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개기 상장의 그늘···2년 내 모회사 기업가치 16%↓

명순영 매경이코노미 기자(msy@mk.co.kr), 문지민 매경이코노미 기자(moon.jimin@mk.co.kr) 2023. 10. 25.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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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남지 않은 2023년, 공모주 시장은 여전히 들떠 있다. 몇몇 대어가 남아 있어서다. 그중 하나가 에코프로머티리얼즈다. 2014년 설립된 전구체 제조 기업으로 에코프로가 지분 52.78%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2차전지용 하이니켈 양극재 제조 사업을 물적분할해 만들어졌다. 전구체는 배터리 양극재 핵심 원료다. 에코프로머티리얼즈는 하이니켈 전구체를 에코프로비엠에 납품한다. 에코프로머티리얼즈는 10월 30일부터 11월 3일까지 기관 수요예측을 진행한다. 공모주 청약은 11월 8~9일 받는다. 에코프로머티리얼즈 상장을 바라보는 시각이 고운 것만은 아니다. 이미 증시에는 에코프로그룹 계열사인 에코프로와 에코프로비엠, 에코프로에이치엔 등 3곳이 상장됐다. 그런데 다시 계열사 상장에 나서며 제대로 평가받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에코프로머티리얼즈 상장 뒤

지주사 주가 하락 전망 나와

에코프로머티리얼즈 기업가치(밸류에이션) 논란부터 크다. 2차전지 고평가론이 나오고 나서다. 에코프로머티리얼즈는 지난 9월 20일 기준 중국 CNGR을 비롯해 국내 포스코퓨처엠, 엘앤에프, 코스모신소재를 비교 기업으로 선정했다. 이후 이들 주가는 급락세다. 그러자 에코프로머티리얼즈는 10월 11일 정정된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고 기업가치 산출에 적용한 기업가치(EV) 대비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배수를 기존 76배에서 67.5배로 낮췄다. 예상 시가총액은 2조5700억~3조1300억원 수준이다.

하지만 고평가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에코프로머티리얼즈가 제조하는 하이니켈 전구체 대부분이 계열사인 에코프로비엠에 제조 원료로 납품하는 내부 매출이고 외부 고객사가 별로 없어서다. 지난해 기준 에코프로비엠이 에코프로머티리얼즈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2.8%에 달한다. 에코프로비엠 영업활동이 줄어들면 에코프로머티리얼즈 납품처도 없어진다는 뜻이다. 만약 내부 매출 비중을 줄이지 않고 상장하면 에코프로비엠 또는 에코프로 주가가 하향 조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시장에서는 이미 내부 매출이 많은 에코프로머티리얼즈를 에코프로비엠의 일종의 사업 부서로 인식해 에코프로머티리얼즈가 벌어들이는 이익 등 기업가치를 에코프로비엠과 에코프로 주가에 반영했다. 에코프로머티리얼즈가 따로 상장하면 이런 식으로 중복해 기업가치를 줄 수는 없으니 에코프로비엠과 에코프로 주가가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LG화학은 LG에너지솔루션을 물적분할해 쪼개기 상장했다. 한때 100만원을 넘으며 ‘황제주’에 등극했던 LG화학 주가는 물적분할 직후 급락했다. LG화학 주가는 10월 18일 기준 50만6000원에 그친다. 쪼개기 상장을 한 LG에너지솔루션 주가도 46만5000원에 머물고 있다. 자회사와 모회사 이익 가치가 ‘더블 카운팅’되고 계열사 덕(?)을 봐온 지주사 주가가 추가 하락한 것이다.

LG화학 외에도 많은 기업이 물적분할과 상장 절차를 밟았다가 기업가치 훼손 논란이 일었다. 카카오그룹은 2020년 카카오게임즈, 2021년 카카오페이와 카카오뱅크를 연달아 상장했다. 그러나 계열사 주가는 현재 공모가에서 반 토막이 났다. 국내 증시에 자회사를 상장하지 않는 네이버와는 다른 방향이었다.

메리츠금융그룹도 쪼개기 상장과는 반대의 길을 걸었다. 메리츠금융지주, 메리츠화재, 메리츠증권 3개의 회사가 상장됐는데 지주사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 사업 회사를 상장폐지했다. 화재와 증권 주주는 지주사 주식을 갖는다. “주주 가치를 올리고 의사 결정을 빨리 하기 위한 조치”라는 게 메리츠금융지주 측 설명이었다. 실제 이 발표가 나온 지난해 11월 세 회사는 모두 가격제한폭인 30%씩 폭등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벌써부터 에코프로머티리얼즈를 상장하자마자 공매도(쇼트)로 대응할 것이라는 투자자가 적지 않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쪼개기 상장, 결과는 어땠나

상장땐 모·자회사 가치 동반 하락

자본시장연구원이 2010년부터 2021년까지 12년 동안 물적분할을 공시한 상장사 377개를 분석한 결과, 공시 후 주가가 하락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평균적으로 공시한 지 열흘 후 주가는 공시 직전일 대비 1.35%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스피 상장사의 경우 같은 기간 주가 수익률은 마이너스(-)2.41%로, 코스닥(-0.63%) 상장사보다 낙폭이 컸다. 특히 2017부터 2021년까지 물적분할을 공시한 코스피 상장사 주가는 발표 후 열흘간 평균 5.94% 하락했다. 과거와 비교해 최근 물적분할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더욱 악화됐다는 뜻이다.

대표적으로 2020년 9월 17일 전기차 배터리 사업부를 LG에너지솔루션으로 물적분할한다고 공시한 LG화학은 당일 주가가 전일 대비 6% 이상 하락했다. 지난해 9월 7일 방산 부문 물적분할을 공시한 풍산도 다음 날 주가가 6% 빠졌다. 같은 해 7월 12일 팹리스(반도체 설계) 부문 분사를 검토 중이라고 밝힌 DB하이텍은 당일 주가가 무려 16% 급락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가 낙폭이 커지는 현상도 나타난다. 메리츠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물적분할한 상장사는 41개다. 물적분할 후 한 달간 이들 주가는 평균 0.5%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3개월 후 주가는 물적분할 전과 비교해 3.5% 하락했으며, 6개월 후에는 -14.4%로 낙폭을 키웠다.

LG화학과 SK케미칼 등 대기업 계열사들도 물적분할 후 주가 약세가 1년 이상 장기화됐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을 분사한 LG화학은 분할기일로부터 1년 후 주가가 11% 하락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를 분사한 SK케미칼 역시 분할기일로부터 1년간 주가가 7% 이상 떨어졌다.

특히 분할된 신설 회사가 상장한다면 모회사 기존 주주에는 대형 악재다. 상장하는 자회사 규모만큼 모회사 기업가치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자본시장연구원은 2010~2021년 사이 동시 상장한 모자 기업 중 모회사 64개 기업가치 변화를 조사했다. 그 결과 모회사 기업가치는 자회사가 상장한 해 평균 3%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듬해는 11%, 2년 후에는 16%까지 기업가치가 떨어졌다.

상장한 자회사들 주가 흐름도 좋지 않은 편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바이오사이언스는 상장 후 1년간 주가가 각각 15%, 12%씩 하락했다. 올해 상장한 필에너지와 삼기이브이도 마찬가지다. 삼기로부터 분할해 지난 2월 상장한 삼기이브이는 상장 후 6개월간 주가가 42% 하락했다. 필옵틱스로부터 분할해 지난 7월 상장한 필에너지 역시 상장 후 3개월간 주가가 50% 떨어졌다. 쪼개기 상장이라는 지적이 빗발쳤던 카카오 계열사들 주가도 상장 후 고전을 면치 못했다. 2021년 상장한 카카오페이와 카카오뱅크의 상장 후 1년간 주가 수익률은 각각 -79%, -40%로 부진한 흐름을 이어갔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결과적으로 물적분할을 통한 동시 상장은 모자 기업의 기업가치 측면에서 부정적 효과가 뚜렷하다”고 분석했다.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

기업의 자발적 노력 동반돼야

계속되는 ‘쪼개기 상장’ 논란에 금융당국은 기존 주주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내놓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3월 기업지배구조 보고서 지침을 개정해 소액주주 권리를 강화했다. 기업이 물적분할이나 합병 등으로 기업 소유 구조를 변경할 경우, 주주 보호를 위한 정책을 마련해 보고서에 적시해야 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만약 주주 보호 정책이 없을 경우 그 이유까지 설명하도록 했다. 또, ‘주주와의 의사소통’ 관련 항목을 작성할 때 소액주주와의 소통 사항을 별도로 명시하도록 규정했다. 기업들이 계열 기업과 내부거래를 하거나, 경영진·지배주주 등과 자기거래를 하는 경우에도 이사회의 의결을 받은 후 내용과 사유를 주주에게 적극적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원칙을 마련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자본 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에 따라 상장사의 물적분할을 반대하는 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키로 했다. 만약 소액주주가 물적분할을 반대할 경우, 보유 중인 주식을 회사가 일정한 가격에 매수하라고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준 것이다. 매수 가격은 주주와 기업 간 협의로 결정한다. 다만 협의가 되지 않으면 자본법령상 시장 가격을 적용하고, 이 역시 합의가 불발되면 법원에 매수 가격 결정 청구를 할 수 있다.

지난 8월에는 이 조치 적용 범위를 기존 상장사에서 비상장사까지 확대했다. 여기에 합병이나 분할 등 기업 구조 변경 효력 발생일까지 회사가 산정한 매수가액을 전액 지급하는 경우, 반대주주를 채권자 지위로 전환하도록 했다. 또, 매수대금에 다툼이 발생하면 회사가 주식매수청구권과 관련해 주주에 통지한 매수가액 이상의 금액 공탁을 허용하는 내용도 담았다. 주주총회 통지, 투표, 회의 등도 전자화해 거리가 멀거나 생업 등의 이유로 주주총회에 참석하기 어려운 주주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런 보호 조치에도 여전히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주식매수청구권 도입과 관련해 매수 가격을 정하는 데 있어, 소액주주들이 불리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매수청구가 협의 과정에서 기업이나 지배주주가 개입해 유리한 상황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공정가액 도입 등 구체적인 가격 산정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외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일본은 기업지배구조 보고서에 자회사의 이사회 독립 요건을 명문화하도록 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명문화된 상장 규정으로 동시 상장을 규제한다. 특히 일본의 경우 독립 이사의 모회사 출신 배제 등 요건을 강화한 후 동시 상장 기업이 점진적으로 줄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2014년 일본의 동시 상장 기업은 324개였지만, 지배구조 요건 강화 후 2021년에는 293개로 감소했다.

주주 가치 제고를 위해 기업들의 자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사례가 대표적이다. SK이노베이션은 2차전지 사업을 SK온으로 물적분할 후 상장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주주 가치 제고를 위해 SK이노베이션 시가총액의 약 10%를 공개매수한 후 취득한 주식은 소각하고 주주들에게 SK온 주식을 지급한다는 방침이다. 향후 SK온 IPO에서 구주 매출로 마련한 재원을 특별 배당에 활용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SK온 IPO에 앞서 SK이노베이션 기존 주주들에게 SK온 주식 취득 기회를 먼저 부여하고, 향후 IPO 과정에서 예상되는 불확실성으로부터 주주들을 보호하겠다는 의도다.

포스코홀딩스 역시 자회사 포스코를 상장할 경우 모회사의 특별결의가 필요하도록 정관을 개정했다. 특별결의는 출석한 주주 의결권 3분의 2 이상의 수와 총 발행 주식 수의 3분의 1 이상이 찬성해야만 안건이 통과한다. 회사가 주주들의 동의 없이 마음대로 자회사를 상장할 수 없도록 요건을 강화한 셈이다.

이경수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과 일본은 모자 회사 동시 상장을 법적으로 강제하지는 않지만 조건이 까다로워 사실상 쪼개기 상장이 어렵다”며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자제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고, 기업도 주주 가치 제고를 위해 스스로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1호 (2023.10.25~2023.10.3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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