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잘못 아냐, 딸 몫까지 살아주렴” 생존자 울린 한마디

김용현,성윤수 2023. 10. 25.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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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1주기를 앞둔 24일 서울 종로구 서울광장에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마련돼 시민들이 추모 메시지를 살펴보고 있다. 윤웅 기자


11월 1일. 이태원 참사 생존자 A씨(22)에게 이날은 원래 중학교 단짝 박모씨의 생일로 기억되던 날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이태원 참사를 겪으면서 그날은 A씨에게 차마 떠올릴 수 없는 아픈 날이 됐다. A씨는 이태원 참사로 친구를 잃었다. 지난해 11월 1일은 친구 박씨의 발인날이었다.

A씨는 지난해 10월 29일 박씨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함께 이태원을 찾았다. 대학 진학 이후 군복무 등을 이유로 3년간 만나지 못했던 터라 A씨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다고 한다.

그러나 들뜬 마음으로 행복했던 순간도 잠시였다. 참사 현장인 해밀튼호텔 왼편 50m 길이의 내리막 골목길에 인파가 몰리면서 그는 친구의 손을 놓쳤다. 그게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 A씨는 가까스로 인파 틈에서 벗어났지만 박씨는 그러지 못했다. A씨는 길바닥에 쓰러진 박씨를 발견하고 곧장 주변에 심폐소생술을 요청했다. 도착한 구급대원과 함께 그를 병원에 옮겼지만 친구는 끝내 눈을 뜨지 못했다.

A씨는 “루프톱에 있는 이태원 유명 술집을 가자고 했는데, 친구가 ‘정말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면서 좋아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사람으로 가득 차 있더라. 기다리기보다 다른 데로 가려고 골목으로 나왔다”고 했다. 그는 “핼러윈이 다가오면서 부쩍 그때가 떠오른다. ‘그 술집에 계속 있었더라면’이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고 말했다.

A씨에게 박씨는 유년시절 전학 간 중학교에서 그를 따뜻하게 맞아준 유일한 친구였다. 죽이 잘 맞아 종종 ‘언니’라고 부르기도 했다. 함께 커가며 둘은 서로의 꿈을 응원하는 사이가 됐다. A씨는 “전 건축공학과 박사과정으로 미국 유학을 가고 싶어 했고 박씨는 패션디자이너 관련 캐나다 유학을 가고 싶어했다. 서로 버킷리스트도 얘기하며 같이 꿈을 키웠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일주일 앞둔 22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골목에 설치된 '10·29 이태원 참사 기억의 길'에서 한 형제가 추모 메시지를 적고 있다. 연합뉴스


A씨의 삶은 이태원 참사 이후 멈췄다. 밀집된 지역이나 지하철 등을 가면 숨이 막히는 증상까지 겹쳐 출퇴근 시간에 붐비는 곳에 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한 달 가까이 학업도 놨다. 6개월간 심리치료도 받았다. A씨는 주변 지인들로부터 이태원 참사를 겪은 이후 성격이 많이 변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A씨는 “저는 못 느꼈는데, 주변에서 ‘사람이 다운됐다’ ‘기분이 안 좋아 보인다. 안 좋은일이 있었냐’고 자주 물어본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태원 참사 직후부터 지난 5일까지 국가 및 권역 트라우마센터에서 A씨처럼 상담을 받은 건수는 7141건에 달한다. 트라우마는 서울 도심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고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지만, 이를 제대로 치유하지 못하고 방치하면 결국 심각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트라우마 분야 전문가인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희생자들의 많은 비율이 젊은층이었고, 도심 한가운데서 일어나 수천명의 목격자가 있는 아픈 재난이었다”며 “사회적 참사의 유가족과 생존자를 위로하고 치유해 나가는 일을 그저 개인이나 가족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국민의 안전’으로 생각하고 함께 극복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일주일 앞둔 22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골목에 설치된 '10·29 이태원 참사 기억의 길'에 추모 메시지가 놓여 있다. 연합뉴스


A씨에게 상담가는 이전의 삶을 다시 규칙적으로 사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참사를 경험한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결국 일상으로의 복귀이기 때문이다. A씨도 이태원 골목길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A씨를 다시 일상으로 돌려놓은 건 친구 박씨 어머니의 연락이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 딸 몫까지 계속 열심히 살아줘야 해’라는 말이 그를 움직이게 했다. A씨는 “어머니의 말씀이 큰 힘이 됐다. 지금도 가끔 연락을 하셔서 내가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묻곤 하신다. 친구랑 같이 유학 가자는 얘기를 많이 했었는데,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지내고 있다. 더 열심히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현재 A씨는 건축공학과 재료 분야 석박사 과정을 준비하는 학부 연구생으로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있다. 유일한 취미였던 테니스를 다시 시작했고, 이를 통해 사람들을 더 만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고 한다. 그는 “그동안 자책하는 마음도 있었다. 지우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는 오래 기억이 남아서 이런 사고가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라고 했다.

A씨는 여전히 친구가 그립다. 1년이 지났는데, 지금도 그 친구가 부르는 ‘언니’ 소리가 귀에 맴돈다고 한다. 그는 “지금이라도 전화 와서 언니라고 부를 것만 같다. 친구는 듣지 못하겠지만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박씨 어머니는 먼저 연락하면 오라고 하는 말이 될 것 같아 A씨에게 직접 전하지 못한 말이 있다며 기자에게 알려왔다. 그는 “1주기 추모제 때 오지 않아도 된다. 오면 너무 아플 테니 나중에, 나중에 마음이 편해졌을 때 오면 된다”고 전해 달라고 했다.

김용현 성윤수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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