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9억원 써내고 YTN 지분 인수한 유진, '승자의 저주' 우려?
[신상호 기자]
▲ 유진, 3천199억원에 YTN 지분 낙찰 한전KDN과 한국마사회가 보유한 보도전문채널 YTN의 지분 30.95%를 유진그룹이 낙찰받았다. 지난 23일 YTN 매각 주관사인 삼일회계법인 주재로 그랜드하얏트서울 호텔에 진행된 개찰을 마치고 관계자들이 회의장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
ⓒ 연합뉴스 |
유진그룹의 YTN 지분 인수를 두고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진의 재무 상황을 보면, 인수자금을 온전히 유진 자본으로 충당하긴 어렵고, 차입 등을 감행할 경우 추후 배임 이슈 등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아울러 YTN 인수를 둘러싼 의혹도 유진 측엔 부담이다.
지난 23일 서울 용산구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공기업(한전KDN, 한국마사회)들의 YTN 지분 매각전의 승자는 유진그룹이었다. 유진그룹이 입찰에 써낸 금액은 3199억원. 다른 경쟁 기업 입찰액과 비교하면 많게는 2000억 가까이 높은 금액이다. 입찰에 참여한 한세실업은 2400억, 통일교 계열의 글로벌피스재단은 1200여억 원을 각각 써냈다.
유진그룹은 이후 배포한 입장문에서 "대한민국 대표 뉴스전문채널인 YTN의 지분 인수를 통해 방송·콘텐츠 사업으로의 재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창립 70주년을 앞둔 유진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중견기업으로, 공정을 추구하는 언론의 역할과 신속, 정확을 추구하는 방송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매각자금 3199억, 현금성 자산 다 털어도 충당 불가
유진그룹의 재무 상황은 YTN 인수 자금을 자체적으로 충당할 형편이 아니다. 올해 8월 유진기업(전자공시등록명)의 반기보고서를 보면, 유진기업의 유동자산은 5892억 원이다. 이중 매각 자금으로 당장 활용 가능한 '현금및현금성자산'은 1027억2000만 원에 불과하다. 유진기업이 가진 현금성 자산만으로는 3000억에 달하는 YTN 지분 매입 자금을 충당하기 어렵다. 매각 자금은 회사채 발행이나 금융기관 차입 등을 통해 충당할 수밖에 없다.
유진기업은 원자재, 시멘트가 주력 사업 분야다. 올해 반기 매출도 레미콘(시멘트)이 60% 이상을 책임졌다. 시멘트 사업은 아파트 등 주택 시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최근 주택 시장이 전반적인 침체를 겪는 상황에서 유진기업도 여파가 불가피해 보인다. 업황 전망이 밝지 않은 회사가 화사채 발행이나 금융기관 차입 등을 할 경우 조달 금리는 당연히 상승할 수밖에 없다.
결국 유진에 매각자금 충당에 따른 재무적 부담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YTN은 올해 반기 영업이익이 76억 적자를 기록하는 등 경영 실적에선 전반적으로 부진했고, 미디어 시장 전망도 밝지 않아 '캐시카우' 역할을 기대하긴 어렵다. 만약 유진그룹이 YTN 인수를 위해 막대한 자금을 차입하고, 이로 인해 재무 상황이 악화된다면, 경영진의 '배임' 책임을 묻는 상황까지 벌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재무적 관점선 인수 않는 게 나아"... 유진 측 "자금조달 문제없을 것"
증권업계 고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언론사를 인수하는 기업은 대관(對官, 정부기관 상대하는 업무)과 기업 이미지 등 비재무적 효과를 노리는 것이 대부분이다, 유진 역시 그런 목적의 지분 인수라고 보는 것이 맞다"면서 "순수 재무적 관점에서 보면 유진은 YTN 인수를 하지 않는 것이 낫고, 지분 매입으로 인해 재무구조가 악화된다면 배임 이슈가 불거지는 등 이른바 '승자의 저주'를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유진그룹 관계자는 25일 <오마이뉴스>에 "이번 입찰은 유진그룹과 동양(유진그룹이 최대주주)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입찰에 참여했고, 두 기업의 현금성 자산을 합치면 1500억원이고, 부채 비율도 낮아 자금 조달에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YTN 인수를 통해 유진그룹이 정치적 후광 효과를 노린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설립 이후 오너 체제를 구축해온 유진기업은 여느 오너 기업과 마찬가지로 '오너리스크'가 존재한다.
유경선 유진그룹 회장은 지난 2012년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5부장검사에게 내사 무마 등의 대가를 바라고 5억 4000만원을 준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집행유예)을 선고받았다. 회장의 유죄 판결 여파로 유진그룹은 지난 2018년 기획재정부의 복권 수탁자 사업에서 탈락했다. 최근에는 유진그룹 계열사인 유진투자증권의 한 임원이 불법적인 주식 리딩방을 운영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박록삼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은 "서울신문을 인수한 호반건설이 그런 비판을 받았던 것처럼, 오너리스크가 있는 기업들은 언론사를 인수해 대관 업무에 활용하려 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오너를 비롯해 여러 논란이 있는 유진이 YTN 지분에 참여한 이유도 그런 이유로밖에 설명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지분 매각 과정 둘러싸고 의혹 여전
한편 유진의 YTN 지분 매입 절차는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방송법에 따라 YTN 대주주(최다액출자자)가 바뀌려면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승인을 얻어야 한다. YTN 지분 매각은 윤석열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사안인 만큼, 방통위 승인 절차 자체는 요식행위에 그칠 가능성이 높지만 승인까지 2개월 이상은 소요된다.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선 공기업들의 지분 매각 방식 논의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매각 작업을 맡은 삼일회계법인이 당초 한전KDN 지분만 단독 매각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했다가 갑자기 마사회 지분과 합쳐 통매각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며 결정 과정이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관련기사: 석연찮은 YTN 지분 통매각... 커지는 '정권개입설' https://omn.kr/2631v).
이를 두고는 대통령실 등 권력기관이 인수자를 내정하기 위해 절차를 변경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전국언론노조 등은 YTN 매각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국회에 국정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유진이 YTN 지분을 인수하더라도, 오너 뜻대로 YTN을 움직이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유진이 갖게 될 YTN 지분은 30.95%로, 최대주주이긴 하지만 주주로서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긴 부족하다. 올해 반기 기준으로 보면 YTN 소유구조는 한국인삼공사(19.95%), 미래에셋(9.26%, 9월 기준), 우리은행(7.4%)을 비롯해 소액주주도 19.97%에 달한다. 유진이 YTN 경영에 노골적으로 간섭할 경우, 다른 주주들이 협력을 통해 견제도 가능한 구조다.
▲ 지난 2008년 10월 24일 저녁 시민들이 당시 YTN 구본홍 사장 출근저지 투쟁 100일을 기념하며 서울 남대문로 YTN사옥 앞에서 연 촛불문화제에 참가해 정부의 언론자유 탄압을 규탄하며 손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
ⓒ 유성호 |
무엇보다 더 큰 벽은 외부 간섭을 용납하지 않는 YTN 구성원들이다. 언론사를 인수한 기업들은 보통 승진과 연봉 인상 등 당근책을 활용해 언론사 통제권을 쥐었다면 YTN은 이런 형태의 방식이 통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YTN은 지난 2008년 낙하산 사장 투쟁과 해직 사태를 겪었고, 당시 정권과 적극 투쟁했던 기자 등 구성원 상당수가 아직도 재직 중이다. 현재 언론노조 YTN 지부장인 고한석 지부장과 이상엽 사무국장 등도 낙하산 사장 사태 당시, 최일선에 섰던 기자들이다. 낙하산 사장 사태 이후 YTN 내부적으로 보도국장 임명동의제 등을 통해 외부 간섭을 통제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지분 매각에 대비해 YTN 지부는 지난 11일부터 시민 주주 운동인 '와주라(와이티엔주주가되어주라의 줄임말)'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YTN이 권력 감시와 비판이라는 공적 책무를 앞으로도 계속할 수 있도록 시민들이 직접 주주로 참여해 격려와 비판을 해달라는 취지다. YTN 시민주주운동은 25일 참여 시민이 1000명을 넘어서는 등 호응을 얻고 있다.
언론노조 YTN 지부는 유진 측에는 "당장 YTN에서 손을 떼라. 그렇지 않다면 언론의 집중 감시와 함께 여론의 심판대에 오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대식 언론노조 수석부위원장은 "보통 낙하산 사장을 내려보내면 백기 투항을 하는 언론사들이 많은데, YTN은 편집권, 편성권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투쟁했던 몇 안 되는 언론사"라면서 "이런 투쟁을 통해 YTN 구성원들의 언론관이 형성돼 왔기 때문에 대주주가 바뀌었다고 해서 호락호락하게 넘어갈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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