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운동화·구두’ 북 주민 4명, 목선 타고 귀순
북한 주민 4명이 24일 소형 목선을 타고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와 귀순 의사를 밝혀 정부가 조사에 착수했다. 어민 신고 후 군 당국이 이들에게 접근한 점이 2019년 북한 목선의 삼척항 입항 사건을 연상케 하면서 군 경계태세가 도마 위에 올랐다. 군은 이번엔 목선을 사전에 포착해 정상적인 작전에 따라 신병을 확보했다는 입장이다.
군과 해경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10분쯤 강원도 속초 동쪽 약 11㎞ 해상에서 조업 중이던 한국 어선이 7.5m 길이의 북한 목선을 발견했다. ‘이상한 배가 있다’는 어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해경 순찰정과 해군 고속정은 오전 8시쯤 현장에 도착해 여성 3명과 남성 1명이 승선한 것을 확인했다. 해경은 이들의 신병을 확보해 정부 합동정보조사팀에 넘겼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에서 온 4명이 귀순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목선을 발견해 신고한 어민 임재길씨는 북한 남성이 “여기가 어디냐”고 물어 “강원도 속초다”고 대답했다고 중앙일보에 밝혔다. 목선에 가까이 가자 160㎝ 남짓한 키에 20~30대로 보이는 남성과 20~30대와 40~50대로 보이는 여성 2명의 모습이 보였다고 한다. 남성은 장화를, 젊은 여성은 깨끗한 하얀 운동화를, 중년 여성은 검은 구두를 신고 있었다.
북한 목선, 어민 신고 뒤에야 포획…군 NLL 경계 또 뚫렸나
북한 남성이 목선을 임씨 배 쪽으로 붙인 뒤 줄을 던져 매달고 엔진을 끄더니 임씨 배 위로 건너왔다고 한다. 임씨는 “‘(북에서) 언제쯤 출발했어요’라고 물으니, 오늘 출발했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임씨는 곧 해경이 올 거라고 이야기하며 안심시켰고, 함께 온 한 여성이 임씨 배를 한참 보더니 “한국 배는 참 좋네”라고 말했다고 한다.
임씨는 “함께 있는 사람에 관해 물어보니 가족이라 했다”며 “여성 한 명이 선실을 계속 왔다갔다 것을 보니 아이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이 일가족인지 등에 대해 통일부는 “확인해 주기 어렵다”고 밝혔다. 해상을 통한 귀순은 지난 5월 이후 약 5개월 만이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군은 이날 오전 4시 이전부터 동해 NLL 이북 해상에서 특이 징후가 있어 해군 초계기와 함정을 투입해 작전을 실시했다. 오전 5시30분쯤 육군 레이더를 통해 뭍에서 10해리(약 18㎞) 떨어진 지점에 선박으로 의심되는 ‘점’이 최초 포착됐다. NLL에서 남쪽으로 약 40~50㎞ 떨어진 지점이었다. 군은 남서쪽으로 이동하는 해당 물체를 열상감시장치(TOD)로 집중 감시에 들어가 오전 6시59분쯤 선박 형태를 띠고 있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군 관계자는 “북한군 움직임이 탈북 목선을 추적하는 것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초 포착 후 목선에 접촉하기까지 약 2시간30분이나 소요돼 일각에선 경계태세에 빈틈이 생긴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해군 출신인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귀순 어선이 아니라 침투였다면 지금쯤 이미 동해 주요 시설 한 군데는 뚫렸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의 해군본부 국정감사에서도 질타가 쏟아졌다.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해군에서 NLL 넘어 40~50㎞까지 오기 전에 포착하고 작전해야 했는데 주민 신고 후 작전 시작은 경계작전의 실패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군 당국은 해당 목선이 정확히 언제, 어느 경로로 NLL을 넘었는지도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군 당국은 해명에 나섰다. 합참 관계자는 “레이더에 포착되는 수많은 점 중 미세한 표적 하나하나에 출동하는 건 힘들다”며 “그렇기 때문에 계속 추적한 뒤 특이점을 발견해 출동한 것”이라고 말했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레이더에서 이상 물체를 성공적으로 탐지해냈고 탐색까지 작전을 펼쳤다는 것이다.
또 다른 군 관계자는 “이번처럼 먼바다에서 목선이 돌아서 들어오면 레이더에서 식별해 내는 것 자체가 굉장히 까다롭다”며 “400㎞가 넘는 점도, 동해 NLL 길이도 경계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한정된 군경 자원으로 방대한 지역을 경계해야 하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북한 역시 이런 허점을 노린 침투에 언제든 나설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9년 6월 북한 주민이 목선을 타고 삼척항에 스스로 입항한 사건도 재소환됐다. 결과적으로 이번에도 민간 어선 신고 이후 목선 접촉이 이뤄지는 등 본격적인 작전 조치가 취해졌기 때문이다.
군 관계자는 “해당 선박이 매우 작은 데다 위협의 정도가 떨어진다고 판단해 연안으로 접근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고속정을 출동시키기로 계획해 놓은 상태였다”며 “어민 신고로 작전을 시작한 건 아니다”고 말했다. 오전 7시3분 추가적인 현장 근접 확인을 위해 이 선박에 자체 표적 번호를 부여했고, 함정 긴급출항 등으로 현장을 확인하던 중 어민 신고 내용을 듣게 됐다는 게 합참의 설명이다.
이번에 넘어온 목선은 7.5m 길이로 2019년 삼척항에 입항한 10m 길이 목선보다 작다고 한다. 정부 합동정보조사팀은 북한 주민들의 신원과 귀순 의사의 진정성을 놓고 신문을 진행하고 있다.
이근평 기자, 속초=박진호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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