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나는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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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것과 아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고 말합니다.
적어도 교회에서 믿음에 관해 말한다면 그것은 특정한 환경과 대상이 설정돼 있고 그에 대한 확신에서 말을 시작해야 합니다.
첫째는 이미 주어진 선한 약속이 있고 그 약속이 뚜렷하다는 것.
다만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신뢰가 바른 것인지 아닌지, 왜 그 '신'에게 나의 모든 심장을 맡겨 놓고 살아야 하는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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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것과 아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고 말합니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 말입니다. 분명히 믿음이란 앎이 중단되는 곳에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아는 것 없이 믿기만 하면 그것은 불확실하고 의심스럽습니다. 그럼 기독교 신앙이란 대체 무엇일까요. 아는 것과 믿는 것, 고대로부터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이 이 문제로 머리를 쥐어짰지만 제가 보기에 앎과 믿음의 문제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지는 것과 비슷합니다.
중요한 건 그 순서가 아닙니다. 신앙과 지성은 동전의 양면 같아서 앎이 없는 믿음은 우리에게 어떤 방향도 제시할 수 없습니다. 이는 마치 목적지 없이 떠도는 바다의 난파선과 같습니다. 믿음은 스스로 허튼소리가 아니라는 걸 설명할 준비가 돼야 합니다. 즉, 견고한 믿음이란 의심받아야 하고 의심을 뚫고 나갈 만반의 태세를 갖춰야 합니다.
적어도 교회에서 믿음에 관해 말한다면 그것은 특정한 환경과 대상이 설정돼 있고 그에 대한 확신에서 말을 시작해야 합니다. 이를 우리는 ‘신앙고백’이라고 말합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보지요. 히브리서에선 믿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히 11:1) 이 짧은 문장은 그리스도인이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보여줍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의심’ ‘불안’ ‘불확실’이라는 말은 무지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즉 믿음은 히브리서의 설명대로 증명할 수 없는 것에 대한 확고한 기대이고 침착한 희망이며 확실한 가능성입니다. 여기에는 모순된 두 가지 상황이 공존합니다.
첫째는 이미 주어진 선한 약속이 있고 그 약속이 뚜렷하다는 것. 두 번째는 선한 약속이 있지만 현실은 정반대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하나님은 악을 물리치고 선이 이기는 당신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곳에서 당신의 자녀를 구원하겠다는 약속이 주어집니다.
하지만 우리 사는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악이 득세하고 부정부패와 속임수에 능하고 철면피 같은 자들이 높은 자리에 올라 목소리를 높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약속이 선명하게 보일수록 이런 현실에 화가 치밀고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게 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흔들리는 삶을 지탱하는 단단한 기반입니다. 우리는 이 기반에 몸과 영혼을 기댑니다. 이것을 ‘신뢰’라고 부릅니다.
신뢰의 대상이 누구, 또는 무엇인가에 따라 인생의 방향과 열매가 결정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삶을 지탱하는 대상을 두고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간단히 ‘신(神)’이라고 부르는데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그의 대교리문답(1529)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네 심장이 걸려 있는 것 그것이 바로 너의 신이다.”
그 신이 누군가에겐 돈과 재물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겐 유력한 정치인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 그리스도 예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신뢰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심장을 누군가에게, 무엇에게 맡기며 삽니다. 신뢰가 필요한지 아닌지는 우리의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신뢰가 바른 것인지 아닌지, 왜 그 ‘신’에게 나의 모든 심장을 맡겨 놓고 살아야 하는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제껏 내 심장을 맡긴 그 신이 터무니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우리 삶은 깊은 상처로 파이게 될 것입니다. 내 심장을 걸어놓은 그 대상은 정말 참 신일까요. 우리 신앙고백이 돈이나 정치인 또는 해 뜨면 사라질 허망한 안개를 향한 게 아닌지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최주훈 목사(중앙루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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