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다원예술 대모’ 김성희의 20년을 회고하다
지난 20년간 동시대 예술의 중요한 변화 이끈 작가들 회고전
어떤 개념에 대한 용어가 잘못 만들어졌지만 오래 사용하면서 그대로 굳어지는 경우가 있다. 국내 예술계에서는 ‘다원예술’이 아닐까 싶다. 다원예술은 2005년 기존 장르로 분류하기 모호해 지원받지 못하던 실험적 예술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 용어로 만들어졌다. 현대예술의 특징이 장르주의를 해체하는 ‘다원성’인데, 다원성을 보여주는 예술 활동을 통틀어 다원예술로 부른 것이다. 특히 2007년 출범해 한국 예술계에 큰 영향을 끼친 페스티벌 봄(출범 당시엔 스프링 웨이브 페스티벌이었으나 이듬해 명칭 변경)이 ‘국제다원예술축제’란 수식어를 붙이면서 다원예술은 하나의 장르처럼 여겨지게 됐다.
한국 예술계에서 김성희 옵/신 페스티벌 예술감독 겸 계원예술대 교수는 다원예술의 상징적인 존재다. 김 감독은 2002~2005년 국제현대무용제(MODAFE) 프로그램 디렉터, 2007~2013년 페스티벌 봄 예술감독, 2013~2016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초대 예술감독, 2017~2018년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 감독을 역임하며 다원예술을 한국에 자리 잡도록 만들었다.
특히 페스티벌 봄은 당시 국내에선 낯선 포스트 드라마 연극이나 렉처 퍼포먼스 등 급진적인 작업을 선보이며 한국의 젊은 예술가들에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은 김 감독 시절 유럽 중심 예술 담론으로부터 벗어나 아시아 예술의 위치를 재정립하는 한편 아시아 예술가들의 국제 진출을 지원했다.
다만 2020년부터 옵/신 페스티벌을 이끄는 김 감독은 자신이 안착시킨 다원예술 용어 대신 ‘동시대 예술’을 사용하고 있다. 최근 국민일보와 만난 김성희 감독은 “우리나라에는 그동안 컨템퍼러리 신(scene)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이름도 없이 다원예술이라고 불리며 겨우 명맥을 이어왔다”면서 “하지만 이제는 ‘동시대 예술’에 대한 의식이 많이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전히 낯설고 어렵다고 이야기하지는 사람도 많지만 ‘예술이 꼭 친숙해야 하는가?’라고 되묻고 싶다”고 피력했다.
옵/신 페스티벌은 2020년 출범 이래 가을마다 ‘장(Scene)을 벗어난다(Ob)’라는 축제 이름처럼 특정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연극, 무용, 퍼포먼스, 영상, 설치 등 다양한 장르의 동시대 예술을 관객과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4회째인 올해는 30일부터 11월 26일까지 서강대 메리홀, 콘텐츠문화광장, M극장 등 다양한 공간에서 지난 20년간 동시대 예술의 변화를 가져온 아티스트들의 회고전으로 열린다. 해외에선 윌리엄 포사이스(미국), 로메오 카스텔루치(이탈리아), 제롬 벨(프랑스), 리미니 프로토콜(독일), 아피찻퐁 위라세타쿤(태국), 호추니엔(싱가포르), 오카다 토시키(일본), 엘 콘데 데 토레필(스페인), 마텐 스팽베르크(스웨덴) 등의 작품이 이번에 선보여진다. 또 국내에선 서현석, 박민희, 노경애, 위성희, 남정현의 작품이 준비됐다.
올해 옵/신 페스티벌은 기획자로서 한국 예술계에 큰 영향을 끼친 김성희 감독의 20년 궤적을 돌아보는 회고전의 의미도 동시에 지닌다. 김 감독은 “공연예술의 역사를 보면 1990년대에서 2000년대로 넘어가며 지각변동이 일어났고, 지난 20년간 그 흐름이 이어져 왔다”며 “운 좋게 그 시기에 기획자로서 한국에 동시대 예술을 소개하고 예술계의 변화를 이끄는 일을 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회고전은 지난 20년을 정리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자리”라고 덧붙였다.
특히 김 감독은 동시대 예술 기획자의 세대교체를 언급했다. 페스티벌 봄 시절부터 그와 손발을 맞춰왔으며 현재 옵/신 페스티벌을 거의 공동으로 프로그래밍하는 김신우 프로듀서가 오래지 않아 자신의 뒤를 이을 것이라고 예고하고 나섰다. 김 감독은 “시간이 흘러 사회적, 정치적, 예술적 환경이 많이 바뀐 만큼 이제 페스티벌을 새로운 형태로 고안해야 할 때가 왔다”면서 “동시대 예술에 대한 미래의 페스티벌은 다음 세대가 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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