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북클럽 3기] 대학생 자녀를 둔 엄마가 읽은 '에타' 삭제 글
[이지애 기자]
작은 애가 지난 학기에 쓴 교양서적을 처분한다길래 "동네 중고서점에 갖다 줄까?" 하고 물어봤다. '에브리타임'(대학생들의 온라인 커뮤니티 플랫폼, 줄여서 '에타')에서 팔 거라고 하길래, 나는 생소한 '에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큰 애가 동생에게 조언을 한다. '에타' 정보가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허접하고 쓰레기 같은 글들도 널렸으니 너무 믿진 말라고. 자신은 요새 앱을 아예 지웠다며 말이다.
어떤 점이 마음에 안 들어 지웠는지 물어보니 한없이 가벼운 글들이 싫다고 했다. 사안의 사회적 파장이나 중요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유머를 가장한 조롱이나 자조 또는 혐오 내용이 대부분인 게시글과 댓글들을 습관적으로 보고 있노라면 왜 자신이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이걸 읽고 있는지 한심하게 느껴졌다고.
큰 애 말을 듣고 '에타'의 분위기가 어떤지 부쩍 궁금했는데 마침 참고할 만한 책을 하나 발견했다. 연세대학교 나임윤경 교수가 학생 13명과 함께 저술하여 9월에 출간한 <공정감각>(문예출판사)이다.
▲ <공정감각> 겉표지 |
ⓒ 문예출판사 |
이 책은 '에타'에서 지속적으로 삭제당했던 학생들의 게시글을 6가지 주제로 묶어 엮은 책이다. 삭제된 글들의 출판이라니, 언뜻 봐도 예사롭지 않은 출간동기인데, 사연은 이렇다.
2022년 5월 연세대학교 학생 두어 명이 청소노동자들의 시위가 학습권을 침해한다며 경찰에 고소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하여 논란이 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에타'에는 고소 및 소송을 진행한 학생들을 지지하는 수많은 글들이 올라왔다고 한다. 문제는 대다수의 글들이 잘못된 정보를 근거로 청소노동자들을 향한 비난과 혐오가 주를 이뤘다는 점이다.
이에 학생들의 공정감각에 문제의식을 가진 나임윤경 교수는 <사회문제와 공정>이란 강의를 개설하여 '에타'에서 자주 조롱, 폄하되는 주제들 즉, 노동, 성차별, 학벌주의, 장애인 이동권, 동성애 퍼레이드, 비거니즘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고자 했다.
수업의 한 과정으로 이 강의를 들은 학생들은 원하는 주제별로 저마다의 경험과 생각을 게시글로 올리며 '에타'가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고 경합하는 공론의 장으로 바뀌기를 시도했다.
하지만 기대가 무색하게도 이들의 글들은 비아냥 속에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지속적 삭제를 당했다고 한다. 실망한 학생들을 보며 나임윤경 교수는 이들의 글들이 더 이상 삭제되지 않도록 아예 책으로 출간할 것을 제안했고, 학생들도 동의하여 출판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런 특별한 배경을 가진 이 책이 독자로서 무엇보다 반가운 이유가 있다. 그동안 잘 들을 수 없었던 20대 학생들의 '다른' 목소리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2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거치며 능력주의를 신봉하는 공정 논란이나 성차별 등의 주제에 대해 혐오를 쏟아내 보수적으로 정치세력화했다는 소위 '이대남'들의 목소리가 언론을 통해 줄기차게 들려왔다.
그들의 말을 접하면서 도대체 그것이 실제로 청년세대의 대표 의견인지 기성세대로서 우려스럽던 터였다. 그런데 <공정감각>에서 이와는 결이 '다른' 20대의 생각들을 만날 수 있다니 반갑고 환영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합리적이고 참신한 학생들의 논리는 책의 여러 곳에서 돋보인다. 연세대 청소노동자 시위 건의 경우, 아무리 등록금을 냈다 해도 조용한 환경에서 공부할 권리인 학생들의 학습권이 인간다운 노동환경에서 일할 권리인 노동자들의 생존권인 노동권을 우선할 수는 없다는 주장이 그렇다.
청소노동이 그렇게 싫으면 다른 직업을 가지라고 하는 억지에 대해서도 직업을 옮기기 어려운 다양한 삶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상력의 부재에서 비롯된 오만임을 성찰해 내는 점도 인상적이다.
또한 '여성도 군대에 가야 진정한 성평등의 시작이다'라는 주장에 대한 반박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군 복무를 절실히 원했던 변희수 하사는 강제전역 시켜버리면서 지금도 자행되고 있는 군대 내 욕설, 폭력, 성추행, 성폭행 등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한 채 현재의 비민주적인 군대에 여성도 다녀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불행의 대결일 뿐 올바른 해결이 아니라는 학생의 일침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학벌주의 옹호론'에 대한 비판의견도 눈에 띈다. 취업 시 학벌주의를 더 심하게 적용하면 좋겠다는 주장에 대해 이 책의 한 학생은 그런 태도야말로 한 번의 로또 당첨이나 물려받은 돈으로 평생 노동하지 않고 편하게 살겠다는 비겁한 심리라고 일갈한다. 대학 입시가 순전히 노력순, 실력순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입시에 유용했던 국영수 문제풀이 능력이 회사에서 업무능력과 정확하게 일치하기 어렵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한편, 논란과 관련된 어처구니없는 일화들도 알게 되어 놀랍기도 하다. 초고학력도 피해 갈 수 없게 된 비정규직 사례로 든 <저주토끼> 정보라 작가의 일화라든가 서울의 한 유명 사립대에서 야심 차게 준비했던 인권강의가 재학생, 졸업생, 학부모로 구성된 한 단체의 거센 항의를 받아 결국 '필수'과목 지정을 철회하고 '선택'과목으로 전환되었다는 일화가 참 씁쓸하다.
20대의 다른 목소리를 듣고 싶다면
글을 읽으며 혹시 나도 은연중에 반지성주의적 주장들에 암묵적으로 편승한 적은 없었는지 뒤돌아 보게 만드는 지점이다. 약자들에 공감하며 연대하고자 고민하고 애쓰는 20대가 여전히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위안이 된다.
"<에브리타임>이 전국 대학생들의 공통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대학생들의 의견을 대표하는 공간은 아니다. 소수의 목소리 크고 선명성이 남다른 사람들의 압도적으로 많은 의견에 언론이 마이크를 갖다 대니, 그들이 마치 20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양하게 된 것이다. "(223쪽)
가짜, 짜깁기, 거짓 정보들이 득세하고 조롱과 혐오의 논리들이 활개 치는 세상이다. 다양한 주장이나 의견들이 '정치적'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지고, 삭제되고, 배제된다. 이런 답답한 현실이기에 '에타'의 왜곡된 현상들을 짚어내고 원인을 밝혀 방향을 제시한 <공정감각>의 시도들이 더 의미 있고 빛나 보인다.
출판에 이르기까지 마음고생하면서도 <공정감각>을 통해 성장해 간 학생들과 아는 것과 삶이 통합된 교육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임을 멋지게 보여준 나임윤경 교수에게 찬사를 보낸다.
'에타'의 혐오, 조롱글들이 거슬려 다른 목소리를 듣고 싶은 20대는 물론 사회의 향방에 책임감을 느끼는 모든 기성세대들에게 필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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