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ODA 예산으로 산 태양광…충청도 창고에 3년째 방치
혈세로 사들인 태양광 기자재 76종 20개
미얀마 못가고 韓창고에 보관..임대료 내기도
정부가 공적개발원조(ODA) 명목으로 사들인 태양광 장비 등 76종, 20개 기자재가 수원국(우리나라의 원조를 받는 나라)으로 가지 못하고 충청도·전남 장성·부산 강서·경기도 시흥 등의 국내 창고에 3년째 방치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수원국은 미얀마로, 3년 전인 2021년 2월 군부 쿠데타 직후 우리나라가 무상원조를 중단했다. 국무조정실은 같은 해 10월 ‘별도의 지침이 없는 한 미얀마 원조를 중단하라’는 내용의 지시를 보냈지만,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하 산업진흥원)이 이를 듣지 않고 11월부터 태양광 모듈 등 기자재를 사들인 탓이다.
25일 본지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실과 공동 취재한 결과 총 9억4100만원어치의 태양광 모듈, 구조물, 인버터 등의 장비가 2021년부터 2023년 현재까지 충청도 소재 국내 수행기관 창고에 뿔뿔이 흩어져 보관 중이다.
태양광 장비 76종, 3년째 방치
해당 장비는 산업부 산하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2019년부터 수행한 ‘미얀마 에너지자립형 마을 구축사업’(2019~2022년, 총 사업비 57억5000만원 규모)의 일환으로 구입했다. 이 장비들은 전남 장성군에 2개, 충청도에 14개, 부산광역시 강서구 송정동에 3개, 경기도 시흥시에 1개 보관 중이다. ‘미얀마 에너지자립형마을 구축 사업’이 재개될 가능성은 희박해 매몰비용이 될 가능성이 높다.
사업 추진 근거도 없어졌다. 2021년 미얀마 쿠데타를 계기로 해당 사업은 2023년도 국제개발협력위원회 의결한 ‘종합시행계획’에서도 빠졌다. 미얀마에서 유혈진압과 인권탄압이 일어나자, 미국·일본 등 주요선진국들은 원조를 끊었다. 우리나라는 같은 해 10월 원조 중단을 발표했다. 국민이 납세한 예산이 개도국 국민의 몫으로 돌아가지 않고 군부 정권을 유지하는데 쓰일 수 있어서다.
해당 사업은 원조기본합의서인 협의의사록을 체결할 대화 채널이 쿠데타로 두절되면서 재개가 불투명하다.
LED 기자재 3년째 유료 보관
‘미얀마 LED조명 기반조성 지원’ 사업과 관련된 LED 기자재도 2020년부터 현재까지 1059일 동안 김포 창고에 유료보관 중이다. 임대료는 일일 기준 3만740원이다. 지금까지 약 3255만원 상당의 보관료가 나가고 있다. 2020년 6월2일 수행기관이 선정되고, 인건비 2억1800만원, 기타 예산 7억7500만원이 나갔지만 올해 9월27일 기준 아직 협의의사록이 미체결된 상태다.
유료 보관료가 나간 곳은 또 있다. 콜롬비아 보고타 USME지역 하이브리드 전원공급 구축 지원사업(총 사업비 133억7800만원)이 그 예다. 협의의사록 체결 전에 기자재를 구입해, 울산광역시 동구 소재 창고에 169일동안 하루 9만원어치의 보관비용(총 1521만원)이 발생했다. 협의의사록은 올해 8월 17일이 되어서야 체결됐다. 수행기관 선정일인 2020년 5월 28일보다 3년 넘게 지나서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일이 원조 상식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재광 발전대안 피다 대표는 “합의에 대한 프로세스를 어기고 사업을 한다는 건 문제가 있다. 한국 국제개발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만들어진 제도적 규범 안에서 원조 사업을 시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협의의사록 체결 전 예산집행 관행 탓
산업진흥원이 감사원에 제출한 감사 관련 소명서에 따르면 담당자들은 “원활한 사업추진을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견책’ 처분을 받은 관계자는 감사원에 낸 소명서에서 “미얀마 사태의 장기화를 예측할 수 없었던 당시 2019년도 재이월금의(예산의) 불용(不用)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향후 사업 재개 시 조속한 사업 추진을 위함이었다”고 했다.
‘주의’ 처분을 받은 또다른 담당자도 ‘산업 및 에너지 협력개발지원사업 운영요령 제25조’를 근거로 사업비 집행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 운영요령에 따르면 ‘협의의사록 선체결, 후 사업착수’가 기본이다. 하지만 단서조항이 있다. ‘사업의 조속한 시행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한해 협의의사록 체결 전에 사업준비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 조항에 따라 사업비 집행은 “전담기관으로서 적극적인 조치였다”는 것이 이 담당자의 설명이다.
다만 외교정책의 일환으로 이뤄지는 ODA 사업에서 개별부처가 ‘적극 행정’의 원칙으로 사업을 단순 판단해 추진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감사원은 이 운영요령에 대해서 “협의의사록 체결 이전에 기자재 구매 등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예외적 사유와 그 범위를 명확히 하는 등 기구매한 기자재가 장기간 방치되면서 예산이 낭비되는 사례를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인포그래픽 페이지■
태양광과 장작 - 베트남 반 라오콘 르포
(story.asiae.co.kr/vietnam)
원조 예산 쪼개기는 어떤 문제를 가져오나
(story.asiae.co.kr/ODA)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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