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선 못 보던 하드코어 오페라, 대구에선 봤다
1909년 1월 독일 드레스덴에서 오페라 ‘엘렉트라’가 초연됐을 때 반응은 격렬했다. 한 신문은 작곡가가 대본가를 심벌즈 스틱으로 마구 두드리는 만평을 실었다. 대본가는 그리스 극작가를 꼭 붙잡고 있는 그림이었다.
오페라의 작곡가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1864~1949). 그리스 신화 중 존속살해가 담긴 아가멤논-엘렉트라 일가의 이야기를 선택한 대본가는 휴고 폰 호프만스탈(1874~1929)이었다. 악기로 사람을 두드려 패는 만평은 거대한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상징한다. 슈트라우스는 보통 두 파트로 나누는 바이올린과 비올라 섹션에 한 파트씩을 추가하고 트럼펫 6대, 바그너 튜바 4대, 팀파니는 8대를 배치하도록 했다. 시작부터 커다란 소리로 불안을 일으킨다.
강렬하고 떠들썩했던 이 오페라가 한국 초연됐다. 세계 초연 114년 만이다. 이달 20~21일 대구오페라하우스였다. 올해로 20회가 된 대구국제오페라축제가 이 작품을 대담하게 골라 한국 초연했다. 불가리아 소피아 국립 오페라발레 극장과 합작해서 들여온 작품이다. 불가리아에서 2021년 초연한 프로덕션이었다.
무대는 간결하고 상징적이었다. 불가리아의 연출가 플라멘 카르탈로프는 회전하는 투명한 건축물을 중심으로 각 등장 인물의 심리가 드러나도록 했다. 남편을 살해한 왕비,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어머니를 죽이는 남매의 내면이 긴장감 있게 전해졌다.
이번 공연은 청중을 압도해야 하는 ‘엘렉트라 사운드’에서도 합격점을 받았다. 축제 상주 단체인 디오 오케스트라에 객원 연주자가 더해진 사운드였다. 오케스트라 사이즈는 팀파니를 제외하고는 거의 원전과 같았다. 음악 칼럼니스트 이용숙은 “금관 악기의 사운드가 안정적이었고, 성악가들과의 균형도 좋았다”고 평했다.
서울에서도 못 보던 하드코어 작품의 성공적 초연에서 볼 수 있듯, 대구는 ‘오페라 특화 도시’를 넘어 ‘오페라 혁신 도시’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엔 바그너 ‘니벨룽의 반지’ 시리즈 4부작을 독일 만하임 극장과 함께 전막 공연했다. 16시간에 달하는 대작이다. 대구오페라하우스 정갑균 관장은 “바그너를 넘어 더 나아갈 작품이 필요해 슈트라우스를 무대에 올리게 됐다”고 했다.
관객 호응도 좋다. 대구오페라하우스에 따르면 엘렉트라 2회 공연에 평균 77.8% 유료 관객이 들었다. 난해하고 무대에 올리기 쉽지 않은 작품을 일부러 찾아오는 청중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정갑균 관장은 “지난해 바그너는 관객 중 43.5%가 외지에서 왔다”고 설명했다.
규모가 크고 공연이 어려운 오페라를 위해 대구의 기업들도 나섰다. 대구에 근거를 둔 철강 회사 TC(태창철강그룹), 신세계 대구법인, 산업공구 기업 크레텍 등이 대구 오페라 축제를 꾸준히 후원하고 있다. 정 관장은 “후원의 지속성에 초점을 두고 재정을 운영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대구에서만 보는 오페라를 계속해서 무대에 올릴 계획”이라고 했다.
어렵고 낯선 오페라와 함께 친숙한 작곡가의 오페라도 함께 가는 투 트랙 전략이다. 올해 축제에서는 슈트라우스의 ‘엘렉트라’에 앞서 ‘살로메’를 공연했고 베르디의 ‘리골레토’ ‘맥베스’ ‘오텔로’를 배치했다. 축제는 다음 달 10일까지 계속된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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