인해 문화예술에 대한 지출이 줄어든 점은 납득이 간다. 따라서 도서관 동아리 활동 지원금이 줄어든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국민의 세금에서 나오는 지원금이니 그 사용처에 대해 엄격히 관리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빠른 속도로 변하는 세상에 비해 행정 기관의 대응은 지나치게 느리고 답답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예를 들어 요즘 독서라고 하는 행위는 단순히 종이책을 읽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책'의 범위가 전자책, 오디오책으로까지 확장된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그리고 책을 읽고 토론하고 글을 쓰고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나 연극 등을 활동을 독서와 관련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독서 동아리 활동 지원금의 범위 여전히 '종이책 구입'만으로 한정된다는 것은 행정 기관의 시각이 지나치게 편협한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서늘한 날씨가 책 읽기에 딱 좋은 계절이 가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2023년 현재 우리의 독서 환경은 책 읽기엔 너무 경직되고 추운 듯하다. 조금만 더 유연하고 온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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