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깜짝 방문처럼 포장'? 사건의 전말 [문재인의 말과 글]

최우규 2023. 10. 25. 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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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말과 글] 언론과 불화, 권력자의 피할 수 없는 운명

[최우규 기자]

 2019년 4월 4일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63회 신문의 날 기념 축하연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의 공통점. 임기 초반 짧은 허니문 기간을 제외하고 언론으로부터 힐난에 가까운 비판을 받았다. 보수신문과 보수신문보다 더 보수적인 경제신문이 주도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허니문이 없다시피 했다. 오죽했으면 그가 "편지 100통을 써도 배달부(언론)가 전달을 안 한다"라고 한탄했을까.

언론은 감시하고 비판하며 여론을 형성한다. 이 기능을 하지 못하면 언론이 아니다. 그런데 언론이 특정 정파에는 객관적(실제로는 우호적)이고 다른 쪽에는 늘 적대적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해설가, 혹은 심판이 한쪽을 위해 선수로 뛰는 셈이다. 아니면 한쪽이 만만하거나.

문 대통령은 언론 문제를 2012년 책 <사람이 먼저다 : 문재인의 힘>에서 이렇게 썼다.
 
정부와 언론은 소통과 긴장이라는 두 가지의 관계를 통해서 균형감을 가져야 합니다. 먼저 합리적인 소통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정부는 언론에 왜곡되지 않은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언론을 통제하지 말고 자유를 보장해야 합니다. 언론 역시도 국민들의 목소리가 공정하고 왜곡되지 않게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231쪽)

정부와 언론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도 언론도 아닌 국민입니다. 정부도 언론도 국민 앞에 섰을 때는 무한 책임을 져야 할 공적인 존재입니다. 정부도 언론도 결코 특정 집단에 사유화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유화된 권력과 사유화된 언론이 담합했을 때 어떤 결과를 보여주는가를 우리는 이명박 정부에서 똑똑히 보고 있습니다. 정부와 언론은 국민을 상대로 경쟁하는 관계라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233쪽)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언론 관련 발언을 많이 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언론에 요구를 많이 할수록 언론 자유는 위축되기 마련이다. 내부 회의에서는 이런저런 언급을 했지만, 외부 메시지는 신중하게 다뤘다.

그나마 내놓은 발언도 원론적이었다. 핵심은 '각자 선을 지키자'다. 2017년 6월 29일 한국신문협회 창립 6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문 대통령 영상 축사다.

"사회적 의제를 제기하고 공론의 장을 여는 것은 민주주의가 신문에 부여한 권리이자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는 시민의 참여 없이 존립할 수 없습니다. 신문의 미래가 민주주의의 미래인 이유입니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시민 의식의 성장이 우리 신문에 새로운 도전이 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변화의 파고를 넘어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가고자 하는 신문인 여러분의 노력과 성취를 응원하고 격려합니다. 정부는 언론을 존중하고, 자유를 보장하겠습니다. 정론직필(正論直筆)의 정신을 지키는 언론인들을 응원하겠습니다."

'존중하고 자유를 보장하겠으니 정론·직필하라.' 신문이 정치판에서 선수처럼 뛰지 말고 본연의 역할을 하라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와 언론의 불화
 
 2020년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3년 특별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실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문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은 몇몇 매체가 문재인 정부를 불공정하게 대하고 사실을 왜곡해서 전달한다고 봤다. 취임 초기 내부 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언론 환경이 워낙 일방적이다"라고 평했다. 그는 "청와대에서 하는 일이 언론을 거치면서 똑바로 전달이 안 되는 것 같다"라며 "국민에게 직접 알리는 게 필요하다. 참여정부에서도 그 목표를 가졌는데 성공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그래도 참여정부 때보다 훨씬 낫다"라며 "정부 출범 초기라서 국민 관심도 높고, 소셜미디어로 (잘못을) 바로 잡을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와 언론의 불화는 임기 내내 계속됐다. 정책의 방향과 신념을 놓고 충돌했다.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정부와 언론이 늘 화기애애하다면 그 사회는 위험하다. 나치 치하 독일처럼. 그런데 문재인 정부에서 어떤 매체들은 가십 같은 일을 소재로 정책과 제도를 비판했다. 청와대 내부에서 '침소봉대, 견강부회'라고 보는 시각이 있었다.

대표적인 일이 '혼밥(혼자 밥을 먹음) 논란'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12월 중국을 방문했다.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 이후 경제 교류가 경색됐을 때였다. 중국 관광객이 발을 끊어 명동 거리가 텅텅 비었다. 문 대통령은 남북문제의 주도적 해결 등 한반도 정책 관련 중국 측 지지를 재확인했다. 경제 교류도 확대키로 했다. 다행이었다.

그런데 일부 신문이 '문 대통령이 혼밥하는 게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를 중국의 홀대론으로 연결했다. 다른 매체도 따라갔다. 한국 외교 역량이 부족한 데다 중국에 지나치게 저자세였다는 것이다. 보도는 양국 간 의제와 회담 성과 평가보다 '혼밥 프레임' 안에서 맴돌았다.

문 대통령은 귀국 후 12월 18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중국 방문으로 다들 고생했고 성과도 좋았는데 홀대니 하면서 폄훼하니까 속상하시죠"라고 물었다. 이어 "실질 성과가 좋았기 때문에 저절로 인식이 바뀔 것이라고 본다. 중국 방문 마지막 날부터 그런 성과를 제대로 설명해서 국민 평가도 많이 바로잡혔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다음날 국무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중국 방문과 정상회담 때) 구체적 사업도 다양한 분야에서 MOU(양해각서)를 체결하는 등 실질적 합의가 많이 이루어졌다"라며 "국민께서 이번 방문 성과를 하루빨리 체감할 수 있도록 후속 조치를 신속히 추진하고 각 부문 성과를 적극적으로 홍보해 주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혼밥 논란'은 문 대통령 임기를 마친 뒤에도 논란거리로 남았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이번 정부 들어서도 외교 홀대 논란이 벌어졌다. 2022년 9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장례식 때 윤석열 대통령이 조문하지 못하자 영국 측 배려를 받지 못했다는 시비가 일었다. 2023년 3월 윤 대통령이 일본 총리로부터 오므라이스 대접을 받았다. 이 또한 푸대접이라는 평가다.

외교에서 의전은 중요하다. 그 자체가 메시지다. 초강대국 사이에 낀 한국으로서는 의전 형식 못지않게 중요한 게 있다. 실질적 성과다. 너무도 당연한 이 일이 정파, 감정 다툼에다 '내로남불' 태세까지 겹치면 뒷전으로 밀리기도 한다. 경쟁자보다 좋은 대접 받기에 신경을 쓰고 강국으로부터 '쌍따봉(two thumbs up)' 칭찬받기에 매진한다? 귀국 보따리에 비용 청구서만 남은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오역과 오보의 실상
 
 2017년 9월 18일 연합뉴스는 "<사고> 트럼프 대통령 글 오보 바로 잡습니다"를 통해 "국가의 외교·안보와 한미 정상 간 통화내용과 관련된 사안에서 사실관계를 틀리게 보도해 혼선을 빚은 점을 고객사와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라고 밝혔다.
ⓒ 연합뉴스
 
2017년 9월에는 외신 오역(誤譯) 논란이 벌어졌다. 당시 북한이 중장거리 탄도 미사일을 발사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9월 17일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I spoke with President Moon of South Korea last night. Asked him how Rocket Man is doing. Long gas lines forming in North Korea. Too bad!

해석하자면 "지난밤에 한국 문 대통령과 통화했다. 로켓맨(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장에 붙인 별명)이 어떻게 지내는지 물었다. (유엔의 유류 공급 제재 때문에) 북한에서 기름을 타려는 긴 줄이 늘어선다. 딱하다"이다.

연합뉴스는 마지막 두 문장을 '북한에 긴 가스관이 형성 중이다. 유감이다'로 해석해 보도했다. gas line에는 '주유 대기 중인 차량 행렬'과 '가스관' 두 뜻 모두 있다. 연합뉴스는 '이는 문 대통령이 지난 6일 러시아 방문을 통해 한국과 북한 러시아를 잇는 가스관 사업 구상을 밝힌 부분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라고 해설했다.

연합뉴스는 일종의 뉴스 도매상이다. 언론사에 기사를 공급한다. 많은 매체가 이 내용을 그대로 받아 썼다. 바로잡지 않으면 외교적 파장이 올 일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춘추관 백 브리핑(비공식 브리핑)에서 이렇게 하소연했다.

"언론이 왜 이런 오보를 했을까 생각해보면 뭔가 머릿속에 일부나마 프레임이 있기 때문이지 않나 생각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를 비난할 것이라는 예측, 그에 따른 프레임이 있어서 영어를 잘하는 특파원이 너무나도 쉬운 내용에 오보를 낼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닌가. 단장취의(斷章取義)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필요한 부분만 빼서 마음대로 해석한다는 뜻이다."

누가 봐도 오역임이 분명해 대부분 언론은 기사를 수정했다. 사과를 한 곳은 첫 오보를 낸 연합뉴스 정도였다.
 
 2018년 9월 21일 자 <조선일보> 기사 "백두산 깜짝 일정이라더니… 등산복에 '한라산' 물도 챙겨"
ⓒ 조선일보
 
'생수 논란'도 가십이 어떻게 정책비판으로 이어지는지 보여줬다. 2018년 9월 20일 문재인 대통령,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부부가 백두산에 갔다. 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는 생수병 물을 절반쯤 천지에 뿌렸다. 이어 천지 물을 생수병에 채웠다.

몇몇 매체가 쟁점화했다. 천지 방문 일정을 남북이 미리 합의하고 극적으로 보이려고 깜짝 방문처럼 포장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백두산 깜짝 일정이라더니… 등산복에 '한라산' 물도 챙겨"라고 보도했다. 기사에 익명의 국책 연구소 관계자가 "이미 백두산에 가려고 서울에서부터 한라산 물을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는 내용까지 넣었다.

청와대에 사실 여부만 확인하면 될 일이었다. 일부러 하지 않았다는 의심이 든다. 익명이지만 고위급 탈북자 A씨와 국책 연구소 관계자 코멘트를 따서 기사에 썼다. 당사자인 청와대 반응만 기사에 들어 있지 않다.

별 게 아닌 것 같지만, 작은 부분이 모여 프레임이 된다. '깜짝 방문처럼 포장' 주장이 맞는다면 문재인 정부는 거짓말을 한 셈이다. 정부로서는 치명적이다. 자잘한 오보라도 바로 잡아야 했다.

내가 아는 실상은 이랬다. 천지 방문 일정이 현지에서 잡혔다. 9월 중순이지만 백두산 고지대는 춥다. 공군 1호기에 대통령 부부 외투는 늘 비치한다. 나머지 수행원이 문제였다. 국내 업체로부터 재킷 200벌을 공급받아 북으로 공수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9월 21일 티타임에서 "천지 물 합수(合水) 기사가 있던데, 아주 단순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마시던 물이 제주 삼다수다. 아내가 그걸 보고 '제일 조그마한 병을 가져가서 천지에서 합수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병을 주머니에 넣고 가서 합수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물가 얕은 데서 합수하는데 (김정숙 여사) 발이 젖는 게 아슬아슬해 보여서 '내가 해주마'하고 도와줬다"라며 "(한라산에서 떠간 물이 아니고 제주 삼다수) 생수예요, 생수"라고 말했다.

언론에 이 내용을 알렸다. 여전히 반영이 안 된 기사도 있다.
 
 2018년 9월 20일 문재인 대통령이 백두산 천지를 산책하던 중 천지 물을 물병에 담고 있다.
ⓒ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대통령이 마음을 열어야 통로가 열린다

한국 대통령 가운데 언론 보도에 만족한 이들은 철권으로 통치한 독재자들뿐이다. 탄압으로 기자들의 굴종을 받아냈다. 그런 독재자들은 대부분 말로가 비참했다.

언론 비판은 고위 공직자, 특히 선출직이라면 피할 수 없다. 그래도 정도(程度)의 문제가 남는다. 한쪽만 좋게 써주는 경우다.

비슷한 대접을 받았는데 누구는 홀대받았다고 쓰고, 다른 이에게는 소탈하다고 쓰면 균형을 잃은 보도다. 누구에게는 과실이나 상대적으로 가벼운 범죄를 대역죄처럼 쓰고, 누구는 심각한 범죄인데도 안 쓰거나 작게 다룬다. 누구는 지표가 조금만 나빠져도 망할 듯 쓰고, 누구에게는 나쁜 상황이 지속되는데도 아예 쓰지 않는다. 그게 불공정이다.

사람은 편향되기 마련이다. 누군가 '나는 완벽하게 중립과 객관을 지킨다'라고 말한다? 거짓말쟁이거나 망상 환자다. 김지혜 작가는 자신의 책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이렇게 썼다. "자신이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믿을 때 자기 확신에 힘입어 더 편향되게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불가피하다면 좋은 편향을 지향해야 한다. 누가 진실을 말하나, 누가 다중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가, 누가 소수와 약자 편에 서는가. 언론은 그런 이들을 편들어야 하는 것 아닐까. 사주와 광고주 이익뿐만이 아니라.

대통령이 소통을 강조하니 직원들도 대통령에게 다가가기 어려워하지 않았다. 이런 식이다. 문 대통령은 소셜미디어에 자주 접속했다. 중간 필터 없는 국민과의 접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 개인 명의로 계정을 갖고 있다. 이따금 문제가 발생했다. 기사나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른 게 포착될 때가 있다. 특히 야당 지도부나 여당 내 비당권파를 비판하는 기사에 '좋아요'를 눌렀다. 정무적으로 큰 리스크다.

이런 일은 뉴미디어 비서관실이 빨리 발견했다. 대통령에게 직간접으로 물었다. 문 대통령은 "기사를 읽다가 단추를 잘못 누른 것 같다"라고 답했다. '좋아요'를 취소하고 언론에 해명했다. 상황 파악부터 해명자료 배포까지 두어 시간 내 끝냈다.

관건은 타이밍이다. 대통령에게 물어보기를 두려워해 주저하면 안 된다. '감히, 고작 그런 일로 대통령을 귀찮게 해서는 안 된다'거나 '괜히 물어봤다가 나만 잘리는 것 아니야?' 이런 분위기면 대처가 늦어진다.

대통령에게 확인하고 해명자료를 내는 데 반나절 넘게 걸린다면 문제다. 허위 정보라도 반나절만 방치하면 독자나 시청자들은 '뭔가 있구나'라면서 진실이라고 믿게 된다. 그래서 대통령과 국민 사이를 잇는 소통 통로가 중요하다. 통로를 넓고 평탄하게 만들 유일한 인물은 대통령이다. 그가 눈, 귀, 마음을 열어야 통로가 열린다.

그러면 직원들이 질문과 직언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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