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던진…LG전자의 승부수 통했다

김경민 매경이코노미 기자(kmkim@mk.co.kr), 반진욱 매경이코노미 기자(halfnuk@mk.co.kr) 2023. 10. 25.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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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LG그룹 버팀목

LG전자 실적이 날개를 달면서 모처럼 LG그룹 ‘맏형’ 자존심을 세웠다. LG디스플레이, 이노텍, 생활건강 등 다른 계열사들이 극심한 실적 부진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LG전자는 과감한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으로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오랜 기간 고착화됐던 ‘가전 전문 기업’ 이미지에서 벗어나 전장 등 신사업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는 중이다.

LG전자가 올해 3분기 시장 예상치보다 더 높은 실적을 기록했다. B2B 전환과 전장 사업 성장의 수혜를 톡톡히 봤다는 설명이다. (LG전자 제공)
LG전자 3분기 실적 두각

영업이익 33% 늘어 1조 육박

LG전자는 지난 3분기 연결 기준 매출이 20조7139억원, 영업이익은 9967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밝혔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2.2%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이 33.5% 늘었다. 3분기 기준 영업이익으로는 2020년(1조738억원) 이후 최대치다. 이번 영업이익은 증권가 예상치(8084억원)도 20% 이상 웃돈 ‘어닝 서프라이즈’다. 보통 하반기가 비수기였던 기존 가전 기업 공식을 깨고 역대급 실적을 새로 썼다.

LG전자가 호실적을 낸 배경에는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이 자리한다는 평가다. LG전자는 2030년까지 콘텐츠 등 무형(비하드웨어), 자동차 전장(전자부품), 신사업 등 3대 사업 매출 비중을 가전보다 높이기로 했다. ‘매년 TV, 세탁기만 팔아선 생존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3분기 실적 개선의 일등 공신은 전장 사업이다. LG전자의 신성장동력인 전장 사업은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전기차 부품, 차량용 램프 등이 주축이다. 사업 부문별 실적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LG전자 실적이 분기 기준 사상 최대치를 달성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지난해 8조6490억원이었던 LG전자 VS사업본부 매출은 올해 처음으로 10조원을 넘길 전망이다.

LG전자는 전장 사업에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유럽 시장 확대를 위해 헝가리 미슈콜츠에 LG마그나이파워트레인의 생산 기지를 새로 구축하기로 했다. LG마그나이파워트레인은 LG전자와 캐나다 자동차 부품 업체 마그나인터내셔널이 2021년 설립한 합작 회사다. 새 생산 기지는 2025년 완공해 전기차 파워트레인 등 핵심 부품을 공급할 계획이다.

LG전자의 차량용 조명 자회사 ZKW는 수주를 점차 늘리는 중이다. 최근 스웨덴 자동차 브랜드 볼보의 전기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 ‘EX90’에 발광다이오드(LED) 스마트 헤드램프를 공급하기로 했다. 130만픽셀 이상 디지털 고화질(HD) 조명 모듈로 교통 상황에 따라 빛의 세기, 높이 등을 조절해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차량 운전자의 눈부심을 방지하는 기능을 갖췄다. ZKW는 LG전자가 전장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2018년 인수한 오스트리아 전장 기업이다. 차량용 헤드램프, 후방램프 등을 생산해 BMW,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포르쉐 등 완성차 업체에 주로 납품해왔다. 이와 함께 전장 부품 양산에 들어간 LG마그나 멕시코 공장은 북미 시장 공략에 힘쓰는 중이다.

조주완 LG전자 사장도 일찌감치 전장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오는 2030년까지 전장 사업에서 매출 20조원을 달성해 ‘글로벌 톱10 전장 업체’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밝힌 바 있다. 올 9월 독일 뮌헨에서 열린 세계 최대 모터쇼 ‘IAA 모빌리티 2023’에서는 “자동차가 정교한 전자제품으로 탈바꿈하는 만큼 70년 동안 가전 사업에서 노하우를 쌓은 LG전자가 모빌리티 변화를 이끌 것”이라며 “모빌리티 선두 기업과 손잡고 혁신의 속도를 높여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생활가전도 전장과 함께 실적 효자 역할을 했다.

시스템 에어컨, 히트 펌프(전기에너지로 열을 내는 장치),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냉난방공조(HVAC)를 앞세운 B2B 비중 확대로 실적 개선을 이끌었다는 평가다. HVAC는 냉난방을 비롯해 습도, 공기 질 관리 전반을 아우르는 분야다. 탄소를 덜 배출하도록 설계돼 친환경, 고효율을 중시하는 북미, 유럽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모습이다. 주력 사업인 가전과 미래 성장동력인 전장이 나란히 기대 이상의 호실적을 견인했다는 평가다. LG전자 관계자는 “북미, 유럽을 중심으로 늘어나는 친환경·고효율 수요에 대응해 히트 펌프, ESS 등 냉난방공조 사업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소비자 눈치만 보던 세월 ‘안녕’

B2B 기업으로 체질 전환 성공

LG전자가 전장 사업에서 뚜렷한 성과를 낸 배경을 돌이켜보면 20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LG전자는 당시 회사의 운명을 바꾼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수년간 적자만 지속해온 스마트폰 사업에서 전격 철수한 것. 완성폰 판매 시장에서 손을 떼고 디스플레이, 광학 부품 등 B2B 산업 중심으로 스마트폰 사업을 재편했다. 동시에 스마트폰 매출 공백은 새로운 먹거리인 전장 사업에서 얻겠다는 복안을 발표했다.

우려는 상당했다. 주력 사업인 가전 성장세가 주춤한 가운데, 매출 상당 부문을 차지했던 스마트폰 사업을 포기하는 게 과연 옳은가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전장에 대한 불신도 컸다. 당시만 해도 전장은 ‘확실한’ 수익을 보장해주는 사업이 아니었다. 전장 사업 확대를 위해 야심 차게 인수한 오스트리아 전장 업체 ZKW도 시너지를 못 내는 상태였다. 그야말로 ‘불확실성’만 가득했다.

하지만 2년 만에 분위기는 바뀌었다. 적자 사업인 스마트폰을 정리한 후 LG전자는 쾌속 질주를 거듭했다. 성장세가 멈췄다던 가전 사업은 해외 시장 공략에 성공하며 매출이 상승세를 탔다. 완성폰 사업 철수 여파로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부품 산업은 애플 등 해외 고객사 러브콜이 쏟아지며 오히려 성장했다.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지적받던 전장 부문은 이제 LG전자 실적을 책임지는 핵심 사업이 됐다. B2C 중심에서 B2B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성공적으로 교체했다는 평가다.

B2B 사업의 핵심인 전장 사업은 2022년, 첫 연간 흑자를 기록하며 LG전자의 주력 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전장 사업 수주 잔고는 뚜렷한 증가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2020년 55조원에서 2021년 60조원, 지난해 80조원으로 성장했고 올해 말에는 100조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통상 수주 후 2년의 연구개발(R&D)을 거쳐 매출로 인식되는 점을 감안하면 내년 이후 전장 사업 실적 기여도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김동원 KB증권 애널리스트는 “LG전자 전장 사업 영업이익이 전체 영업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올해 3%, 내년 11%로 추정된다. 내년 전장 사업 매출은 13조원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장 사업에서 자신감을 얻은 LG전자는 신사업 발굴에도 힘쓰는 중이다. LG전자는 2020년 말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을 위해 미국 실리콘밸리에 북미이노베이션센터(LG NOVA)를 설립했다. 당시 최고전략책임자를 맡아온 조주완 사장이 밑그림을 그린 조직이다. 백악관 혁신위원으로 일했던 사물인터넷(IoT) 전문가 이석우 센터장(전무)을 영입해 신사업 발굴, 스타트업 투자를 맡겼다. 최근 커넥티드 헬스(연결성 기반 건강 관리), e모빌리티 인프라, 메타버스 등 유망 산업을 선정하고 스타트업 투자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다행히 성과는 나쁘지 않다. 일례로 가상현실(VR) 기반 두뇌 훈련 전문 스타트업 뉴로트레이너는 최근 미국 벤처 투자사인 9.58벤처스로부터 150만달러 투자 유치를 받았다. 이 스타트업은 미국 프로축구팀 LA 갤럭시의 공식 훈련 파트너로 주로 운동 선수들 인지 능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사업을 해왔다. LG NOVA가 투자한 가상현실 원격 의료 서비스 스타트업 XR헬스는 올해 스페인의 VR 정신 건강 솔루션 플랫폼 아멜리아와 합병했다. 이를 통해 최대 규모 확장현실(XR) 기반 의료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했다.

여세를 몰아 LG NOVA는 투자 규모를 더 늘리기로 했다. 지난 8월 글로벌 벤처 투자 기업 클리어브룩과 협약을 맺고 내년 말까지 1억달러 규모 이상 스타트업 육성 펀드를 조성할 계획이다. LG전자 입장에서는 투자 스타트업과의 기술 교류를 통해 신사업을 키우는 기반을 다졌다는 평가다.

LG전자의 고민거리는 젊은 세대와의 접점이다. 접점을 늘리기 위해 독특한 마케팅을 시도하는 등 노력을 이어간다. 사진은 서울 경동시장에 문을 연 체험 공간 ‘금성전파사’. (LG전자 제공)
LG전자 아킬레스건은

‘잘파세대’ 인지도 ↓, 가전 성장 한계

잘나가는 LG전자지만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LG전자 브랜드 파워 감소, 가전 사업의 한계는 여전히 큰 고민거리다.

LG전자의 가장 큰 고민은 ‘젊은 세대와의 접점’이다. 스마트폰 사업에서 철수하면서 ‘잘파세대(Z세대와 알파세대의 합성어)’와의 접점이 사라졌다. 현재 1020세대는 LG전자의 주력 가전인 TV, 노트북보다는 스마트폰이 훨씬 익숙한 세대다. 라이벌인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갤럭시’가 견고한 덕분에 젊은 세대 사이에서 인지도가 높다. 반면, LG전자는 지금 젊은 세대와 뚜렷한 접점이 없다. 지금 젊은 세대는 LG라는 브랜드 자체가 생소하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주력인 가전 사업의 한계도 고민거리다. 전장 사업이 빠르게 성장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매출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가전 사업이 뒤를 받쳐줘야 한다. 가전 사업은 한계가 명확하다. 교체 주기가 2년인 스마트폰과 달리 TV, 냉장고, 에어컨 등 가전은 교체 주기가 길다. 대부분 최소 10년 단위다. 빠른 매출 성장을 기대하기 힘들다. 이를 위해 의류 관리기 스타일러와 홈브루, 와인 냉장고, 이동식 TV 등 새로운 유형의 가전을 잇따라 내놓지만, 스타일러를 제외하고는 매출을 올려줄 정도로 큰 시장을 형성하지는 못하고 있다.

물론 LG전자도 가만히 손만 놓고 있지는 않다. 대표적인 예가 e스포츠 후원이다. 젊은 세대에게 인기가 높은 e스포츠를 통해 브랜드를 최대한 노출하는 전략이다. 게이밍용 모니터를 e스포츠팀 또는 대회에 후원하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무난하게 진행’하는 마케팅 전략도 바꿨다. 전자제품을 전시하는 공간 ‘금성전파사’를 열고, 플레이모빌 등과 협력해 ‘LG전자 굿즈’를 내놓는다. 독특한 마케팅을 좋아하는 젊은 세대를 공략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가전 사업의 한계는 ‘소프트웨어 전략’으로 풀어갈 예정이다. 콘텐츠와 플랫폼 운영체제(OS) 등을 공급함으로써 지속적인 매출을 올리겠다는 것이다. 박형세 LG전자 HE사업본부장은 “LG전자는 더 이상 단순한 하드웨어 제조 업체가 아니다. 다양한 세대에 차별화된 경험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혁신적이고 개방적인 소프트웨어를 갖춘 플랫폼 기업”이라고 강조했다. 콘텐츠·서비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향후 5년간 1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플랫폼 LG’가 내세우는 대표 상품은 ‘웹OS(webOS)’다. 전 세계 2억대에 달하는 LG 스마트TV를 구동하는 운영체제다. LG 스마트TV 외에도 타 TV 브랜드와 다른 제품군에도 웹OS를 공급하는 등 플랫폼 생태계를 키운다는 목표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1호 (2023.10.25~2023.10.3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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