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돈 벌어 이자도 못낸 취약기업 42.3%, 2009년 이후 최고

김경희 2023. 10. 2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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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ㆍ고금리 여파에 지난해 국내 기업 10곳 중 4곳(42.3%)은 한 해 동안 번 돈으로 이자도 못 내는 ‘취약기업’인 것으로 나타났다. 취약기업 비중은 2009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았다. 경영난에 빚을 낸 기업이 늘면서 부채비율과 차입금 의존도도 2015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25일 한국은행이 지난해 국내 비금융 기업 91만여 곳의 경영실태를 분석한 결과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의 영향으로 매출액영업이익률은 4.5%로 하락했다. 이는 기업이 얼마나 잘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1000원짜리 상품을 팔았을 때 45원의 이익을 남겼다는 뜻이다. 1년 전(5.6%)보다 1.1%포인트나 줄었고,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4.2%)보다는 소폭 높은 수준이다.

이에 따라 기업이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정도를 나타내는 이자보상비율이 100% 미만인 곳은 42.3%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자보상비율이 100% 미만이면 한 해 수입으로 이자조차 내기 어려운 취약기업이란 의미다. 이 비중은 2017년 32.3%에서 2020년 40.9%로 뛰었다가 2021년에는 40.5%로 소폭 줄었다. 하지만 2021년 8월 기준금리 인상이 시작된 후 지난해 내내 고금리 기조가 유지되면서 소비ㆍ투자가 위축됐고, 그 결과 취약기업 비중도 다시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또 취약기업의 대부분(34.7%)은 영업적자로 이자보상비율이 0% 미만이었다.

신재민 기자

전체 기업의 이자보상비율 역시 348.6%로 2021년(487.9%) 대비 하락했다. 다만 이자보상비율 100% 이상인 기업 비중은 늘었다. 100~300% 기업과 300~500% 기업 비중이 각각 16.3%, 7.2%로 2021년(14.2%, 7.1%) 대비 증가했다. 이성환 한은 기업통계팀장은 “이자보상비율이 100% 이상이면 우량한 기업으로 볼 수 있다”며 “시중 금리가 오르면서 이자비용이 증가하는 가운데 좋은 기업은 더 좋아지고 나쁜 기업은 더 나빠지는 양극화 현상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기업 부채비율과 차입금 의존도는 비제조업을 중심으로 상승했다. 각각 122.3%, 31.3%로 2015년(128.4%, 31.4%) 이후 최고치다. 차입금 의존도란 기업 자산(자본+부채) 중 은행 등 외부에서 조달한 차입금 비중을 의미하는데, 이 수치가 높을수록 이자 등 금융비용에 대한 부담이 커서 수익성이 떨어지게 된다.

업종별로 보면 제조업 부채비율과 차입금의존도는 모두 하락(78.6%→77.0%, 22.6%→22.1%)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는 제조업 부문의 매출이 좋았고 반도체 영업 손실이 나타난 건 지난해 3분기부터이기 때문에 2022년 전체적으로는 선방한 편이라는 게 한은의 평가다.

반면 비제조업 부채비율과 차입금의존도(158.2%→164.0%, 35.0%→36.9%)는 모두 상승했다. 특히 전기가스 업종의 부채비율(183.6%→269.7%)이 대폭 늘었는데, 이는 한국전력 등 일부 전기가스 부문 기업이 대규모 영업손실을 입으면서 차입금이 증가한 영향이라고 한은은 설명했다. 한전과 가스공사를 제외한 전산업 부채비율은 2021년 119.1%에서 2022년 118.5%로 오히려 하락했다. 차입금의존도 역시 두 곳을 제외하면 2021년 29.9%에서 2022년 30.4%로 0.5%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 이 팀장은 “전기가스 요금이 올라가고 있기 때문에 손실이 계속되지만 그 폭은 줄어드는 것으로 보인다”며 “어느정도 수준이 되면 기업 부채비율과 차입금의존도도 좀 완화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신재민 기자

다만 지난해 매출은 전년과 비교해 15.1% 증가했다. 2021년(17.0%)보다는 증가 폭이 줄었지만, 2010년 편제 시작 이후 세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수출 단가(유가) 상승과 글로벌 수요 증가에 힘입어 석유정제ㆍ코크스(49.3%→66.6%) 매출액이 크게 늘었고, 자동차(11.7%→14.9%)도 친환경차 중심으로 수출이 증가한 영향이다. 연간 총자산증가율 역시 2021년 12.7%에서 지난해 9.7%로 낮아졌으나 통계 편제 이후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고금리가 예상보다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소비자들은 지갑을 더 닫고 있다. 이날 한은이 발표한 10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8.1로 9월(99.7)보다 1.6포인트 하락했다. 지난 7월 103.2까지 오른 이후 석 달 연속 하락세다. 이 지수가 100 아래면 소비 심리가 비관적이라는 의미다.

향후 1년간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인 기대인플레이션율은 3.4%로 지난 2월(0.1%포인트 상승) 이후 8개월 만에 반등했다. 황희진 한은 통계조사팀장은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 등 영향으로 국제 유가 오름세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다”며 “10월에 공공요금 인상이 예고된 것들이 있었고, 농산물 등 가격도 올라 물가가 계속 오른다고 보는 응답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6개월 후 금리가 더 오를 것이라고 보는 금리수준전망지수는 118에서 128로 한 달 사이 10포인트나 올랐다. 지난 1월(132)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며, 상승 폭 역시 지난 2021년 3월(10포인트) 이후 2년 7개월 만에 가장 크다. 황 팀장은 “미국이 고금리 장기화를 시사하고 장기 국고채 금리도 상승하면서, (소비자들이) 당분간 금리가 높은 수준에서 지속될 것으로 느낀 것 같다”고 했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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