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복무 1기 소집해제…"36개월 너무 길어"vs"현역 2배 돼야"
25일 오전 9시 양복을 차려입은 네 명의 양심적 병역거부 대체복무자들이 부산교도소를 나서며 손을 흔들었다. 30여명의 가족과 지인들의 “수고했다” “고생했다”는 격려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최고령 대체복무자 오승헌(39)씨는 부모와 아내를 보자마자 포옹하고 두 자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 오씨는 “2003년 11월 입영통지서를 받았는데 드디어 복무를 마쳤다”며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병역 기피자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줄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첫 대체복무를 마쳤다. 대체복무제는 지난 2018년 6월 헌법재판소가 종교적 신념 등에 따른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마련됐다. 2020년 10월 처음 입소한 이들은 교도소·구치소에서 급식, 구매, 보건위생, 시설 관리 등 업무보조를 맡았다. 복무 기간은 현역 육군병(18개월)보다 2배 긴 36개월이다. 병무청에 따르면 지난달 말까지 소집된 인원은 모두 1203명으로, 이 중 60명이 이날 전국 15개 교도소에서 일제히 소집 해제했다.
첫 대체복무를 마친 이들은 “제도가 자리 잡을 수 있게 애써주신 분들께 감사한다”면서도 “현행 대체복무제가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씨는 “자녀 양육과 경력 단절에 따르는 경제적 문제가 큰 고민이었다”며 “2배라는 기간이 단축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1월 유엔(UN) 인권이사회가 개최한 ‘4차 국가별 정례인권검토’에서 회원국들은 한국의 대체복무제가 “징벌적”이라고 우려하며 복무 기간 단축 등을 권고했다.
교정시설로 한정된 복무 분야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이날 대전교도소에서 소집 해제한 하정현(34)씨는 “약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는데 재능을 살려 시민들에게 도움을 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평화주의 신념을 인정받아 대체복무 중인 A씨(29)는 “점호, 구보 등을 시키는 등 마치 군사시설처럼 운영돼서 당혹스러웠다”며 “제도의 취지와 맞지 않게 운영되는 경우가 많아 복무지 다양화가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병무청 산하 대체역 심사위원회 지난 4월 대체복무요원 복무 기간을 27개월로 단축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심사위는 또 대체복무요원들의 복무 분야도 “합숙시설이 구비된 소방서·119안전센터 등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자녀 양육, 심신 장애 등 특별한 사정이 있을 경우엔 예외적으로 비(非)합숙을 허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외에도 긴 복무 대기기간도 개선 과제로 지적됐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발간한
「2022 회계연도 국방위원회 분석」
에 따르면 대체복무 기관이 추가되지 않으면 대체복무요원들은 최대 4년 대기를 해야 한다. 이에 대해 병무청 관계자는 “제도 시행 초기 누적 대기자의 신청 급증 등으로 인한 일시적 현상”이라며 “법무부와 협의해 복무시설 및 정원을 확대해서 2027년에는 문제가 완전히 해소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대체복무제가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는 아직 현실화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병무청에 따르면 도입 첫해인 2020년 106명이 대체복무요원으로 소집됐다. 이후 2021년 548명, 2022년 416명, 2023년 9월 기준 133명으로 감소세다.
하지만 여론은 대체복무제 개선에 여전히 부정적이다. 병무청의 의뢰로 대진대 산학협력단이 지난해 12월 내놓은 연구용역
「대체역 제도의 개선·발전 방안을 위한 정책연구」
에 따르면, 현역병 복무자 208명 중 74%, 일반 국민 1000명 중 62.9%는 대체복무요원의 복무 기간 ‘현행 36개월을 유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복무 분야 확대에 대해선 응답자의 절반가량인 51.5%, 59.5%가 각각 긍정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군 법무관 출신으로 대체역 심사위원을 지낸 류관석 변호사는 “국회에서 논의 끝에 합의했기 때문에 아직은 제도 정착을 지켜볼 단계”라며 “일부 개선 여지는 있지만 현역병의 고통이 큰 상황에서 개선 논의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군 당국 역시 신중한 입장이다. 병무청 관계자는 “현행 대체복무제 개선 취지를 담은 헌법소원이 100여건 계류 중인데 헌재 결정을 지켜보고 있다”며 “현역 장병들과의 형평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내 대체복무제는 과거 제도를 운용한 독일·대만 등에 비하면 엄격한 편이다. 독일과 대만에서 대체복무요원 복무 기간은 각각 9개월과 4개월로 현역병과 동일했다. 독일은 보건복지시설에서 출·퇴근 복무를 허용하고 있고, 대만은 소방서·양로원 등 공익시설에서 합숙하는 형태로 제도를 운영중이다. 두 나라는 각각 2011, 2018년 모병제로 전환해 대체복무제를 폐지했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안보 긴장감이 높은 핀란드도 92년 동안 대체복무제를 운영 중이다. 핀란드 대체복무 기간은 347일로 현역병 복무(최소 165일)의 약 2배다. 다만 합숙이 아닌 출·퇴근 방식이고 복무지도 요양시설·대학교·병원 등 다양하다는 게 국내 대체복무제와 차이점이다.
전문가들은 현역병의 군 복무 만족도가 높아야 대체복무제 역시 개선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대체역 심사위 초대 위원장을 지낸 진석용 대전대 정치언론홍보학과 교수는 “현역병 스스로 고통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라에선 병역 거부자에게 그 이상의 고통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며 “현역병 처우가 계속 개선돼야 대체복무제도 함께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영근 기자 lee.youngk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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