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균 내사" 최전방만 화려…'마약과 전쟁' 이러다 질 수 있다 [최현철의 시시각각]

최현철 2023. 10. 25.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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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철 사회 디렉터

지난해 10월 21일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마약과의 전쟁에서 꼭 승리해 달라”고 주문했다. 사실상 첫 선전포고였다. 며칠 뒤 마약류 대책회의가 차관급으로 격상되며 컨트롤타워가 됐다. 올 4월 검경이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하며 2차 선전포고도 했다.


마약과의 전쟁 1년, 이선균 내사 공개


전쟁 선포 1주년을 딱 하루 앞둔 지난 20일 배우 이선균이 마약 혐의로 내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연예인과 마약이 얽힌 사건은 언제나 폭발력이 강하다. 같은 날 김승희 대통령실 의전비서관 자녀의 학교폭력 사건도 공개됐다. 하지만 국민은 얼굴도 모르는 의전비서관 가족사보다는 평범·선량·친근의 이미지를 구축해온 이선균의 배신에 더 충격을 받았다. ‘김승희 자녀 학폭’은 관심에서 빠르게 멀어졌다.
지난 20일 배우 이선균이 마약 투약 혐의로 내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경찰은 20일 이선균을 피의자로 전환하고 조만간 소환조사할 예정이다. 사진은 18일 오후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린 영화 '잠' 언론배급시사회에 참석한 모습. 사진 뉴스1
마약과의 전쟁의 선봉은 검찰과 경찰, 세관이다. 철저한 수사로 공급을 차단하고 유통 조직을 뿌리 뽑겠다는 전략이다. 덕분에 올 8월까지 검거된 마약사범은 1만27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0명 이상 많다. 또 역대 최대치다. 이선균·유아인·남태현(아이돌 그룹 위너 출신) 같은 유명인도 걸려들었다. 수십 ㎏의 마약을 압수하고, 해외로 도주한 조직을 검거했다는 소식도 줄지어 나왔다.

「 마약과 전쟁 1년, 역대 최대 검거
치료병원 폐업 위기, 예산은 삭감
중독자 방치한 채 전쟁 승산 있나

그런데 이쯤에서 드는 의문. 우리는 정말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자신 있는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미 대한민국은 국제 마약조직이 노리는 좋은 소비처로 떠올랐고, 인편과 배편·국제우편까지 다양한 루트로 세관의 수비망을 뚫고 있다. 최전선에서 화끈한 검거쇼를 펼쳐도 게릴라식으로 침투하는 적을 다 막을 수는 없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마약 74㎏을 국내로 밀반입한 마약 유통 일당 26명을 검거하고 이 중 14명을 구속했다고 10일 밝혔다. 수사 과정에서 압수된 필로폰과 나무도마 등 증거물. 사진 영등포경찰서

화려한 검거쇼…치료·재활 등 후방은 방치


그래서 엄단 분위기 조성만큼 수요 관리 또한 중요하다. 그 첫 번째 단계가 중독자 치료와 재활이다. 남경필 전 경기지사는 올 초 스스로 아들을 마약 투약 혐의로 고발했다. 그는 얼마 전 중앙일보플러스의 ‘보이스’ 코너에 출연해 그때 심정을 눈물겹게 토로했다. 아무리 어르고 호통치고, 심지어 수사기관에 적발돼 처벌을 받아도 아들은 마약을 끊지 못했다. “마지막 방법으로 아들과 합의해 선택한 길”이 아빠의 신고였다. “치료나 도움 없이 혼자 의지로 마약을 끊는 것은 사실상 전무하다”(양성관, 『마약 하는 마음, 마약 파는 사회』)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에 대한 대책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지난 9월 중앙일보는 국내 마약 중독자 치료를 전담하다시피 하는 인천 참사랑병원이 경영난에 폐업을 고려 중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전국 마약 치료 지정병원 24곳 중 16곳은 환자를 받지 않고 있고, 최근 3년간 치료 실적이 없는 병원도 12곳에 달하는 실상도 드러났다.
인천 서구의 참사랑병원 전경. 국내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를 거의 전담하다시피 하는 참사람 병원의 천영훈 원장은 지난 9월1일 중앙일보에 정부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해 경영난을 겪고 있다며 올해중 폐업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참사랑병원이 문 닫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지원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내년 예산에도 마약중독자 치료, 재활예산 증액 요청은 대부분 삭감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참사랑병원
복지부는 부랴부랴 “마약 치료 병원이 문 닫는 일은 절대 없게 하겠다”며 ‘확실한 대응책 마련’을 강조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복지부가 요청한 내년 중독자 치료 관련 예산의 85%가 삭감돼 올해와 같은 4억1600만원만 편성된 사실이 드러났다. 애초에 불가능한 약속이었다.

중독자 방치해서는 마약과의 전쟁 승산 없어


그러니 국내 5곳밖에 없는 민간 치료공동체(다르크)에 대한 지원은 언감생심이다. 재판을 받고 있는 남태현은 국정감사 증인으로 나와 “솔직히 국가 도움을 거의 받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인천 다르크에서 재활치료 중이다. 최근 남양주 다르크는 지역 민원에 밀려 9월 초 문을 닫았다. 머물던 환자 상당수가 돌아갔는데, 벌써 두 명이 다시 마약에 손댔다고 자수했다.
법원은 지난해 2075명의 단순 투약사범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 중 치료 명령을 함께 부과한 건수는 15건에 그쳤다. 보낼 곳이 없기 때문이다. 운 좋게 실형을 면한 마약 중독자는 자유롭게 약을 다시 찾을 수 있는 환경에 방치된다. 마약사범 재범률은 37%에 이른다.
전쟁 최전선에서 직접 마약 조직과 싸우는 검경의 분투를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애써 잡은 포로가 아무런 제재 없이 후방에서 이적행위를 하고 다녀서는 전쟁에 승산이 없다.

최현철 사회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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