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과 장작]<제2화>한꾸옥

전진영 2023. 10. 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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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억 고물 ‘K태양광’ 방치
베트남 꽝빈성 ODA 현장을 가다

[전편 요약] 베트남 중북부, 동허이에서 차로 1시간 30분을 달려 나오는 반 라오 콘(Ban rao con). 지난 10일 취재진은 이 곳을 찾았다. 소수민족 ‘번 키우(Van kieu)’ 64가구가 사는 마을이다. 응우옌 티 아잉(Nguyen Thi Anh)(49세)씨는 2016년 태양광 설비가 지어졌지만 1년안에 다 고장났다고 했다. 마을에 설치된 태양광 장비 10대는 모두 불능이었다. 주민들은 태양광 판넬을 지붕 삼아 빨래건조대로 썼다. 취재진은 태양광 커넥션 박스에서 ‘made in Korea’를 발견했다.

베트남 꽝빈성 반 라오 콘 마을의 호티담(Ho Thi Dam)씨가 살아온 이야기를 하다 호탕하게 웃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한꾸옥?”

65세 호티담(Ho Thi Dam)씨가 한국에서 취재진이 왔다는 소식에 손뼉을 치며 방에서 걸어 나왔다. 거울을 보고 두건을 고쳐 썼다. 숄을 허리춤에 둘렀다. 슬리퍼를 신고 나와 취재진의 손부터 맞잡았다. 그는 한꾸옥? 하더니 “하하하” 웃었다. 눈꼬리에 부채꼴 주름이 피었다.

베트남어로 한국을 부르는 말 ‘한꾸옥’(Han Quoc).

호티담씨는 글을 읽지 못한다. 하지만 2016년 태양광 설비 작업자들이 ‘한꾸옥’이라고 하는 말은 들었다고 했다.

“엄청 더운 날이었어. 장비를 옮기면서 땀을 뻘뻘 흘리더라고.”

“어느 나라에서 지어주는 거냐 했더니 한꾸옥이래. 그래서 물이라도 주려고 했는데…바빠 보여서 못했어.”

반 라오 콘 마을의 호티담(Ho Thi Dam)씨와 남편이 툇마루에 나란히 앉아 웃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호티담씨는 당시 생애 처음으로 전기를 써봤다.

“그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좋았어!”

“어떤게 그렇게 좋으셨어요?”

“정말 좋았다니까!”

그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팔을 크게 양옆으로 펼쳐 보였다.

베트남 꽝빈성 반 라오 콘 마을의 호티담(Ho Thi Dam)씨가 집 뒤뜰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기 앞에서 이야기하다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태양광 발전기 덕분에 마을에는 빛이 들기 시작했다.

선풍기를 사고, 가라오케 기계도 사들였다.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드라마와 뉴스를 시청했다. 국가 전력망이 닿지 않는 산악지역에서만 살던 사람들에겐 인생 첫 경험이었다.

“그땐 온 마을이 시끌시끌했어. 노래 부르고 웃고.”

하지만 마을은 1년도 채 안돼 어두워졌다.

호티담씨 집의 유일한 광원은 머리띠 전등이다. AA 건전지 3개를 넣어 쓴다. 이마에 전등을 두고 음식을 준비하고 집 안을 청소한다. 남편도 헤드 랜턴을 쓴 채 식사한다.

태양광이 설치된 지 6개월이 됐을 무렵, 호티담씨는 텔레비전을 사고 싶다고 아들에게 말을 꺼냈다. 아들은 1시간 30분 떨어진 시내에 나가 100만동(5만원)짜리 TV를 사 왔다. 전선을 연결하는 순간, ‘부지직’ 소리가 났다. 집이 깜깜해졌다. 이후 태양광 발전기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작동한 적이 없다.

“나는 이 마을 바깥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영영 알 수가 없게 됐네. 궁금했는데 말이야.”

2016년 이후 1년 남짓. 반 라오콘 마을의 태양광 발전기 10대는 하나둘씩 작동을 멈췄다. 패널과 연결돼 있던 축전지는 설치 회사에서 뜯어갔다. 외지인이 찾아와 되팔기도 했다. 주민들은 영문을 몰랐다. 고쳐줄 사람들은 오지 않았다. 코로나19가 시작됐다.

마을은 오후 4시만 넘으면 사위가 어두워졌다. 호티담씨의 이웃집에 사는 호티늉(Ho Thi Nhung)(19세)씨는 어두운 밤 골목을 다니다 뱀에 물렸다. 그의 친구 호티홍(Ho Thi Hong)(14세)씨는 석유 등잔에 화상을 입었다. 흉이 혹처럼 남은 중지 손가락을 보여줬다.

석유 등에 데어 손에 흉터가 남은 호티홍(Ho Thi Hong).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초등학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교실 천장에는 형광등과 전구가 없었다. 그 날 공부를 결정하는 것은 날씨다. 한국이 설치한 태양광 발전기가 있었지만 작동을 멈췄다. 기자재가 있어야 하는 철제함에는 땔감이 들어차 있었다. 장작들이 비에 젖지 않기 위한 용도다. 신재생에너지가 설치된 공간에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쓰인 연료인 나무가 채워져 있었다.

꽝빈성 태양광 발전 사업은 한국 국민 세금 1200만달러(약 185억)가 들어간 차관 사업이다. 베트남 정부도 200만달러(약 27억원)를 썼다. 연이율 0.05%, 거치기간은 40년이다. 대출이지만 상환기간이 길고 이자율이 낮아 증여율(공여재원의 무상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은 87%다. 2011년 한국수출입은행이 지원을 결정했다. 시공사는 한국 기업 KT로 선정됐다. KT가 베트남 업체에 하청을 주는 구조다. 2015년 1월 시작돼 2018년 4월 설비 구축, 2019년 9월 유지보수가 끝났다.

베트남 꽝빈성 반 라오 콘 마을 학교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소 패널. 배터리는 없어지고 배터리함에는 장작이 쌓여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하지만 마을 주민들은 2016년 태양광 발전소가 설치된 뒤, 1년도 안돼 모든 장비가 고장났다고 했다.

왜 주민들과 한국 정부의 말이 다를까.

취재진은 태양광을 지어준 베트남 업체를 만나보기로 했다.

반 라오콘 마을에서 차를 돌렸다. 30분을 산비탈을 내려왔다. 데이터 수신 막대가 늘어났다. 쌓였던 메시지들이 도착했다. 연쇄적으로 울리는 알림을 뒤로 하고, 베트남 꽝빈성 인민위원회 공문서에 나온 현지 기업들을 구글에서 찾았다.

‘검색 결과 없음’

A, B업체는 나오지 않았다.

‘경로, 통화, 저장, 공유’

“여기는 업체 정보가 뜨네요. 이쪽으로 가보시죠”

통역사가 말했다.

시내까지 앞으로 한 시간 반. 취재진을 만나주지 않을 수도 있다. 업체가 폐업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인포그래픽 페이지■

태양광과 장작 - 베트남 반 라오콘 르포

(story.asiae.co.kr/vietnam)

원조 예산 쪼개기는 어떤 문제를 가져오나

(story.asiae.co.kr/ODA)

[태양광과 장작] 한국 때문에 이혼했어요 로 이어짐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동허이(베트남)=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동허이(베트남)=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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