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의대 정원 확대, 숫자보다 중요한 것

2023. 10. 25.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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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준 서울대 의대 교수·서울대병원 공공부원장

의과대학 정원 증원 문제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한쪽에서는 의사의 절대 숫자가 많이 부족하다고 주장하고, 다른 쪽에서는 전공별·지역별 분포가 문제일 뿐 의사 수는 전혀 모자라지 않다고 맞선다. 지금의 의대 정원 3058명을 유지할 경우 2030년이면 2만5746명이 부족하다는 분석과 2047년에는 1000명당 의사 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추월한다는 계산이 혼재한다.

그렇지만 큰 병원조차 영상의학과 의사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고, 어느 지방의료원은 신장내과 의사를 구하지 못해 투석실을 폐쇄했다. 당장 의사 구하기 어려운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최근 정부가 의대 정원을 증원할 의지를 밝히자 얼마나 늘려야 하느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최소 1000명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2000년 의약분업 때 줄인 정원(351명)만 복원해도 충분하다는 의견도 있다. 그렇지만 숫자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있다.

「 구멍 난 필수·지역의료 챙겨야
지역인재전형 정원부터 증원
의료발전 감안, 5년마다 조정

시론

의대 정원을 늘리는 목적은 모든 국민이 체감하는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위기 극복이다. 의사만 늘리면 쉽게 모든 것이 해결될까. 그렇지 않다. 정교한 정책이 동반돼야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지역별 의료 인력 불균형 문제부터 검토하자. 2022년 통계에 따르면 서울은 인구 1000명당 의료기관 종사 의사 수가 4.8명인데, 세종시는 2.0명으로 서울의 절반을 밑돈다. 지방 소재 의대 졸업생들도 정주 여건이 좋은 수도권 근무를 선호한다.

2022년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지방에서 성장해 지역 의대를 졸업한 의사들의 지방 근무 비율이 수도권 출신보다 더 높았다. 그러니 지역 의료는 물론 교육과 연구의 중심이 돼야 할 지방 국립의대와 여건이 잘 갖춰진 비수도권 사립 의대를 골라 현재 40% 정도인 지역인재전형에 정원을 추가 배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와 함께 지역인재전형 졸업생의 경우 일정 기간 해당 지역에서 의무적으로 일하게 하는 규정 도입도 꼭 필요하다. 사실 가장 시급한 것은 수년 내에 건립될 수도권 11개 병원(6000병상)의 의료인력 수급 대책이다. 2500명 정도의 의사가 필요하다는 예측이 있는데, 지금도 부족한 지역의료 인력을 흡수한다면 정말 큰 문제다.

‘소아청소년과 오픈런’과 ‘응급실 뺑뺑이’로 대표되는 필수의료 인력 부족 문제의 해결은 더 어렵고, 의대 정원 증원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결코 아니다. 높은 업무 강도, 진료 결과에 대한 과도한 민·형사 책임, 비급여 분야 의사와의 임금 격차 등 복합적 원인의 결과다.

의사 수를 대폭 늘리면 낙수효과로 자연히 필수의료 인력이 충분해질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한국 의료 제도의 특성을 고려하면 그럴 가능성은 작다. 설령 낙수효과가 있다 하더라도 피부·미용 분야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경쟁이 심해 억지로 메스를 잡은 의사에게 우리 아이의 심장 수술을 맡길 수 있을까. 마지못해 응급실을 지키는 의사에게 우리 가족의 위급한 안위를 의지할 수 있을까. 결국 필수의료 인력에 대한 존경과 보상, 삶의 질 개선, 법적 보호 등이 마련돼야 유능한 인재들로 충원할 수 있다.

의대 정원 증원의 규모와 방법에 대한 검토는 이미 소비자 단체를 포함한 다양한 직역 대표들이 참여하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가 ‘의사인력 전문위원회’를 꾸려 진행 중이다. 보건복지부와 의사협회가 함께 논의하는 ‘의료현안 협의체’도 있다. 2025년 입학 정원 확정까지는 아직 몇 달 시간이 있으니 매일 같이 만나 합리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인공지능·원격의료 등의 기술 발전에 따른 의료 현장의 혁신 가능성을 고려해 5년마다 정원을 재조정하는 방안도 포함하자.

그러나 아무리 정책을 보완해도 외과 의사의 삶이 편하기는 어렵고 소아청소년과 의사의 수입이 비급여분야 의사보다 나아질 수는 없을 것이다. 서울보다 지방에서 일하는 것이 편리하고 윤택할 리도 없다. 정부는 필수·지역의료를 지원하는 과감한 제도를 마련하고, 의사들은 그 바탕 위에서 헌신·봉사하는 것이 유일한 정답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임재준 서울대 의대 교수·서울대병원 공공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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