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노총 이어 민노총도 ‘깜깜이 노조회계’ 공시 수용
한국노총에 이어 민주노총도 정부가 요구한 노동조합 회계공시를 수용하기로 했다. ‘깜깜이 회계’를 고수하던 양대 노총이 끝내 한발 물러서면서 윤석열 정부 노동개혁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노총은 24일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노조를 믿고 민주노총의 방침과 결정에 따라 투쟁해온 조합원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기 위해 회계공시를 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공시는 정부가 마련한 노동조합 회계공시시스템에 자산·부채·수입·지출 현황 등을 입력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누구나 홈페이지를 통해 공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앞서 정부는 ‘노조회계 투명화 조치’의 일환으로 노조법 및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회계를 공시하지 않는 조합원 수 1000인 이상 노조엔 연말정산에서 세액공제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소득세법 시행령에 따르면 노조원이 내는 조합비는 15%를 세액공제로 돌려받을 수 있는데, 여기에 투명한 회계를 최소 요건으로 추가한 것이다.
특히 정부는 상급 단체가 회계를 공시하지 않으면 산하 조직도 일괄적으로 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규정했다. 개별 노조가 회계를 공시하더라도,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 등 상급단체가 공시하지 않으면 덩달아 혜택을 받지 못한다. 회계공시 요구를 ‘노동탄압’이라 규정하고 강하게 거부해온 양대 노총을 압박하기 위한 조치라는 평가다.
결국 한국노총은 전날인 23일 ‘현행 법을 준수하고 조합원들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회계 결산 결과를 회계공시시스템에 등록하겠다고 발표했고, 민주노총 역시 이날 같은 이유를 앞세우며 회계공시를 결정했다. 양대 노총 모두 사실상 정부의 강경책에 한발 물러선 것이다.
다만 양대 노총은 정부 방침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라고 재차 강조했다. 민주노총은 “상급 단체가 있는 노조에 삼중, 사중으로 회계공시 의무를 부과해 노조의 단결을 억제했다”고 비판했고, 한국노총은 헌법소원 심판청구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반면에 양대 노총으로부터 ‘판정승’을 얻어낸 고용노동부는 고무적인 분위기다. 당초 고용부가 지난달 실시한 회계공시 오프라인 교육에 전체 의무공시 대상(673곳)의 12.5%인 84곳만 참여하는 등 공시율이 낮을 것이란 우려가 많았다. 실제 이날까지 회계를 공시한 노조는 36곳에 불과했다. 하지만 양대 노총 모두 공시를 결정하면서 산하 노조들 역시 대부분 동참할 것으로 기대된다.
올 초 벌어진 근로시간제 개편 논란 이후 주춤했던 노동개혁에도 한층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조만간 근로시간제 개편안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그에 맞는 개선책을 내놓을 방침이다. 이중 구조 개선을 위한 상생임금위원회 권고문도 조만간 발표된다. 모두 노동계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되는 사안이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이날 “노사법치를 기반으로 노사관계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노동개혁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며 “양대 노총의 참여를 통해 노동조합의 투명한 회계공시가 확산되면 조합원과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노동조합의 민주성과 자주성이 한층 더 높아지고,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투명성이 제고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세종=나상현 기자 na.sang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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