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 그 참을 수 없는 짧음에 대하여

이하얀 2023. 10. 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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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이 넘는 드라마를 몇 분으로 요약해 놓은 클립으로 본다는 후배의 말은 신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한’ 드라마에 몰두해야 하는 에디터에겐 충격이었다. “그럼 이해가 가니?”라는 세대 차이 가득한 대화를 나눈 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15초짜리 영상 ‘숏폼’이 대세란다. 이 짧은 영상에 무엇을 얼마나 담아낼 수 있을지 의문을 품었지만 지금은 밤낮없이 습관처럼 엄지를 굴리는, 그야말로 ‘숏폼 중독자’가 돼버렸다. 유튜브를 틀면 쇼츠, 인스타그램을 열면 릴스, 틱톡도 마찬가지. 단 몇 초 안에 빠르게 재미와 정보를 쏟아내고 재빨리 다음 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굳이 관심 분야가 아니더라도 인트로 1~2초를 지나면 어느덧 숏폼 한 편은 뚝딱이고, 내용이 궁금해지면 본편까지 섭렵한다. 춤과 노래, 메이크업은 물론 다양하게 옷 입는 법까지.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고 눈에 쏙쏙 들어오니 영상 속에 있는 아이템은 금세 저장을 부른다.

이렇게 스마트폰에서 15초~1분이 걸리지 않는 숏폼 영상은 전 세계를 휩쓸며 사용자와 시청자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리고 있다. 짧디짧은 숏폼이 인기를 끄는 데는 이유가 있다. 언제 어디서든 간편하게 소모할 수 있고, 부담 없이 따라 할 수 있도록 촬영과 편집도 쉽다. 160cm, 57kg을 위한 체형 코디, 10만 원 이하 쇼핑템, 웨스턴 부츠 돌려 신기, 다리 길어 보이는 셔츠 마무리 팁 등 ‘누가 여기에 내 얘기를 했나’ 싶을 만큼 나에게 꼭 맞는 섬네일로 클릭을 부른다. 덕분에 에디터를 포함한 수많은 이용자는 더 개인화되고 맞춤화된 정보를 얻는 동시에 쇼핑까지 하는 경험을 만끽한다. 이용자가 곧 제작자가 될 수 있고, 동시에 소비자가 되다 보니 이들의 확산 속도는 상상 이상으로 빨랐다. 주목할 점은 이 중독성 가득한 플랫폼이 보는 이들에게 구매를 자극하는 효과가 커 자연스럽게 커머스 영역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 영상에 상세 페이지를 더해 제품 정보를 간단하게 알아볼 수 있게 했고, 커머스 기능까지 더해 보다 쉽고 편하게 구매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우리는 지금 엔터테이너적 성향을 지닌 쇼핑 플랫폼의 진화를 몸소 겪고 있다. 모바일 속에서 신나게 놀다 보니 어느덧 쇼핑까지 하게 되는 이유다. 그렇게 숏폼은 수많은 챌린지를 쏟아내며 오늘날 새로운 놀이문화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 놀이들이 자연스럽게 입소문으로 이어지며 10대들의 놀이터였던 플랫폼은 20~30대까지 이용자가 확장되는 추세다.

숏폼의 기세는 패션 하우스까지 이어지고 있다. 몇 년 전 빈티지 보자기를 두르고 할머니 옷장에서 막 꺼내온 듯한 옷가지를 매치해 ‘구찌 모델이 되는 법’이라는 기상천외함을 보여준 챌린지는 패션을 잘 모르는 대중이 쉽게 브랜드를 즐길 수 있도록 한 패션 숏폼의 상징적인 콘텐츠였고, 이는 구찌의 틱톡 팔로어를 늘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무엇을 하든 ‘재미’있어야 한다는 펀슈머(Funsumer)들의 표적이 되기에 충분했다. 2024 S/S 남성 컬렉션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퍼렐 윌리엄스의 첫 번째 루이 비통은 틱톡으로 생중계됐다. 100만 명의 시청자가 그의 쇼를 지켜봤고, 200만 명의 ‘좋아요’를 받으며 브랜드의 틱톡 계정이 화제가 됐다. 이를 계기로 현재 루이 비통 계정은 1000만 명이 넘었다. 다니엘 리의 감성 얹기에 푹 빠진 듯한 버버리 계정도 흥미롭다. 그의 컬렉션을 상징하는 푸른 장미를 위트 있게 표현한 짧은 영상들은 난해한 듯하지만 다니엘 리의 ‘쿨’한 감성이 녹아들어 유저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는 버버리에 새롭게 부임해 자신만의 컬러를 구축하려는 다니엘 리의 묘수가 아니었을까.

또 휴고 보스는 ‘코리아 스타일 에딧’이라는 이름의 소셜 캠페인을 공개했다. 2200만의 틱톡, 400만 인스타그램 팔로어를 보유한 글로벌 크리에이터 창하를 필두로 한국의 상징적 문화를 보여줄 예정. 노래방과 치킨, 맥주, 스티커 사진 등 서울을 즐기는 ‘노는 문화’ 속에 자연스럽게 컬렉션을 소개하겠다는 취지다. 그런가 하면 서울도 숏폼에 주목하고 있다. 서울 패션위크는 틱톡에서 런웨이 영상을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한 달 동안 #틱톡패션 #서울패션위크 등의 해시태그와 함께 서울의 개성 있는 패션 스타일을 업로드하도록 장을 마련한 것. 이렇게 숏폼을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하고 활용당하는 예는 지금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점점 짧아지는 패션 콘텐츠에 우려를 표하는 이들도 있다. 지난 F/W 시즌 쇼를 시작한 지 3분 만에 끝낸 마크 제이콥스의 런웨이는 많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변하는 패션 트렌드, 그리고 앞서 말한 릴스·틱톡·쇼츠 등의 점점 짧아지는 콘텐츠, 과거 패스트 패션에서 보았던 패션 주기가 하이패션에까지 미치는 데 불편함을 표한 것이다. 모두가 ‘빨리빨리’에 몰두할 때 다른 길을 짚는 묵직한 일침을 마냥 흘려보낼 일은 아니다. 숏폼에 밤낮으로 진심이었던 지인들도 가끔 ‘트인낭(트위터는 인생의 낭비다)’이라며 “인스타그램이 없어졌으면 좋겠어!”라는 진심과 허언 사이의 말을 내뱉는 걸 보면 분명 양날의 검은 존재하는 듯. 전 세계적 유행인 ‘더 빨리’ ‘더 짧게’로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실험적인 놀이터에 진입하기 시작한 패션 신은 재미와 진통을 겪으며 내일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그 사이를 가장 명민하게 줄다리기하는 숏폼의 신흥 강자는 누구일까. 오늘도 스마트폰의 세계를 현란하게 탐험해 본다. 여기에 또 어떤 재미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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