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퇴근길 마음의 업데이트
이야기 나누는 환대의 마음을 갖고 싶다
“아가씨 이 역 첫차가 몇 시예요?” 목요일의 퇴근길 지하철역, 날 집으로 데려다줄 열차를 기다리는데 앞자리에 서 있는 사람에게 누군가가 불쑥 질문을 한다. 나는 휴대폰을 보다가 고개를 들어 흘끔 앞을 본다. 퇴근길에 첫차를 묻는 것이 익숙한 질문은 아니기 때문이다. 질문을 하는 사람은 흰머리가 자연스럽게 구불거렸고, 질문을 받는 이는 나처럼 귀에 에어팟을 꽂고 있었다. 질문을 받은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귀에서 무선 이어폰을 빼서 귀여운 강아지 키링이 달린 케이스에 집어넣고는 “제가 찾아볼게요”라고 답했다. 잠시의 지체도 없이 그녀는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으로 이 역의 정확한 첫차 시간을 찾아줬다.
내가 당황한 것은 대답하는 사람의 태도였다. 마치 친구가 그 옷을 어디서 샀냐는 질문에 답하듯 경쾌하고 가볍게 낯선 이를 위해 휴대폰 화면에 새로운 앱을 켜고 찾아줬다. 과하게 친절하지도, 무뚝뚝하지도 않은 산뜻함이었다. ‘찾아볼게요’라는 답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나는 과연 어떻게 답했을까의 시나리오가 여러 버전으로 스쳤다. ‘다섯시쯤일걸요?’라고 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잘 모르겠네요.’ 어쩌면 피곤함에 이렇게 대답했을 수도 있다. 아무리 시나리오를 돌려도 나는 그렇게 흔쾌히 에어팟을 케이스에 집어넣으며 대답하지 못했을 것이다. 스스로 친절한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살았는데, 목요일 퇴근길이라는 핑계를 빌려 고백하면 나에겐 그 정도의 상냥함이 남아 있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서 반성과 당황이 사정없이 흔들리는 동안 대답은 완성됐다. 금방이었다. “다섯시 사십분이네요. 이 방향 맞으시죠?” 그녀는 질문한 이에게 화면을 보여준다. 돌아온 대답은 내 당황을 죄책감으로 전환시켰다. “이렇게 금방 나오는 걸 난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었네 정말….” 네이버 앱을 켜고 해당 역 이름과 첫차 시간을 검색하면 바로 얻을 수 있는 정보였다. 접근까지 몇 단계가 필요한 일도 아니고 해석이나 분석도 필요 없었다. 하지만 하얀 머리칼의 그녀는 손에 휴대폰을 쥐고도 지금 발 딛고 있는 지하철역의 첫차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그녀는 몇 개의 질문을 더 이어갔다. 어느 역까지 가는지, 다른 노선의 첫차는 몇 시인지 같은 질문이었다. 방금의 죄책감이 무색하게 나는 어느새 대답하는 사람이 귀찮아하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녀는 한결같은 톤과 질문에 적절한 검색으로 최적의 정보를 쾌속으로 전달했다. 지하철이 도착했다. 긴 시간처럼 느껴졌는데 고작 5분이 흘렀을 뿐이다. 그 5분 동안 내가 한 일이라곤 이어폰으로 귀를 막은 채 내 앞에서 일어나는 일을 주워듣는 것뿐이었다.
지금 당장 내가 첫차 시간을 찾을 수 없는 대도시의 지하철 노선이 있을까? 빅데이터는 더 많은 수익과 더 나은 세상을 목표로 빠름과 많음의 혁신을 이루며 예측의 정밀도를 높이고자 한다. 누군가를 이롭게 하기 위한 기술인데, 기술의 속도에 매몰되는 날이 많았다. 기술의 혁신을 따라가지 못할까봐, 다들 아는 정보를 나만 놓칠까봐 걱정하며 살고 있다. 정보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진실을 망각하고 정보 그 자체만 좇고 있었다. 더 많은 정보를 누구와 어떻게 나눌 것인가? 그 접점과 방식을 충분히 고민했는가?라고 자문하면 난 다시 스스로를 친절하다고 착각했던 순간처럼 부끄러워진다. 마음의 혁신은 충분히 이야기되지 않는다. 내 마음과 태도가 제대로 업데이트됐는지는 스스로 점검하는 수밖에 없다.
퇴근길 지하철역에는 모두가 선 없는 이어폰의 섬 속에서 저마다의 정보를 찾고 있다. 섬과 섬을 잇는 이야기는 섬 밖의 누군가와 정보를 나누며 연결될 때 만들어진다. ‘제가 찾아볼게요’, 그녀의 대답이 남긴 울림은 그 어떤 정보보다 내 안에 오래도록 남았다. 그건 정보가 아니라 아주 단순한, 그러나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심을 품고 있어 그럴 것이다. 내 옆의 이들에게 귀 기울이고 눈을 맞추며 기꺼이 연결되고 이야기 나누는 환대의 마음. 그 최신의 마음으로 나를 업데이트하고 싶다.
정유라 신한카드 빅데이터 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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