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역 1번 출구에 특별한 길, 왜 미완성이냐 하면
[차원 기자]
▲ 10·29 기억과 안전의 길 앞에 선 권은비 예술감독. 뒤로 세 개의 빌보드가 보인다. |
ⓒ 차원 |
10·29 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의 제안으로 올해 1월부터 이번 작업의 예술감독을 맡은 권은비 작가를 21일 오후 이태원에서 만났다.
권 감독은 "절대 추모 공간 조성을 끝으로 이태원 참사가 마무리됐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며 "필요한 법을 제정하고 사회가 책임을 다해 반복되는 참사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권 감독과의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진상규명도, 특별법도 없이 맞는 1주기... 나아갈 길 고민 계속"
- '10·29 기억과 안전의 길', 어떤 공간인가.
"이곳이 참사 현장이라는 사실을 오랜 기간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이다. 또 안전이라는 단어도 함께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 유가족 협의회, 시민사회 활동가, 지역 시민, 상인 등 많은 이들이 함께 논의하면서 공간 조성을 진행했다.
중요한 메시지는 '미완성'이다. 임시적 중간 형태의 설치물인 셈이다. 창작자로서 미완성의 뭔가를 내놓는다는 게 모순적일 수도 있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아직 진상규명도 안 됐고 (이태원 참사) 특별법도 통과가 안 되지 않았나. 또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제 추모 공간을 조성했고 끝이야'라는 식으로는 절대 가면 안 된다는 판단이 있었다."
- 3개의 빌보드에는 각각 어떤 내용이 담기나.
"다양한 시민들의 이야기를 담는 매개체로 빌보드가 활용된다. 내용은 2개월에 한 번씩 교체할 계획이다. 첫 번째 빌보드에는 이 길의 의미를 담는 글이 들어간다. 두 번째는 시민들의 메시지가 들어간다. QR코드를 통해 웹 페이지에 방문해 추모의 마음을 남길 수 있다. 세 번째는 예술가들의 시각 이미지를 활용한 작업물이다. 처음에는 황예지 사진작가의 작품이 들어가고, 다음으로는 디자인 그룹 일상의실천의 작품이 예정돼 있다."
- 희생자들 가운데 외국인 피해자들도 많지 않았나.
"총 26명의 외국인 피해자가 있었다. 그들을 포함해 희생자들의 사용 언어를 살펴보니 총 14개더라. 그래서 그 언어들을 모두 담았다. 이태원 참사를 이야기할 때, 외국인 희생자들에 대한 부분도 놓치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
- 공개를 앞둔 마음은 어떤가.
"정말 어려운 과정을 통해 만든 공간이다. 유가족 협의회와 대책 회의에 함께하는 활동가들이 정말 열심히 애쓰고 투쟁했다. 그래서 뭔가 '완성했다'라는 안도는 들지 않는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특별법 제정까지 나아갈 것인가, 기억과 안전을 위해 시민들과 어떤 소통을 더 해나갈 것인가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 이태원 참사 특별법도 여당의 반대로 아직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재난 참사가 벌어질 때마다 유가족들이 특별법을 만들려고 싸워야 한다는 고질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이런 문제가 계속되는 한 유가족들의 아픔은 앞으로도 계속될 거다. 특별법을 매번 만드는 것도 소모적인 일이고, 얼마 전 국민동의청원이 이뤄진 생명안전기본법 등의 제정이 꼭 필요하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법만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다. 법 외에도 사회가 가져야 하는 책임과 역할이 있지 않나. 그런 사회의 몫을 충분히 하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 박희영 용산구청장도, 유가족이 아닌 국회의원들에게 사과하지 않았나. 가장 먼저 사과받아야 할 유가족은 피하고, 권력을 가진 국회의원에게만 사과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도 특별법은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했다. 모두 지금 한국 사회의 문제를 명확하게 보여준 장면들이다."
▲ 지난 21일 오후 이태원을 방문한 시민들이 참사 현장에 붙어 있는 추모 글귀를 읽어보고 있다. |
ⓒ 차원 |
- 기억과 안전의 길 조성 과정에서 서울시, 용산구와 협력하기도 했나.
"이 부분을 언론에서 명확하게 써주셨으면 좋겠다. 이태원 참사를 둘러싸고 오세훈 서울시장, 박희영 용산구청장 두 분과 같이 뭘 한다고 할만한 상황은 단 한 순간도 없었다. 공식적으로 한 번도 유가족에게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한 테이블에 앉겠나. 다만 우리가 먼저 시와 구에 공공의 이런 책임과 역할이 있지 않겠느냐 제안했고 시장, 구청장과는 별개로 공공기관 안에 태스크포스(TF)가 있어서 그 팀들과 이야기했다."
- 이 공간이 어떤 모습으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나.
"이태원이 가지고 있는,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라는 특성이 있다. 그건 지금도 유효하다. 유가족 협의회도 이태원 참사 이후 핼러윈 축제가 없어져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무조건 침묵을 강요하는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참사가 일어난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우리는 그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런 실천이 가능한 공간, 이 길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1분 1초라도 참사를 기억하고 희생자를 애도하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
-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서 이태원 참사는 아직 끝나지 않은 아픔인 듯싶다.
"처음에는 158명의 희생자였다가, 한 명이 더 늘어나지 않았나. 아직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이태원 참사를 우리가 기억해가는 데 있어, 사회가 지켜야 할 책임과 풀어야 할 과제를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 한국 사회는, 특히 공공기관이 참사 이후 제대로 대응을 못 해 참사가 더욱 확대되는 과정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 이런 반복을 막으려면 공공기관이 변해야 한다."
-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구술집도 곧 나온다고 들었다.
"그렇다. 이런 유가족과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시민분들이 많이 찾아봐 주셨으면 좋겠다. 언론에서 받아적는 권력자들의 이야기만을 듣는 방식으로는 참사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다.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봐 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우리는 이태원에서 다시 놀아야 한다. 핼러윈 축제를 즐겨야 한다. 이태원은, 핼러윈은, 그리고 희생자들은 아무 잘못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억해야 한다. 또 안전해야 한다. 국가가 국민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그러고서도 사과도 진상규명도 하지 않는 상황이 반복돼선 안 된다.
▲ 10.29이태원참사 1주기를 앞둔 지난 18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앞에 모인 유가족들이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에 협력하고 수용할 것’ ‘독립적인 특별조사위원회가 정상적으로 출범하도록 보장할 것’ 등을 촉구했다. 유가족 대표들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내는 호소문과 1주기 시민추모대회 초정장을 대통령실 행정관에게 전달하고 있다. |
ⓒ 권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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