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서울교통공사, 전동차 광고판 계약 불이행 배상해야”
지하철 객실 내에 설치하는 광고판을 두고 서울교통공사(이하 공사)와 설치업체가 벌인 100억원대 소송전에서 대법원이 공사의 일부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다.
공사는 시행령 개정 등을 이유로 애초 계약상 전동차 객실 천장 중앙에 설치하기로 돼 있던 광고판을 측면에 설치하겠다고 통보했는데, 광고판의 위치는 계약의 본질적 내용이므로 공사가 계약 내용대로 이행하지 않은 경우에 해당돼 이로 인한 손해를 업체에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자동화 설비업체 A사가 공사를 상대로 102억8700여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의 원고패소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피고(공사)에게 전동차 객실 내 천장 중앙에 총 4면의 LCD 모니터로 구성된 객실표시기를 설치해 광고 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승인·협조할 계약상 의무가 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원고의 이행거절 주장을 배척한 원심의 판단에는 이행거절, 계약의 해석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파기환송의 이유를 밝혔다.
A사는 2009년 모회사와 공사의 '역사 및 전동차 내 실시간 정보제공시스템 구축사업' 계약에 따라 16년간 객실과 역사 내 표시기를 이용한 광고사업권을 부여받았다. A사가 2호선 전동차와 역사 내에 영상안내시스템(객실표시기) 시설을 설치해 운영하는 대신 250억원의 광고료를 공사에 납부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2014년 7월 도시철도법 시행령 개정으로 전동차 내 폐쇄회로(CC)TV를 사각지대 없이 설치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이 신설되면서, 애초 계약한 대로 객실표시기를 전동차 중앙에 설치할 경우 공사가 시행령을 준수하기 어렵게 됐다.
결국 공사는 구형전동차 500량을 신형으로 교체하면서 객실표시기를 천장 중앙이 아닌 측면(출입문 상단)에 설치하겠다고 A사에 통보했다. A사는 구형전동차에 설치한 기존 객실표시기를 새 전동차로 옮겨서 설치해줄 것을 요구하며 합의를 진행했지만, 공사의 거절로 합의가 불발되자 2019년 3월 소송을 냈다. 공사는 소송 중이던 2021년 3월 계약 해지 의사를 밝혔다.
A사는 소송을 내면서 청구원인으로 2가지를 주장했다.
먼저 주위적으로는 광고 운영권을 반납하고 이미 설치한 시설물의 가치에 상응하는 보상금을 받기로 2018년 7월경 공사와 합의했다고 주장하며 정산금을 지급하라고 청구했다.
또 예비적으로는 설령 공사와의 정산 합의가 유효한 것으로 인정되지 않더라도 공사가 계약에 따른 의무를 어겼으므로 채무불이행(이행거절)에 따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2심 법원은 A사의 두 가지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정산에 관한 합의를 확인할 수 있는 서면계약서가 없고, A사가 주장하는 합의해지일 이후에도 양측 간에 합의가 계속 진행된 점 등을 이유로 사건 계약 중 전동차 객실 내 광고운영권에 관한 부분을 해지하고 그에 따른 정산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의 합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애초 체결한 계약서에 '본 계약의 변경은 계약당사자가 상호 합의하고 기명날인 한 변경계약서에 의해서만 효력이 발생한다'고 정한 점, 합의를 반영한 변경계약서가 존재하지 않는 점, 원고와 피고가 2018년 8월 31일 이후에도 원고의 광고운영권 반납에 따른 적정한 보상금액 등을 확정하기 위한 협의를 계속했던 점 등에 비춰 원고의 주위적 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공사의 채무불이행 책임을 주장한 A사의 예비적 청구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객실용 LCD는 4면 1조로 구성한다고 한 부분은 인정할 수 있다"라면서도 "다만 반드시 전동차의 객실 내 천장 중앙에 총 4면의 LCD 모니터를 설치해 광고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승인 또는 협조할 계약상 의무를 부담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또 의무의 불이행으로 확정적 손해를 입었다는 점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밝혔다.
이어 "이 사건 계약상 원고가 피고의 의무라고 주장하는 점은 명시돼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원고가 신형전동차 도입에 따른 시설물 등의 종류 및 규모 조정에 응해야 할 의무를 부담하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정산과 관련된 합의가 이뤄졌음을 전제로 100억원대의 정산금 지급을 청구한 A사의 주위적 청구는 1·2심 재판부와 마찬가지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반면 채무불이행에 관한 A사의 예비적 청구는 인정될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공사가 '전동차 객실표시기 중앙설치'라는 계약상 의무 이행을 거절한 것에 대해 A사가 10억2800여만원의 손해배상과 이에 대한 지연이자를 청구한 것을 기각한 원심판결에 문제가 있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표시기를 중앙에 설치할지, 측면에 설치할지의 문제에 대해 "전동차 사업의 매출이익과 직결되는 광고 사업의 운영조건으로 이 사건 계약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라며 "피고(공사)는 쌍방이 계약 당시 합의한 광고 사업의 운영조건을 계약기간 동안 유지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밝혔다.
또 재판부는 "도시철도법령에서 객실표시기의 중앙설치를 금지하고 있지 않고, 객실표시기의 중앙설치시 CCTV 카메라 설치가 불가능하다거나 사각지대가 발생한다고 단정하기 어려우며, 도시철도법 개정 후 피고가 최근 도입한 전동차 중에는 객실표시기가 중앙에 설치된 것이 있고, 피고도 2019년 2월 원고의 객실표시기 중앙설치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한 점에 비춰 보면, 도시철도법의 개정으로 객실표시기의 중앙설치를 측면설치로 변경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사정이 발생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가수 벤 "아이 낳고 6개월만에 이혼 결심…거짓말에 신뢰 무너져" - 아시아경제
- 버거킹이 광고했던 34일…와퍼는 실제 어떻게 변했나 - 아시아경제
- "어떻게 담뱃갑에서 뱀이 쏟아져?"…동물밀수에 한국도 무방비 - 아시아경제
- 100명에 알렸는데 달랑 5명 참석…결혼식하다 인생 되돌아본 부부 - 아시아경제
- 장난감 사진에 알몸 비쳐…최현욱, SNS 올렸다가 '화들짝' - 아시아경제
- "한 달에 150 줄게"…딸뻘 편의점 알바에 치근덕댄 중년남 - 아시아경제
- "황정음처럼 헤어지면 큰일"…이혼전문 변호사 뜯어 말리는 이유 - 아시아경제
- "언니들 이러려고 돈 벌었다"…동덕여대 졸업생들, 트럭 시위 동참 - 아시아경제
- "무료나눔 옷장 가져간다던 커플, 다 부수고 주차장에 버리고 가" - 아시아경제
- '초가공식품' 패푸·탄산음료…애한테 이만큼 위험하다니 - 아시아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