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생환' 광부의 충격 1년 "암흑속 환청 아직도 시달린다"
“헤드 랜턴이 꺼지면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암흑 속에 갇혀 있었던 끔찍한 기억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습니다. 1년 가까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지만, 전혀 낫질 않네요.”
오는 26일이면 경북 봉화군 소천면 아연채굴광산 붕괴 사고가 일어난 지 1년이다. 아연광산 제1 수갱(수직갱도) 하부 46m 지점에서 토사 900t가량이 쏟아져 내린 사고다. 당시 갱내에 고립됐다가 221시간 만에 기적적으로 구조된 박정하(62·강원도 정선시)씨는 25일 중앙일보와 전화 통화에서 1년이 지난 지금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갑자기 무너진 갱도…221시간 동안 고립
당시 갱도에는 작업자 7명이 있었다. 이 중 2명은 사고 발생 후 2시간쯤 지난 8시쯤 자력으로 탈출했다. 3명은 오후 11시쯤 업체 측에서 구조했다. 탈출하거나 구조된 작업자 5명은 지하 30m 지점에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갱도 더 아래에 있던 박씨 등 2명은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하고 지하 190m 지점쯤에 고립됐다. 그렇게 221시간이 지난 지난해 11월 4일 오후 11시쯤 박씨 등 2명은 지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어둠 내리면 환청 들려…정신과 치료중”
박씨는 “온종일 머리에 뭔가 이고 있는 것마냥 무겁고 약을 안 먹으면 잠을 못 잔다. 낮에는 괜찮은 편인데 어둠이 내리면 불안감이 몰려와 가슴이 두근거린다. 불을 다 켜놓고 TV를 보다 보면 졸리긴 하지만 막상 누우면 잠이 안 온다”며 “애를 쓰다가 겨우 잠이 들면 갱내에서 며칠간 들렸던 환청이 또 들리고 새벽 3~4시쯤에 어김없이 일어나 아침 해가 뜨길 기다린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나와 함께 갇혔던 보조작업자 박모(56)씨도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지만 차도가 없다고 들었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광부 작업환경 개선을 위한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는 구조 직후 입원한 안동병원에서 퇴원하며 기자회견을 자청, 열악한 광산 현실을 개선하는 활동을 하겠다고 했다. 그는 당시 “지금 광산 환경이 80년대 초나 현재나 변한 게 없다”며 “조금이라도 그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사회단체와 연계해 활동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주기적으로 강원 태백에 있는 산업통상자원부 동부광산안전사무소에 들러 광산 안전대책 강화를 요청하고 미흡한 점이 없는지 확인한다고 한다. 박씨는 “작업장 안전 점검을 어떤 식으로 하는지, 언제 했는지 물어보고 조언도 한다”며 “소장은 귀찮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갱도에서 일하는 동료 광부를 위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광산 안전 개선 활동으로 정책 이끌어내
‘기적의 생환’ 직후 여러 언론·방송에 출연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했다. 박씨는 “내가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방송이나 신문 인터뷰를 통해 정부에 강하게 요청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며 “어쨌든 구체적 성과가 나온 것 같아 뿌듯하다”고 했다.
실제 산업부는 올해 2월 ‘광산안전 종합대책’을 내놓고 관련 예산을 전년 대비 72% 증액해 110억원을 편성했다. 특히 5인 이상 갱내광산은 ‘생존박스(철제)’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했다. 매몰되거나 불이 나면 작업자가 긴급히 대피할 공간이다. 산업부는 지난달 강원 삼척시 한 석회석 광산에 처음으로 생존박스를 설치한 데 이어 2027년까지 광산 근로자 5인 이상인 83개 갱내 광산에 생존박스를 보급할 방침이다.
그는 광부 개개인이 안전 의식을 가져야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는 “갱도에 들어가기 전 주변에 위험 요소가 있는지 살피고 위험하다 싶으면 작업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갇혔다 나와서 보니까 그런 것들이 더욱 뼈저리게 느껴졌다”고 강조했다.
박씨는 당분간 광산 안전 개선을 위한 활동을 하면서 정신과 치료에 집중할 예정이다. 그는 “의사에게 정신적 고통을 평생 갖고 살 것 같은 예감이 든다고 하니 이해를 하면서도 좀 더 노력해보자고 하더라”며 “희망을 잃지 말고 힘을 내라고 응원해주는 주변 사람에게 감사하다”고 전했다.
봉화=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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