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원조 추적기]①36조원 쓴 ODA, 7만개 사업 '난립'…예산 나눠먹기의 역사
2010년 이후 36조원 해외원조
'조정 금지' 규정에 예산실도 손 못대
기재부-외교부 갈등에 막힌 ODA 개혁
6·25 전쟁의 비극을 거치며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의 원조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국제연합(UN)은 한국에 민간구호원조(CRIK)를 제공하기로 결의했고, 수많은 UN 우방국들이 한국에게 원조를 보냈고, 1950년 약 5800만달러의 원조를 받아 1960년대부터 본격적인 경제성장을 이뤘다. 당시 각국의 전문가 1800여명이 한국에 과학기술재를 도입하고, 광공업 개발 및 도로 건설에 나섰다.
이를 토대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은 1980년대 후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과 한국국제협력단(KOICA) 설립을 계기로 개발도상국에 대한 본격적인 공적개발원조(ODA)를 시작했고, 201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하면서 원조 선진국으로 거듭났다. 한국은 세계 최초로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됐다.
그러나 지난 10여년간 개발도상국에 대한 한국의 원조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정부 부처의 ‘예산 나눠먹기’ 관행이 공고해지면서다. 수십 개 부처가 ODA 예산을 나눠 가지면서 소규모 원조사업이 난립 중이다. 내년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정부는 ‘글로벌 중추국가’ 국정과제 이행을 위해 내년도 ODA 예산을 대폭 증액했다. 하지만 부처 간 갈등 탓에 ODA 예산 쪼개기는 여전한 만큼 사업 구조조정과 관련 법률 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ODA 데이터 485만개 전수분석…예산 나눠먹기의 역사25일 본지가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이뤄진 역대 ODA 예산을 전수 분석한 결과 이 기간 우리나라 ODA 사업은 7만7017개에 달했다. 통상 정부에서는 여러 국가에서 동시에 수행하는 ODA의 경우 단일 사업으로 분류하지만, 취재팀은 보다 엄밀한 분석을 위해 국가별 세부사업 전체를 들여다 봤다. ODA 사업실시기관은 우리나라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이 4만4050개로 가장 많았고, 공공단체가 7756개로 뒤를 이었다.
ODA란 선진국이 개발도상국과 후진국의 경제개발을 위해 지원하는 자금이다. 돈을 빌려주는 유상원조와 대가 없이 지급하는 무상원조로 구분한다. 이번 분석은 국무조정실이 공표하는 심층분석 데이터를 활용했다. ODA 사업기관과 유형, 내용, 지원국 등 1개 사업당 67개, 총 485만개 데이터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이 기간 우리 정부가 수원국에 지원한 ODA 사업비용은 269억2027만달러(36조원)다. 2010년 12억6000만달러에서 지난해 27억8500만달러로 늘었다. 매년 평균 7.7%씩 늘어난 것이다. ODA 규모가 커지자 원조사업 예산을 타내는 기관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ODA 사업실시기관이 명확하게 기록된 2013년 정부에서 예산을 받아 ODA를 수행한 기관은 326개였지만, 지난해 433개로 107개 늘어났다. 그만큼 분절화가 심해졌다는 뜻이다.
ODA 전담부처 있는데…기관 수백개 너도나도 예산 챙겼다
이 과정에서 전문적으로 ODA를 수행하는 기관의 역할은 축소됐다. 무상원조 담당인 KOICA와 유상원조를 맡은 EDCF가 2010년 ODA 사업 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37.6%, 31.3%였다. 하지만 점차 비중이 줄면서 지난해 KOICA는 22.3%, EDCF의 경우 26.3%로 쪼그라들었다. ODA 분절화가 심해지면서 전담기구가 전체사업의 절반도 수행하지 못한 셈이다. 반면 ODA와 무관한 부처의 역할은 확대됐다. ODA 전문성이 떨어지는 ‘기타’ 비중은 2010년 19.1%에서 지난해 34.3%로 15.2%포인트나 늘었다.
ODA 예산을 수십개 부처가 나눠갖는 분절화는 한국에서만 포착되는 현상이다. 스웨덴의 경우 국제개발협력청이 33억2650만달러(55.7%), 외교부가 24억9760만달러(41.8%)를 쓴다. ODA 예산을 받는 부처는 수곳에 불과하다. 영국은 전체 ODA 예산의 68.9%에 달하는 113억5370만달러를 외무·영연방부에 몰아준다. 일본 역시 국제협력기구가 전체 65.3%에 달하는 143억4000만달러를 집행한다. 미국(59.0%), 독일(52.6%) 등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ODA 예산 나눠먹기 관행은 이명박 정부부터 시작됐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은 ODA 확대를 국정과제로 삼았는데, 이때 다른 부처의 국제협력 사업들이 무분별하게 ODA로 편입됐다. 익명을 요구한 관련부처 관계자는 “당시 국민총소득 대비 ODA 목표가 0.3%였다”면서 “예산을 늘려야 하다 보니 기재부가 다른 부처의 개발도상국 사업을 죄다 ODA로 묶었다”고 귀띔했다.
'건들지 말라'…꽉 막힌 규제에 예산실도 손 못 댄다
예산 나눠먹기 관행을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는 윤 정부 들어 커졌다. 그간 윤 대통령은 조금씩 예산을 나누지 말고 필요한 부분에 확실하게 투자하라는 메시지를 내왔다. 2024년 예산안을 편성할 때도 기재부에 원점 재검토를 주문했다. 실제로 윤 대통령이 직접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이라고 지적했던 연구개발(R&D) 예산은 31조1000억원에서 5조2000억원(16.6%) 줄었고, 첨단바이오와 인공지능(AI), 양자 분야에 투자를 집중했다.
하지만 2024년 예산에서도 ODA는 구조조정이 이뤄지지 않았다. 내년 ODA 예산 6조5317억원을 타낸 부처는 34개로 외교부가 2조8964억원(44.3%), 기획재정부는 2조7057억원(41.4%)이었다. 남은 9296억원은 32개 기관이 나눠 가졌다. 이마저도 농림축산식품부(1857억원)와 교육부(1614억원), 산업통상자원부(979억원), 보건복지부(935억원)를 제외하면 1% 미만의 ODA 예산을 배정받았다. 선거관리위원회(8억원), 조달청(5억원), 감사원(3억원), 권익위원회(3억원), 공정거래위원회(1억원), 국세청(1억원)은 ODA 예산이 한 자릿수였다.
ODA 예산이 원점 재검토를 받지 않았던 건 규제 때문이다. 부처별 ODA 사업은 외교부(1차)와 국조실(2차)의 심사로 결정한다. 이후 국제개발협력위원회(국개위)가 ODA 종합시행계획을 최종적으로 마련한다. 기재부는 국개위 결정에 맞춰 ODA 예산을 대부분 그대로 통과시킨다. ‘기재부 장관은 예산편성 때 종합시행계획을 존중해야 한다’는 규정 탓이다. 비효율적인 사업이 있어도 기재부가 예산을 잘라내기 어렵다는 뜻이다.
치고박고 싸운 기재부-외교부…요원한 ODA 개혁
한 기재부 관계자는 “ODA 예산을 여러 부처가 나눠 가지는 행태는 분명한 문제”면서도 “갈라먹기식 예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외교부와 국조실이 사업을 의결하는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른 관계자는 “예산을 존중하라는 규정은 추상적인 것 같지만 아주 강력하다”면서 “만약 기재부 예산실이 ODA 사업을 구조조정 한다면 외교부와 국조실을 존중하지 않은 것으로 비춰질 위험이 있어서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ODA 예산 나눠먹기를 근절하려면 배분 방식을 바꿔야 하는데 첨예한 부처 갈등 탓에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기재부와 외교부는 십수년전부터 ODA 사업 주도권을 놓고 부딪혀왔다. 과거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회의 석상에서 두 부처의 차관 등 고위 공직자들이 막말과 고성을 주고받았을 정도다. 외교부의 ODA 예산에 칼을 대기 시작하면, 간신히 잠재운 갈등이 재점화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ODA 예산이 대폭 늘어난 만큼 효율적인 집행을 위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태주 한성대 교양대학장은 “영국, 독일, 미국, 일본은 많아봐야 2개 부처가 ODA를 하고 있다”면서 “6조5000억원이나 되는 큰돈을 부처들이 마음대로 쓰는 한국의 구조는 곤란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만큼 이제 ODA도 국가통합전략으로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인포그래픽 페이지■
태양광과 장작 - 베트남 반 라오콘 르포
(story.asiae.co.kr/vietnam)
원조 예산 쪼개기는 어떤 문제를 가져오나
(story.asiae.co.kr/O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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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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