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후테크, 수출로 먹고 살았던 한국에 새로운 기회" [팩플]
“수출로 먹고 살았던 한국, 과연 지금의 산업 구조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산업 정책 세미나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온실가스 배출과 이를 해결할 기후기술을 고민하는 이들 사이에서 등장한 화두다.
임팩트 투자사 소풍벤처스가 주최·주관하고 카카오임팩트가 후원한 ‘2023 클라이밋 테크 스타트업 서밋’이 지난 19~21일 제주에서 열렸다.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로 열린 이번 서밋의 주제는 ‘기후기술과 인공지능(AI)’.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와 서울대학교 기후테크센터도 협력기관으로 참여해 정책 논의와 기술 지원에 힘을 보탰다. 기후기술이란 탄소 배출을 감축하는데 쓰이는 기술과 기후 변화로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기술을 아우르는 말이다.
올해 행사에는 카카오, SK텔레콤, 네이버랩스, 아마존웹서비스(AWS), IBM, GS홀딩스 등 국내 대기업과 글로벌 빅테크를 비롯해 스타트업, 투자자, 정책 전문가 등 120여 명이 참석했다. 사흘간 진행된 서밋에서는 최근 기후기술 생태계 현황과 기후문제 해결을 위한 AI 활용 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한국이 2050년 탄소중립(넷제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경제산업 정책을 점검하고, 기후테크 산업에 대한 벤처투자자들의 전망도 이어졌다.
수출로 버틴 한국, 체질 개선해야
이에 따라 신설된 각국의 산업 정책은 국가 간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프랑스 녹색산업법 등이 대표적. 제품 생산·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 추정치를 기준으로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이 골자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장은 “각국은 탄소중립 로드맵에 따라 산업정책을 새로 짜고 보호무역을 통해 공급망을 재편하고 있다”며 “다자주의 자유무역 시대가 끝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기획재정부 차관을 지낸 김용범 해시드오픈리서치 대표는 “한국은 화석연료 기반 제조업을 통해 수출로 경제 성장을 했지만, 이제는 성장을 꾀할 수록 탄소배출량이 늘어나는 산업 구조를 전반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김 대표는 “기술 혁신을 통해 경제 성장과 저탄소화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며 “기업들이 디지털 기술에 기반해 저탄소 서비스·인프라 산업에 진출할 수 있도록 정부가 각종 지원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기후테크를 통한 거시경제의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탄소 뿜는 AI의 모순
SK텔레콤, 카카오, 네이버랩스는 데이터센터 등 전력 소모량이 많은 건물에 AI 온도 제어 시스템을 도입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디지털 트윈·자율주행차·모빌리티 플랫폼 등 기술 개발을 통해 탄소 배출량 감축에 기여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 중국, 이스라엘과 더불어 자체 개발한 거대언어모델(LLM)을 보유한 AI 강국인 만큼 AI를 활용한 기후테크 산업이 한국에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AI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데이터센터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다량의 탄소를 배출한다. 특히 챗GPT를 비롯한 생성AI 서비스는 기존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기후테크의 해결사로 주목받는 AI가 탄소배출 악당으로 지목받는 모순적 상황이다.
이에 대해 차재원 네이버랩스 리더는 “생성 AI는 피할 수 없는 기술적 트렌드이고 한국이 자체 모델을 확보해야 기술 종속을 피할 수 있다”라며 “(LLM을) 꾸준히 경량화하고 효율성을 높이는 게 한국 기업들의 과제”라고 설명했다. 캐나다 AI 기업인 아르밀라의 음병찬 최고전략책임자(CSO)도 “AI가 소모하는 에너지와 물 소비량을 줄이기 위한 연구가 병행되고 있다”며 “기술을 우리가 해결하려는 문제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AI와 만난 기후테크
실제로 AI는 기후테크 분야에서 요소 기술로 맹활약 중이다. 탄소회계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를 국내 최초로 상용화한 엔츠는 AI를 활용해 기업의 탄소 배출량 측정을 위한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탄소배출량 현황 데이터를 생성한다.
폐기물 수거·재생 스타트업인 수퍼빈은 AI를 비롯해 사물인터넷(IoT), 로봇 등 각종 IT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김정빈 수퍼빈 대표는 “AI 선별 시스템을 통해 페트병, 알루미늄 캔 등의 소재를 인식하고 이물질을 거르는 작업을 한다”며 “수작업을 AI 기술이 대체하며 처리 속도와 정확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태양광·풍력 발전량을 예측해 지도 형태로 제공하는 식스티헤르츠 김종규 대표는 “전력망(그리드)은 공급과 수요의 균형을 맞추는 게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부분인데 AI를 통해 이를 정교하게 예측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더 커질 시장
국내 기후테크 투자사들도 성장 잠재력이 큰 시장이라고 강조했다.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는 “경기침체 속에서도 기후테크 산업에 투자 가능자금(드라이파우더)이 계속 늘고 있다”며 “후기 투자는 경색된 면이 있지만 초기 기후테크 기업에 대한 투자는 여전히 활발한 만큼 투자 여건은 긍정적인 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한 대표는 “기후테크는 국내 시장이 아직은 작고, 기술의 모방 가능성도 크기 때문에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기업이어야 지속 성장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덕준 D3쥬빌리파트너스 대표는 “2005년부터 약 10년 간 불었던 ‘클린테크’ 붐 속에서 창업해 살아남은 곳이 지금의 테슬라”라며 “이젠 기후문제가 더욱 중요해진 만큼 더 큰 기업이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 기후 위기서 인류 구할 AI…‘더러운 비밀’ 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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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김경미 기자 gae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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