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프리즘] 베일에 싸인 투·개표 시스템
국가정보원(국정원)이 최근 발표한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 보안점검 결과는 충격적이다. 국정원에 따르면 통상적인 수법으로 선관위 내부망 해킹이 가능하고, 사전투표와 개표 결과를 포함한 선거 관련 시스템을 조작할 수 있다고 한다. 또 유권자 등록현황·투표 여부 등을 관리하는 ‘통합선거인명부시스템’도 해킹할 수 있고, ‘사전 투표한 인원을 투표하지 않은 사람’으로, ‘사전 투표하지 않은 인원을 투표한 사람’으로 표시할 수 있다고 전했다. 존재하지 않은 유령 유권자도 정상적인 유권자로 등록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국정원은 설명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은 2020년 4·15총선 이후 시민단체나 전산·통계전문가 등이 주장해온 것과 맥을 같이한다. 또 중앙일보가 지적해온 문제와 유사한 것도 있다. 실제로 2020년 4월 15일 충남 부여군 개표소에서는 투표지 분류기(전자개표기)를 한번 돌린 다음 동일한 투표지를 다시 분류했더니 1번과 2번 후보 득표 결과가 뒤바뀌기도 했다. 전자개표기를 통과하면 2번 찍은 투표지가 1번으로 분류되거나 재확인용(미분류표)으로 분류되는 게 많았다는 증언도 있었다.
당시 개표 상황을 담은 폐쇄회로TV(CCTV)에는 전자개표기를 다시 돌리기 전에 작성한 개표 상황표를 찢는 장면도 나온다. 또 당시 서울 성북구 개표소에서는 전자개표기가 1810표를 1680표로 인식하기도 했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 선관위에서는 비례대표 관내 사전투표 선거인 수가 4674명인데 실제 투표자는 4684명으로 10표가 더 많이 나왔다. 이번에 국정원은 전자개표기를 시연하면서 “예컨대 계룡산 후보에 투표한 것으로 분류된 게 한라산 후보에 투표한 것으로 변경 가능했다”고 했다. 총선이 끝난 지 3년 6개월 만에 국가 기관이 그간 제기된 의혹을 어느 정도 확인해 준 셈이다.
이번 보안점검 결과 발표는 또 다른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단순한 줄로만 알았던 투·개표 과정이 무척 복잡하다는 것을 알게 해줬기 때문이다. 사실 선관위 투·개표 시스템을 제대로 아는 국민은 거의 없다. “기계로 개표하니까 오류가 없을 것”이라며 막연하게 생각했다. 선관위도 “돈 세는 장비처럼 단순히 표를 세는 기계”라며 전자개표기 실체를 정확히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운영 매뉴얼 등에 따르면 노트북 컴퓨터와 한 몸으로 설계된 전자개표기는 분당 340장의 빠른 속도로 투표지를 처리한다. 통신 기능도 갖추고 있다. 투표지 분류 결과는 설치된 프로그램에 따라 저장할 수 있다. 또 사전투표에서는 몇몇 장비가 별도로 동원된다.
이번 국정원 발표로 투·개표 과정에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이 확인된 이상 2020년 총선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규명해야 한다. 그래야 민주주의 뿌리인 선거가 바로 설 수 있다.
김방현 내셔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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