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대 선 K반도체, 반등론 들여다보니

최창원 매경이코노미 기자(choi.changwon@mk.co.kr), 반진욱 매경이코노미 기자(halfnuk@mk.co.kr) 2023. 10. 25.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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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버·HBM이 끌지만 V자 반등 ‘글쎄’
이대로는 도태…‘첨단 패키징’에 사활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반도체 위기론이 올해도 이어지는 모습이다. 글로벌 불확실성이 지속되지만 주요 반도체 업체들 감산으로 재고가 줄자 일각에서는 반등론이 고개를 든다. 매크로 환경 변화로 과거와 달라진 반도체 반등론의 필요충분조건 3가지를 살펴봤다.

PC와 스마트폰 수요가 부진한 와중에, 메모리 수요 증가를 위해서는 서버 업체들의 메모리 구입이 중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진은 네이버 데이터센터 내부 전경. (네이버 제공)
[반등의 조건 1] 서버

내년 2분기 투자 늘 듯

올 10월 들어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반등했다.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반도체 가격 동향 지표인 DXI지수는 10월 16일 기준 2만888.72포인트로 집계됐다. 바닥이었던 9월 초(1만8151.19포인트)보다 15% 올랐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상승세를 타면서 반도체 산업이 바닥을 찍고 회복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전문가들은 아직 회복을 속단하기는 이르다고 예측한다. 현재의 가격 반등이 수요 증가보다는 삼성전자 등 주요 칩 메이커들 감산, 즉 공급 축소와 재고 감소에 따른 영향이기 때문이다. 가격이 본격적인 회복 사이클에 접어들려면 수요 증가가 동반돼야 한다. 시장은 2024년 2분기 이후부터 메모리 반도체 사이클이 제대로 된 회복 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내다본다.

반등을 견인할 수요의 핵심은 서버 시장이다. 메모리 업체 실적은 칩 주요 소비처인 PC와 스마트폰 그리고 서버용 컴퓨터 업체의 실적과 궤를 같이한다. PC와 스마트폰 출하량이 늘거나, 서버 업체가 컴퓨터를 증설하면 자연스레 메모리 판매량이 늘어난다.

주요 3개 수요처 중 스마트폰과 PC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관련 시장이 이미 포화 상태에 접어든 데다 최근에는 세계적으로 경제가 위축되면서 스마트폰과 PC 판매량이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조사 결과 올 3분기 세계 스마트폰 출하량은 2022년 3분기 대비 8% 줄었다. 스마트폰 출하량은 9개 분기 연속 감소세다. 주요 시장인 중국과 미국에서 판매 부진이 이어졌고, 인도·동남아 등 신흥국 시장 수요도 전반적으로 줄었다. 지난 3년간 부진했던 PC 역시 출하량이 감소했다. 시장조사 업체 카날리스에 따르면 올 3분기 세계 PC 출하량은 6560만대로 전년 동기 대비 7% 줄었다. 전문가들은 2024년에도 스마트폰과 PC 출하량이 크게 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기존 스마트폰, PC 시장 회복은 경기 회복에 따른 자연스러운 수요 증가가 발생해야 하는데, 특별한 호재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미국의 정책금리 인하에 따른 유동성의 회복이 선제적으로 필요한데, 2024년 시장 전망을 보면 상황이 녹록지 않다”고 설명했다.

PC와 스마트폰 공백은 서버용 컴퓨터 수요가 메울 전망이다. 서버 컴퓨터용 메모리 수요 증가 요인은 2가지다. 차세대 D램인 DDR5의 수요 증가와 AI 기술 확장이다. DDR5는 현재 업계 표준 규격인 DDR4보다 용량은 4배, 데이터 처리 속도는 2배 빨라진 D램 반도체 규격이다. 서버 업체들이 DDR4에서 DDR5로 칩을 바꾸면서 서버용 D램 시장은 DDR5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트렌드포스는 2023년 4분기, DDR5 고정 거래 가격이 3~8% 상승할 것으로 예측했다.

생성형 AI 기술 등장도 호재다. AI 프로그램을 돌리려면 막대한 데이터가 필요하다. 기존 서버보다 데이터 용량을 월등히 높여야 한다. 데이터 용량 증가는 곧 메모리 칩 수요 증가로 이어진다. 고영민 다올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AI 서비스 본격화가 2024년 2분기부터 시작할 것으로 예상되며 사용자가 늘어나고 처리해야 할 데이터 트래픽이 증가하면 기본 인프라인 서버 용량 증대가 필수”라며 “2024년 2분기부터 서버용 메모리에 대한 투자가 재개될 것으로 판단한다”고 분석했다.

[반등의 조건 2] HBM

하이닉스, 삼성에 기선 제압

최근 메모리 반도체업계 최고 화두는 고대역폭메모리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고 1024개 구멍(데이터 통로)을 뚫어 연결한 제품이다. 생성형 인공지능 시장이 커지면서 HBM 수요도 급증하는 모습이다. 시장조사 업체 가트너는 HBM 시장 규모가 지난해 11억달러(약 1조4000억원)에서 2027년 51억7700만달러(약 6조8000억원)까지 커질 것으로 내다본다.

HBM 시장 핵심 키워드는 ‘수주형’이다. 기존 메모리 반도체 사업 형태와 달리 고객사와 계약을 맺고 맞춤형 제품을 납품하는 방식이 자리 잡았다. 여느 때보다 ‘큰손’을 잡는 게 중요해진 형국이다. HBM 시장 큰손은 엔비디아다. 엔비디아를 고객사로 확보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현재 우위는 SK하이닉스가 점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미국 마이크론도 엔비디아와 HBM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알려졌지만, 구체적 규모와 공급 시점 등을 두고 진실 공방이 펼쳐진다.

SK하이닉스는 일찍이 엔비디아에 HBM3를 독점 공급해왔다. HBM은 1세대(HBM)-2세대(HBM2)-3세대(HBM2E)-4세대(HBM3) 순으로 개발됐다. 반도체업계와 증권가 설명을 종합하면, SK하이닉스는 차세대 HBM으로 불리는 5세대(HBM3E) 경쟁에서도 앞서 있다. 엔비디아는 내년 2분기에 선보일 새 그래픽처리장치(GPU) GH200에 HBM3E를 탑재할 예정인데, SK하이닉스 제품이 우선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엔비디아가 대규모 선수금을 지급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양 사 파트너십을 간접적으로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SK하이닉스도 HBM3E 공급을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이미 HBM3E 공급을 위한 최종 퀄(Qualification) 테스트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퀄 테스트는 고객사에 납품하기 전 제품 성능을 시험하는 단계를 말한다. 보통 퀄 테스트를 거쳐 수개월 뒤 본계약을 체결한다. 또 HBM 생산 확대를 위해 공격적으로 장비를 사들이고 있다. SK하이닉스에 TSV(실리콘관통전극) 공정용 장비를 공급하는 한미반도체는 최근 600억원 규모 장비를 SK하이닉스에 공급한다고 공시했다. 9월부터 10월까지 한미반도체가 SK하이닉스 TSV 공정 장비 공급을 통해 올린 수주액만 1000억원이 넘는다. TSV 공정용 장비는 HBM 생산을 위한 필수재다.

증권가는 당분간 SK하이닉스 우위가 지속될 것으로 내다본다. 채민숙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SK하이닉스 판가가 삼성전자 대비 높았던 적은 한 번도 없는데, HBM을 포함한 고부가가치 제품 판매 비중이 늘면서 전체 ASP 측면에서 앞서고 있다”며 “삼성전자의 엔비디아 공급 진입 등으로 판가가 줄어든다 해도 제품 출시 시기가 6개월~1년 정도 앞서는 만큼, 시장 선점 효과는 지속될 것”으로 봤다.

삼성전자는 위기감이 커진 분위기다. 최근 엔비디아와 HBM3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알려졌지만, 구체적인 규모는 전혀 공개된 바 없다. 증권가에서도 “올해 4분기 공급이 진행될 전망”이라는 분석은 나오지만 규모 관련 추정치조차 나오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 HBM3가 수율과 발열 문제로 ‘저가 수주’ 또는 ‘조건부 계약’을 체결했다는 의구심도 존재한다. HBM은 수직으로 쌓인 D램 사이에서 발생하는 열을 잡는 게 기술력의 척도로 여겨진다.

수율 관련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는 반론도 있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애널리스트는 “HBM3 시장에서 (삼성전자 기술) 경쟁력 관련 의구심으로 인해 주가 재평가 속도가 더딘 상황”이라며 “2024년부터 HBM3과 HBM3E 수요가 크게 늘면서 올 4분기 후반부터 삼성전자도 HBM3를 엔비디아에 본격 공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차세대 HBM에서 승부수를 띄울 계획이다. 반도체업계는 2026년을 기점으로 6세대 HBM(HBM4) 시대가 열릴 것으로 내다본다. 삼성전자는 이보다 1년 전인 2025년까지 HBM4를 개발하겠다는 목표다. HBM4는 ‘하이브리드 본딩’ 등 신공정이 적용돼 HBM3 대비 전력 효율, 속도가 향상되고 용량도 늘어날 전망이다. 황상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D램 개발실장 부사장은 10월 10일 삼성전자 뉴스룸에 올린 기고문에서 “HBM4를 2025년 목표로 개발하고 있다”며 “해당 제품에 적용하기 위해 고온 특성에 최적화된 기술도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AI의 등장과 함께 HBM 메모리를 찾는 움직임이 많아졌다. 사진은 SK하이닉스의 HBM 메모리 칩. (SK하이닉스 제공)
[반등의 조건 3] 파운드리·패키징

삼성, 반전 계기 잡을까

파운드리 부문 상황도 나쁘지 않다. 업황은 바닥을 찍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시장조사 업체 IDC에 따르면 세계 파운드리 공장 가동률은 올 연말까지 80%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동률 100% 수준이던 지난해 상반기와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다. 다만, AI와 자동차 부문 고객사 수요가 늘면서 가동률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에 12인치 파운드리 가동률은 올 4분기부터 회복, 내년 하반기 90% 규모로 상승할 전망이다.

대만 TSMC가 흔들린다는 점은 삼성전자에는 기회 요인이다. 아이폰15 시리즈가 발열 문제에 휩싸이면서 TSMC의 3나노 공정에 결함에 있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아이폰15 시리즈에는 애플 A17 프로 AP가 탑재됐는데, 이를 위탁생산한 곳이 TSMC다. TSMC는 A17 프로 생산에 업계 최선단 공정인 3나노를 적용했다. 그동안 반도체업계를 중심으로 TSMC의 핀펫(FinFet) 방식 3나노 공정 수율에 의구심이 존재했는데, 현실화됐다는 것이다. TSMC와 달리 게이트올어라운드(GAA) 방식으로 3나노 시장에 뛰어든 삼성전자 파운드리 입장에선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대목이다.

TSMC 첨단 공정 전략이 늦춰진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삼성전자 입장에선 격차를 좁힐 기회다.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TSMC는 대만 신주 바오산 지역에 건립 중인 2나노 공장을 2025년 2분기 완공할 것으로 보인다. 당초 2025년 2분기 ‘양산’을 예고했던 TSMC 계획이 틀어진 셈이다. 반도체업계는 2025년 4분기부터 양산이 가능할 것으로 평가한다. 여기에 1나노 공장 건설도 지연되고 있다. TSMC는 최근 “룽탄 과학단지 3기 확장 건설 프로젝트에 진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TSMC는 1.4나노 제조 공정 반도체 공장을 2026년까지 건설해 2027년부터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이번 발표로 계획 자체가 불투명해졌다.

삼성전자는 2025년 초 2나노 양산을 시작, 2027년 1.4나노 기반 반도체 생산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3나노 양산 과정에 GAA 방식을 적용한 만큼 수월한 첨단 공정 진입이 예상된다. 3나노에서 핀펫 방식을 적용한 TSMC는 2나노에서 처음으로 GAA 방식을 도입한다. 현 로드맵만 놓고 보면 삼성전자가 첨단 공정 기술력에서 TSMC를 앞서는 셈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파운드리는 대표적인 주문형 사업인 만큼 기술력 자체가 모든 걸 결정하지 않는다”면서도 “양산이 늦어지더라도 3나노에서 GAA 방식을 도입한 건 삼성전자 파운드리에 큰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증권가에서도 비슷한 평가가 나온다. 서승연 DB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TSMC와 점유율 격차가 여전히 큰 편이고, 대만과 비교했을 때 파운드리 생태계 경쟁력이 조금 떨어지지만 GAA 공정을 선제적으로 도입, 파운드리 생태계를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큰 관심을 받지 못하던 ‘패키징’ 경쟁력도 주목할 부분이다. 패키징은 말 그대로 포장 기술이다. 웨이퍼 형태로 생산된 반도체를 자르고 전기 배선 등을 연결, 전자 기기에 탑재할 수 있는 형태로 조립·포장하는 작업이다. 최근 패키징 기술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단순하다. 반도체 기업들은 지금까지 반도체 회로 설계 시 ‘㎚’를 줄이는 싸움을 해왔다. 하지만 1㎚만 줄이려고 해도 천문학적인 비용이 발생한다. 비용·기술 측면에서 한계점에 가까워진 셈이다. 이에 기업들은 서로 다른 반도체를 조립하고 포장하는 패키징 기술로 시선을 돌린다.

패키징 기술 선두 기업은 TSMC다. 국내 반도체업계 관계자들도 “TSMC 패키징 기술이 삼성전자보다 10년가량 앞선다”고 말할 정도다.

패키징 격차로 고객사를 가져온 사례도 있다. TSMC는 2016년 ‘통합 팬아웃(InFO)’ 패키징 기술을 앞세워 삼성전자가 위탁생산하던 애플 물량을 가져왔다. 이후에도 TSMC는 개발을 지속, 3D 패키징 기술 ‘시스템온집적회로(SoIC)’까지 내놨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TSMC는 첨단 패키징 부문에서 2946개 특허를 획득, 가장 많은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패키징 관련 삼성전자는 사실상 총력전을 선언했다. 지난해 어드밴스드패키징(AVP)사업팀을 신설하고 TSMC 출신 린준청을 반도체(DS) 부문 AVP팀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지난 6월 열린 ‘삼성 파운드리 포럼 2023’에서 “패키징 기술 고도화와 관련 생태계를 키우겠다”며 TSMC와의 패키징 전면전을 예고했다. 다만 아직 갈 길은 멀다는 평가다. 패키징 관련 설비 투자 규모가 TSMC의 절반 수준에 그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 추산하는 TSMC의 올해 패키징 설비 투자 규모는 30억달러(약 4조원)를 넘어설 전망이다. 반면, 삼성전자의 올해 패키징 설비 투자 규모는 18억달러(약 2조4000억원) 정도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파운드리 산업에서도 변화가 인다. 아이폰 이슈가 터진 TSMC가 흔들리는 가운데 삼성전자가 다시 추격하는 모습이다. 사진 왼쪽은 TSMC 장쑤성 공장 전경. 사진 오른쪽은 3나노 웨이퍼 파운드리 양산에 성공한 삼성전자. (AFP, 삼성전자 제공)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1호 (2023.10.25~2023.10.3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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