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정전 70주년에 외교를 생각한다

2023. 10. 25.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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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

올해는 동맹 70주년이자 정전 70주년이다. 동맹으로 안보를 지켜 정치·경제 발전을 이뤘으나, 전쟁 상태를 평화 상태로 바꾸지는 못한 70년이라는 뜻이다. 이 두 의미를 함께 되새겨야 할 터인데, 세간에 동맹 70년에 대한 상찬은 많으나 정전 70년에 대한 성찰은 적다.

정전 70년의 궤적은 대결로 점철되어 있고, 그 끝에는 최고조의 북핵 위협과 단절된 남북 및 미북 관계가 있다. 미·중, 미·러, 한·중, 한·러 관계가 최저점이므로 평화상태를 모색할 주변 여건도 나쁘다. 남북은 극한대립 속에 엽서 한장 교환하지 못하는 상황을 70년 넘게 이어가야 한다. 세계 10위권의 국가인 한국의 외교가 이를 방치할 수는 없다.

「 우리 북방외교 위기감에 북 핵개발
동맹강화 옳지만 여파는 대비해야
북중러와 협상·외교 공간 남겨둬야
비핵화 평화 정착의 길 막히지 않아

돌아보면 그동안 기회가 있었다. 첫 번째는 탈냉전 초기 북방외교 때였다. 잘했으면 평화 정착의 길이 열렸을 수 있다. 그러나 북방외교 성과는 한·소, 한·중 수교에 그쳤다. 미·북, 일·북 관계 개선은 없었다. 당시 미국에는 냉전을 이겼다는 승리주의가 강했고, 한국에는 남북 경쟁에서 이겼다는 승리주의가 강했다. 워싱턴과 서울에는 북한이 느낄 위기의식에 대한 원모심려가 적었다. 위기감에 사로잡힌 북한은 생존을 명목으로 핵 카드를 집어 들었다. 세계는 화해 협력으로 향했으나 한반도에는 대립이 남았고 핵 문제까지 새로 생겼다. 기회비용치고는 엄청났다.

둘째 기회는 2018~19년의 남·북·미 정상회담이었다. 미·북 정상이 최초로 회동했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다. 잘 되었더라면 비핵화와 평화정착에 진전이 있었을 수 있다. 그러나 회담은 하노이를 계기로 좌초했다. 북한은 한미와 대화를 끊고 핵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결과적으로 지금의 정전 상황은 어느 때 못지않게 위태롭다.

눈을 돌려 동맹 70년의 궤적을 보면, 6·25의 산물인 동맹은 냉전기에 북·중·러의 위협으로부터 한국을 지키는 데 기여했다. 이후 탈냉전기에 한국에 대한 중·러의 위협은 감소했으나 북한의 위협은 증대되었다. 동맹은 이에 대처해야 했다.

이후 미·중 경쟁과 미·러 대립으로 신냉전이 도래했다. 미국은 동맹인 한국의 역할을 요청했다. 이 시기에 집권한 윤석열 정부는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한국이 미·중, 미·러 사이에서 명료하게 동맹 편에 서기 시작한 셈인데, 최고조의 북핵 위협과 진영 대립의 흐름을 고려할 때 필요한 정책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은 불가피하게 북·중·러의 반발이라는 기회비용을 유발했다. 정전 상황 타개 전망은 더 나빠졌다. 미국과의 대결심리에 경도된 중·러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더 감싸고 들었다. 비핵화의 전망도 더 어두워졌다.

우리가 북방외교 때의 기회비용으로부터 교훈을 찾는다면, 신냉전 시기의 한국외교는 동맹을 강화하면서도 비핵화 평화정착 통일을 지향할 수 있도록 북·중·러를 향한 원모심려를 잊지 않아야 한다.

이 맥락에서 첫째로 드는 생각은 대북 억제력을 강화하더라도, 남북이 대증적 행동의 악순환은 피하고 협상의 여지는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억제와 제재로 비핵과 평화를 달성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장래의 협상을 염두에 두고 외교가 작동할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과거 패턴을 볼 때 북한은 도발 후 어느 시점에서 대화로 전환한다. 아마 미국 대선 이후일 것이다. 그때 북한은 미국과 대화하면서 한국은 배척할 것이다. 한국이 우리 문제 논의에서 배제되는 일은 없도록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다.

둘째로 할 일은 중·러와 과도한 대립관계에 들지 않도록 외교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중·러를 도외시하고는 비핵 평화 통일을 도모하기 어렵다. 한국이 중·러를 상대로 생산적인 협의를 하려면, 미·중·러에 대해 통합되고 조율된 전략부터 정립할 필요가 있다. 그 전략에는 동맹과의 공조를 근간으로 하면서, 공조수위는 어느 선인지, 중·러와의 외교 공간은 어느 만큼인지에 관한 한국형 좌표가 있어야 한다.

그런 전략을 가지고 미국과 공조의 정도를 조율하고, 중·러와 외교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특히 비확산과 평화 안정을 저해하는 북핵 문제를 미·중, 미·러 대립에서 떼어내 미·중·러가 협력할 공동의 이해 사안이 되도록 만드는 데 한국이 나서야 한다.

셋째로는 한미 동맹의 지역적 역할로 인하여 생길 안보 리스크에 대비해야 한다. 캠프 데이비드 공약에 따라 한국은 중국과 관련되는 분쟁에 대해 미·일과 협의하여 대응하게 된다. 북핵 위협하에 있는 한국이 또 다른 분쟁에 연루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 사실이다.

한국외교는 동맹과 정전 70주년에 기로에 섰다. 동맹 강화는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북·중·러 발 기회비용을 관리하는 보완책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한국의 주요 외교 어젠다인 비핵화 평화정착 통일추구의 길이 가로막히지 않는다. 자칫하면 과거처럼 의도치 않게 큰 기회비용을 치를 수 있다.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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