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욱 칼럼] 국민의힘 혁신위 성공의 전제 조건
대거 이탈 확인된 보궐선거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리더십
변화 없는 당 쇄신 효과 없어
난제 수락한 인요한 위원장의
복안이 총선 성패 가를 것
국민의힘이 혁신위원회를 띄웠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한 뒤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한다. 17.2% 포인트라는 공교로운 격차에 충격이 컸다. 개표 결과가 나오자마자 강대식 최고위원, 이철규 사무총장, 박대출 정책위의장 등 임명직 당직자들이 일제히 사퇴했다. 의원들은 긴급의총을 연달아 열고 대책을 찾았다. 반신반의했던 수도권 위기론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는 비장함이 묻어났다.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원인 분석이 나왔다. 공천 실패가 가장 먼저 꼽혔고, 수도권 선거의 특성을 전혀 감안하지 않은 잘못된 선거운동도 도마에 올랐다. 대표를 포함한 고위 당직자들이 일제히 뛰어들어 “대통령과 핫라인이 있는 여당 구청장이 정부와 서울시 예산을 팍팍 끌어와 잘살게 해주겠다”고 약속하는 게 21세기를 사는 서울 사람에게 먹힐 리 없었다. 하지만 이런 선거전략 분석은 일회성에 불과하다. 17.2에 담긴 의미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 숫자는 더불어민주당에 180석을 안겨준 21대 총선에서 강서구 지역구 후보들의 득표율 격차 17.9% 포인트와 거의 일치한다. 게다가 보수·진보 정당의 득표율은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긍정·부정 평가인 3.5대 6에 수렴했다.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 당선에 크게 기여했던 20, 30대 남성표가 다시 이탈한 것도 확인됐다. 선거 전날(8~9일) 투표를 하겠다고 밝힌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예측조사에서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20대와 30대 득표차는 각각 15.1, 30.3% 포인트였다. 윤 대통령 당선을 가능케 한 중도적 성향의 스윙보터가 지지 의사를 접었다는 게 숫자로 드러난 것이다. 이건 이야기가 다르다. 이대로라면 내년 4월의 악몽은 현실이 된다.
강서구 보선 결과는 국민의힘이 어렵게 출범시킨 혁신위원회의 할 일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지표다. 원인을 제대로 찾지 않으면 올바른 대책이 나올 수 없다. 기초단체장 한 명을 뽑는 선거였다고 의미를 아무리 줄여 말해도 유권자들이 윤석열정부의 국정 운영을 평가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할 수 없다. 진보 진영의 선택적 정의와 내로남불에 질렸던 중도 성향의 유권자들은 지금 보수 진영의 독선과 독주를 지켜보고 있다. 상식을 되찾겠다는 약속을 믿고 지지표를 던졌는데 갑자기 반공을 앞세운 홍범도 논쟁을 지켜봐야 한다. 계속 따라가다가는 아스팔트 보수와 어깨동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이탈자가 속출할 수밖에 없다. 서울대 법학과 출신이라고 능력 있는 인물을 배제해야 하느냐던 목소리가 이번 추석에는 쑥 들어갔다. 허니문 기간이 없었으니 5년 내내 눈치 보지 않고 허니문처럼 즐기겠다는 뜻이냐는 반박에 할 말이 없어졌다. 대답이 궁색할 때마다 나오는 전 정부와 거대 야당 탓은 진부할 뿐이다.
혁신위라는 당내 기구를 책임진 인요한 위원장에게 용산부터 바꾸라는 과제가 주어진 건 아이러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면 혁신위의 존재 이유가 없다. ‘늘 무조건 옳은’ 국민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인 위원장도 혁신위 제안을 받은 뒤 ‘김기현 대표가 미봉책으로 제시한 근본적 한계를 안고 태어난 혁신위’라는 식의 비판적 기사를 읽었을 것이다. 질 것을 뻔히 알면서 보선에 전력투구한 이유가 따로 있다는 여의도발 풍문도 들었을 것이다. 쇄신을 앞세워 안전한 지역구에 포진한 다선 의원들을 충성도 높은 대통령실 출신 인사로 물갈이하려는 시나리오라는 충고도 적지 않게 받았을 것이다. 민주당의 김은경 혁신위가 몰아치는 비난 속에 활동을 마친 게 불과 두 달 전이다.
그래도 위원장 자리를 수락한 건 이 아이러니성 난관을 돌파할 복안이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윤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진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이 큰 그림을 보여줬는지, 아예 일방통행식 국정 운영을 바꾸겠다는 윤 대통령의 언급이 있었는지는 알 도리가 없다. 그러나 용산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추진되는 당 쇄신은 총선에서 위력을 발휘할 수 없다. 보선 결과가 그것을 숫자로 보여주고 있다. 영남과 보수 지지층에 기대려는 의원들과 당의 체질을 바꿀 수는 있지만 역풍이 몰아칠 가능성이 크다. 집권 여당의 목소리만 커지는 방식의 쇄신은 여권의 내홍과 조기 레임덕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과연 인 위원장이 첫 일성으로 제시한 ‘통합’이라는 말 안에 이 문제의 해법이 담겨 있을까.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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