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누룽지 축제

2023. 10. 25.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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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쌀쌀해지면 어김없이 누룽지를 끓여 먹는다.

밥상 차리기 귀찮거나 식욕이 없을 때도 단출하게 먹기 좋고, 소화기관이 약한 나에겐 담백한 누룽지가 으뜸이다.

누룽지를 직접 만들어도 보고 재래시장에서 대형 솥에 구운 것도 사봤지만 도통 그 맛이 나지 않는다.

할머니의 사랑이 담긴 누룽지 한 그릇이 먹고 싶어 시작한 '누룽지 축제'는 흐른 세월만큼 짙어진 그리움을 달래는 나만의 연례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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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


날씨가 쌀쌀해지면 어김없이 누룽지를 끓여 먹는다. 밥상 차리기 귀찮거나 식욕이 없을 때도 단출하게 먹기 좋고, 소화기관이 약한 나에겐 담백한 누룽지가 으뜸이다. 푹 익어 부드러워진 누룽지를 숟가락으로 뜨고 호호 불며 먹다 보면 어느새 한 그릇을 뚝딱 비운다. 간장에 조린 멸치까지 곁들이면 육첩반상이 부럽지 않다.

퇴근길 마트에 들러 3㎏짜리 누룽지 한 봉지를 샀다. 포장지 전면에는 노릇노릇 구워진 누룽지 사진이 인쇄돼 있었고, 그 위로 큼지막하게 ‘옛날 맛 그대로 가마솥 누룽지’라는 문구가 쓰여 있어 왠지 모를 신뢰감이 들었다. 노곤한 몸을 이끌고 주방으로 가서 물을 부은 냄비에 새로 산 누룽지를 한 움큼 집어넣어 끓였다. 과연 옛날 맛이 날지 의심스러우면서도 구수한 향이 집안에 퍼지니 저절로 기대가 부푼다. 따뜻한 음식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자 피로가 녹는 기분이지만 아쉽게도 내가 먹고 싶었던 누룽지 맛은 아니었다.

내가 찾는 옛날 맛 누룽지의 원형은 할머니가 솥에 눌러 끓여주신 누룽지다. 추운 겨울 이불 밖으로 나오기 싫어 뭉그적거리는 동안 할머니는 철부지 손녀딸의 아침밥으로 누룽지를 끓여 내어주셨다. 둥근 밥상 위에 올라온 누룽지 냄새와 따뜻한 방안의 온기가 지금도 느껴진다. 누룽지를 직접 만들어도 보고 재래시장에서 대형 솥에 구운 것도 사봤지만 도통 그 맛이 나지 않는다. 이 세상 어디에서도 할머니의 손맛을 재현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시판 누룽지를 차례차례 사 먹어보는 ‘누룽지 축제’는 올해도 막을 올렸다.

추억 속 음식은 놀랍게도 그 맛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음식을 먹을 때 그 음식이 담고 있는 감정과 추억을 함께 음미한다. 흔하디 흔한 누룽지도 마찬가지다. 내가 찾는 맛도 결국 추억 아니겠는가. 할머니의 사랑이 담긴 누룽지 한 그릇이 먹고 싶어 시작한 ‘누룽지 축제’는 흐른 세월만큼 짙어진 그리움을 달래는 나만의 연례행사다.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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