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패러다임의 전환
중국·대만 갈등으로 세계 전쟁 우려 제기
하지만 2차대전 후 ‘전쟁에서 교역으로’ 패러다임 전환돼
미·중 경쟁처럼 국가 간 전쟁 대신 경제 패권 다툼으로 변화
북한도 교역이 필요하지만 체제 위협 탓 생존 딜레마
그런 시각으로 분석·대비해야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동북아 안보에서도 분단된 남북한 문제와 중국·대만 문제가 관심의 대상이다. 세계가 다시 전쟁 상태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사실 인류는 BC 1만년쯤 집단생활을 시작한 이후 가능하기만 하면 다른 부족이나 국가를 약탈, 정복하는 일에 착수했다. 그래서 국제 관계는 약육강식과 전쟁 패러다임이 지배했다. 알렉산드로스, 카이사르, 칭기즈칸, 콘키스타도르, 나폴레옹, 히틀러 등은 모두 전쟁 패러다임의 지배자들이다. 약육강식 시대는 세계 2차대전 당시 최고조에 달했다. 서양은 공산주의와 파시즘 등 이념까지 내걸고 투쟁을 북돋웠다. 동아시아 지역도 일본이 메이지유신 이후 서양의 약육강식의 전쟁 패러다임을 흉내 낸 탈아입구(脫亞入歐)의 기치를 내걸고 이 대열에 참여하게 됨에 따라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그런데 2차대전 이후에는 군사력을 앞세워 무력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자원을 수탈하려고 시도한 경우가 거의 없었다. ‘전쟁에서 교역으로’라는 패러다임으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왜 수천 년 인류 역사를 지배해 온 약육강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가? 전쟁에서 교역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가져온 가장 중요한 원인은 교통통신과 과학기술의 혁명적인 발전이다. 이런 발전을 통해 이제 우리는 전쟁을 하지 않고 교역으로 필요한 자원이나 노동력을 직접 얻을 수 있게 됐다. 또 전 지구적으로 투명성이 증가돼 수천년간 가능했던 노예 착취나 자원 수탈이 이제 불가능해졌다. 동시에 핵무기의 등장으로 인해 전쟁이 확대되면 승자도 공멸하는 상황이 생기게 됐다.
그렇다고 교역 패러다임에서 군사력이 필요 없어진 것은 아니다. 무력은 계속 필요하지만 정복의 앞잡이로서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교역으로 확보한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부차적 역할을 하게 된다. 2차대전 이후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경제가 피폐해져 결국 소멸한 소련이 이를 증명해준다. 전쟁에서 교역으로라는 패러다임 전환은 인간성이 바뀌고, 제도가 사람을 바꾸어서 생긴 것이 아니다. 인간성은 변하지 않는다. 이윤을 추구하자는 목적은 인간성에 내재해 있다. 목적이 아니라 방법이 바뀐 것이다.
“우리가 파악하고 있는 인류의 본성에 비춰볼 때 초기의 항해자들은 가능한 대로 약탈을 했고, 어쩔 수 없을 때만 교역을 했을 것이다.” 허버트 웰스가 남긴 명언이다. 인간의 본성을 꿰뚫어보고 있다. 역사의 흐름도 결국 이런 인성론을 따라가게 된다. 교역 패러다임 아래 그만큼 이제 국가 간 전쟁의 가능성이 낮아졌다. 국가 간에 경제력을 둘러싼 패권 다툼이 전쟁을 대신하게 된다. 21세기 지정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미·중 패권 경쟁이 그렇게 진행된다.
그러나 교역 패러다임 내에서도 역사에 기인하는 전쟁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바로 그런 종류에 속한다. 이 두 가지 전쟁은 한쪽의 괴멸이 아니라 결국 협상으로 나아가게 된다. 워낙 역사적으로 걸려 있는 문제가 많아 전쟁 당사자 양측이 지칠 정도로 싸우고 나서 협상하게 되는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구 전체적으로 볼 때 일부 국가들은 전쟁의 확대를 원하고 있겠지만, 교역의 패러다임 아래 대부분의 국가들은 전쟁의 확대가 아니라 축소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활동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교역의 패러다임 내에서 영토 점령은 점령자에게 이득이 아니라 추가 부담을 준다. 점령 국가가 이제는 점령 지역의 치안과 식량 문제까지 책임을 지게 된다. 미국의 월남전과 이라크 전쟁 실패가 이것을 보여준다.
교역 패러다임에서 동북아 상태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연 3000억 달러의 교역을 주고받는 중국·대만 관계는 교역 패러다임에 놀라운 정도로 잘 적응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소련의 소멸이라는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반드시 교역을 해야 한다. 그런데 교역은 바로 북한의 통제체제를 위협해 파멸로 이끌게 될 것이다. 교역을 선택할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다. 이것이 평양에 닥친 생존 딜레마다. 우리는 전쟁에서 교역으로 패러다임이 전환하고 있다는 그런 시각을 가지고 남북 문제뿐 아니라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상황을 분석하고 준비할 줄 알아야 한다.
최영진 전 주미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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