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이 돼버린 비례대표…63년 '전국구' 첫 단추가 문제였나 [비례대표 회의론]
비례대표 의원들의 일탈과 무능 등으로 국회의원 비례대표제 자체가 무용론에 휩싸이는 한국이지만, 사실 비례대표제는 대부분의 선진국이 민주주의 발전의 핵심 수단으로 채택해온 보편적 제도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해 펴낸 ‘2022년도 각국의 선거제도 비교연구’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38개국 중 31개국(86.1%)이 비례대표제를 채택(양원제 국가는 하원 기준)하고 있다.
비례대표로만 의원을 뽑는 국가는 스페인·네덜란드·튀르키예·스위스 등 23개국이다. 한국처럼 다수대표(지역구 의원)제와 비례대표제를 혼합해서 의원을 뽑는 국가는 일본·독일·이탈리아 등 8개국이다. 이 중 한국은 전체 의석 수 300석 중 비례대표가 47석(16%)으로 비율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독일은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를 각각 299명씩 일 대 일 비율(50%)로 뽑는다. OECD 국가 중 비례대표제를 채택하지 않은 국가는 미국·영국·프랑스·캐나다·호주 등 5개국뿐이다.
선거법 전문가인 장승진(정치외교학) 국민대 교수는 “비례대표제는 사표(死票) 방지와 다양한 직능성 보장이란 측면에서 효과적인 제도”라며 “다만 한국에서 논란이 되는 건 애초 도입 취지가 왜곡됐고 기형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비례대표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집권한 1963년 6대 총선에서 ‘전국구’라는 이름으로 처음 도입됐다. 전국구 의원에 44명을 배정하고 무조건 제1당에 과반수를 주는 제도였다. 그 결과 소선거구제하에서 전국 득표율 34%에 불과했던 민주공화당이 의석의 63%(총 175석 중 110석)를 차지했다.
당시 전국구 도입에 관여한 김종필(JP)은 훗날 중앙일보에 연재한 증언록 ‘소이부답’(笑而不答)에서 “(당시) 명분은 ‘전문 지식이 있는 사람을 국회에 동원하기 위해서’라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이북 출신 (5·16) 혁명 동지들에게 자리를 마련해 주는 목적이 더 컸다”고 회상했다. 전두환 정부 땐 전국구 의석 3분의 2를 제1당에 우선 배분하는 형태로 개정하면서 비례대표제는 더 변질됐다.
전문가들은 “결국 비례대표제 논란의 핵심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운용의 문제”라고 말했다. 한규섭(언론정보학) 서울대 교수는 “선거법이 여러 차례 개정되면서 과거와 같이 악용될 소지는 많이 사라졌다”며 “그럼에도 현재 문제점이 나타나는 건 악습을 놓지 못하는 정치인들의 능력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또 “폐단이 있으면 수정·보완이 먼저지, 무턱대고 없애자는 건 ‘반정치주의 포퓰리즘’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장승진 교수 역시 “비례대표제는 축소가 아닌 유지·확대로 가야 한다”며 대안을 제시했다. 그는 “비례대표가 의정 활동보다 차기 지역구 찾기에 골몰하는 게 문제라면, 비례대표를 다시 비례대표로 재공천하는 것이 방안일 수 있다”, “당 공천관리위원회가 비례대표 순번을 정하는 게 아니라, 당원 투표로 순번을 정하는 방법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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