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대의 은퇴일기㊲] 어색한 추석
수십 년 만에 한가한 추석을 맞았다. ‘이런 명절도 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끝없이 밀리는 귀향행렬에서 벗어났지만 홀가분한 마음보다는 할 일을 안 하는 것 같아 안절부절못한다. 내 나이 칠십 밑자락에 접어들어선지 더욱더 쓸쓸하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걸까?’ 할 정도로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있는 기분이다.
TV의 유명가수의 추석 특집 쇼를 보다 추석 전날이라는 것을 알고는 동생들과 마주 앉아 그동안의 안부를 물으며 술을 한잔하고 있어야 하는데 ‘왜 혼자 여기 있지’ 하는 생각이 들어 깜짝 놀랐다. 지난 설에 차례를 지낸 후 동생들과 협의하여 추석은 차례 대신에 각자 편한 시간에 산소에 성묘하기로 하고, 어머니도 아버지 제삿날에 합쳐서 지내기로 간소화하였다. 추석을 앞두고 이미 산소로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기에 이번 명절에는 여유가 있다.
자식들의 이런 결정에 부모님이 화를 내지는 않을는지 아니면 시대 흐름에 따라 잘했다고 하실지 알 수가 없다. 아버지는 20년 전에 돌아가시면서도 시대에 앞서서 화장을 하라고 하신 것으로 보아 수긍할 것 같다. 하지만 어머니는 육십 년 이상 종갓집 종부로 지내오신 터라 우려스러운 점도 없지 않지만 부부 금실이 좋아 아버지 제삿날에 함께 모시는 것에 대해 딱히 반대하시지는 않을 것 같아 마음이 조금 놓인다. 또 추석날 한 번에 차례를 지내는 것보다 각자 산소로 찾아오니 자식들을 여러 번 볼 수 있어 좋아하실 것 같다는 생각으로 나름 위로해 본다.
고향에 내려가지 않으니 추석날 아침이 되어도 평일과 다름이 없어 실감이 나지 않는다.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고 성당의 한가위 위령미사에 참석했다. 성당 제대 중앙에 차례상을 차려놓고 미사를 드린 후 분향하고 인사를 올렸더니 마음이 조금은 위로가 된다. 오후에는 한가한 아파트 도서관에 가서 밀린 글쓰기를 하며 하루를 보냈다. 처음 겪어보는 환경에 접하자 ‘이게 뭐지’하는 생각으로 왠지 처량한 기분마저 든다. 형제와 조카들과 함께 음복하며 그동안 밀렸던 이야기로 왁자지껄해야 하는데 너무 조용하다 보니 적응이 되지 않는다. 명절은 역시 함께해야 제맛이 나는 것 같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차량이 밀릴 것을 대비하여 추석 전날 새벽 4시에 어김없이 서울에서 출발했다. 자녀가 어릴 때는 잠든 아이를 이불에 싸서 자동차에 태워 떠나기도 했다. 밀리는 고속도로를 피해 지도를 보며 국도로 달렸다. 코스모스가 하늘거리고 사과가 빨갛게 익은 시골길을 달릴 때면 학교 다닐 때 소풍 가는 기분이다. 붐빌 것에 대비해서 집에서 준비한 김밥과 과일을 휴게소 야외 테이블에 앉아 먹어도 꿀맛이다. 밤늦게 도착하기도 했지만 짜증스럽거나 고생이라고 여기기보다는 여행 가는 것 같아 즐거웠다. 어떨 때는 운 좋게 밀리지 않아 너무 일찍 도착할 것 같아 안동 하회마을이나 대구 앞산 공원에 들러 쉬었다 들어갔다.
결혼하고 서울로 분가한 후 코로나 때를 빼고 거의 사십 년 동안 명절에 대구에 계시는 부모님을 뵈러 갔었다. 직장 일로 부득이하게 갈 수 없을 때는 임신한 아내 혼자 세 살 먹은 아들을 데리고 열차표를 구하지 못해 입석 기차에 태워 내려보내기까지 했다. 동생들과 제수들이 하나둘 모이면 각자 맡은 음식을 준비하느라 왁자지껄하고 한쪽에서는 배추 부침개나 오징어 튀김을 먹으며 안부를 묻거나 어린 시절 이야기로 추억을 되새겼다. 설날 아침에는 부모님께 세배드리고 스무 명이나 되는 조카들로부터 절을 받을 때면 세뱃돈도 두툼히 챙겨야 했다. 선친의 나이와 비슷해졌음에도 세배받을 정도가 되었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아 쑥스럽고 어색하기도 하다. 마음이 젊어서 그런지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런가. 의미 없이 들어왔던 ‘아직도 마음만은 청춘’이라는 옛 어른들의 말이 실감 나게 다가온다.
서울에서 추석 명절을 보내는 실향민들이 힘들게 귀향하는 사람들을 보고 부러워했다는 이야기가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다. 긴 연휴인 데다 특별한 계획이 없어 야외로 나가보지만, 마음이 홀가분하지 않다. 그동안 복잡한 귀향길에 합류하지 않고 서울에서 명절을 지내는 사람들을 부러운 듯이 바라보았는데 그분들의 쓸쓸하고 허전했을 심정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상대방의 처지를 겪어보지 않고 미루어 짐작하는 것이 어떨 때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8대조부터 살아오던 터전이 산업단지가 들어서면서 사라졌다. 고향 앞 고속도로를 지나다 보면 선산의 종중묘지만 덩그렇게 눈에 들어온다. 이제 나도 고향을 그리는 사람이 되었다. 마음이 허전하고 안타깝다. 이번 추석 연휴를 겪기 전까지는 많은 사람이 떠난 텅 빈 서울에서 여유롭게 고궁이나 박물관을 관람하며 즐겼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부러워했다. 고향에 가지 않고 한가한 시가지를 여유롭게 다닐 수 있어 편리하기는 하지만 어색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복잡한 도시에서 40년 이상 살아왔지만, 아직도 적응이 안 된 탓인가. 몸속 깊숙이 배어 있는 어릴 적 고향 향수는 어찌할 수 없는가 보다.
조남대 작가ndcho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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