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질 성범죄자, 거주지 제한한다
아동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질렀거나 재범 가능성이 큰 고위험 성범죄자의 주거지를 제한하는 ‘한국형 제시카법’이 도입된다. 2020년 조두순, 지난해 박병화 등 악질 성범죄자가 출소할 때마다 해당 지역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지역 간 떠밀기가 벌어지는 사태를 정부가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취지에서다.
법무부는 24일 ‘고위험 성범죄자 거주지 제한법’ 제정안을 26일 입법 예고한다고 밝혔다. 이 법은 미국에서 시행 중인 이른바 ‘제시카법’을 본떠 만들었다. 제시카법에 따라 미국의 아동 대상 성범죄자는 출소 후에도 학교 등 주요 시설로부터 300~600m 이내 거주가 제한된다.
한국형 제시카법은 미국보다 성범죄자의 자유 제한 정도가 더 강하다. 미국은 특정 시설로부터 일정 거리 내 거주를 금지하는 데 반해 법무부가 마련한 법안은 ‘특정 시설 의무 거주’ 방식이다. 고위험 성범죄자를 사회로부터 집단 격리해 상시 감시체계를 갖추겠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거리 기준의 주거 제한은 성범죄자들이 노숙자로 전락해 오히려 재범 위험이 커지며 ▶서울과 도심 대신에 지역과 농촌으로 성범죄자를 유도하는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미국식과 우리식) 두 가지 방식이 각각 장단점이 있다”며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고위험 성범죄자에 대한 국가 관리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거주지 제한 명령이 가능한 대상은 13세 미만 아동 대상 또는 3회 이상 성폭력으로 징역 10년형 이상의 선고를 받은 전자발찌 부착 상태의 성범죄자다. 검사가 범죄 심각성, 재범 위험, 기존 주거지의 주변 환경 등을 고려해 청구하면 법원이 결정하고, 성범죄자가 거주하는 광역자치단체 내 국가·지자체·공공기관 운영 시설 중 의무 거주지를 지정한다. 거주 제한 요건이 충족되는 성범죄자는 지난해 말 기준 325명이다. 올해 69명, 2024년과 2025년에 각각 59명씩 만기 출소할 예정인 점을 고려하면 향후 2년간 500명이 넘는 성범죄자가 거주 제한 검토 대상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법무부는 법안이 국회를 최종 통과하면 이미 출소한 조두순·박병화 등에도 소급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법무부는 거주시설 후보지에 대해선 사회적 파급력과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발을 우려해 충분한 협의를 거친 뒤 발표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법무부는 고위험 성범죄자의 약물치료를 강화하는 내용의 ‘성 충동 약물치료법 개정안’도 입법 예고할 방침이다.
환영 여론과 별개로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형벌이 종료된 후 다시 거주지를 제한하는 것은 이중처벌로 볼 수 있다”며 “치안 당국이 해야 할 역할과 책임을 조두순에게 떠미는 셈이다. 상당히 위험한 정책으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새로운 형태의 감옥이 될 수 있다”고 했다. 2005년 이중처벌 논란으로 폐지된 ‘보호감호’ 제도와 유사하다는 평가도 있다. 강성민 변호사는 “거주 이전의 자유를 넘어 신체 거동의 자유까지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철웅 기자 kim.chulwo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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