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로잔의 종교개혁자, 피에르 비레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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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스위스 로잔의 종교개혁자 피에르 비레(1511~1571)를 조명하는 전기가 국내에서 처음 번역됐다.
대한기독교서회는 박경수 장로회신학대 역사신학 교수의 번역으로 미국의 비레 연구자 레베카 쉬츠의 책 '종교개혁의 천사 피에르 비레'(표지)를 출간했다고 25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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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스위스 로잔의 종교개혁자 피에르 비레(1511~1571)를 조명하는 전기가 국내에서 처음 번역됐다.
대한기독교서회는 박경수 장로회신학대 역사신학 교수의 번역으로 미국의 비레 연구자 레베카 쉬츠의 책 ‘종교개혁의 천사 피에르 비레’(표지)를 출간했다고 25일 밝혔다.
서회는 소개 글에서 “종교개혁을 생각하면 곧장 마르틴 루터, 훌드리히 츠빙글리, 장 칼뱅을 떠올리지만, 실상 종교개혁은 몇몇 위대한 영웅이 만든 사건이 아니라 복음의 진리를 따르고자 한 수많은 개혁자의 동역과 헌신으로 일구어낸 역사의 변혁”이라고 전했다.
이어 “대중은 영웅을 원하고 기록은 그 영웅만을 조명하기에 대중의 관심에서 소외된 많은 개혁자들이 역사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말았다”면서 “결국 종교개혁이 마치 영웅 몇 사람이 만든 극적인 드라마인 양 왜곡된 것”이라고 언급했다.
비레는 1536년 25세의 나이에 로잔의 목회자로 임명된 후 로잔과 보 지역, 그리고 제네바에서 25년 동안 교회개혁을 위해 헌신했다.
제네바 시의회에 의해 추방된 칼뱅을 다시 청빙하도록 도왔고, 종교개혁을 옹호하다가 로마가톨릭 사제의 칼에 찔리고 가톨릭 신자가 탄 독을 먹고 중독됐다가 회복하기도 했다.
비레는 1561년 건강상의 이유로 남부 프랑스로 가서 교회법령과 시편찬송가를 펴냈고 신학교육을 이어가며 프랑스 종교개혁을 위해 여생을 바쳤다.
비레는 기욤 파렐, 칼뱅과 함께 ‘제네바 종교개혁의 삼총사’로 불렸으며 파렐이 실천가, 칼뱅이 신학자라면, 비레는 설교자로 불렸다.
뒤를 이은 종교개혁자 테오도르 베즈는 “파렐보다 힘 있게 천둥소리를 발하는 사람은 없다. 칼뱅보다 더 큰 권위로 가르치는 사람은 없다. 비레보다 더 감미롭고 매력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당대 최고의 설교자로 사람들은 비레를 꼽았다.
번역자 박 교수는 “종교개혁의 천사, 종교개혁의 미소, 평화와 화해의 사도라는 별칭에서 알 수 있듯 비레는 격동의 시대에 복음의 정신으로 종교개혁을 이끌되 온화하고 평화로운 방식을 취했다”고 강조했다.
종교개혁 연구자로서 국내 학계에 비레를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번역에 뛰어들었다는 박 교수는 “21세기 한국 사회의 빨강과 파랑의 이념 갈등 속에서 화해와 평화를 운운하는 것은 인기도 없을뿐더러 위험하기도 한 일”이라며 “하물며 전쟁도 불사하던 16세기 종교개혁 현장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고 평화로운 방식을 추구한 비례의 복음을 전하는 방식을 기억하자”고 말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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