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천 도시’ 비스바덴 빛내는 양버즘터널…도시에 품격을 더하는 가로수
비스바덴(Wiesbaden) 중앙역에서 정문을 빠져나오면 건널목 앞으로 넓은 녹지 공간이 펼쳐진다. 라이징어-안락겐 주립공원(Stadtpark Reisinger-Anlagen)이다. 4~5층 높이의 낮은 건물들 사이에 잔디광장이 넓게 자리를 잡았다.
공원 가까이 들어서면 산책로를 따라 여유롭게 걷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잔디 위를 무리지어 다니는 새, 유럽풍 조각 사이로 흘러내리는 분수는 일대에 활기를 자아낸다. 공원은 광활한 느낌과 함께 관문 녹지로서 풍성하고 여유로운 도시의 첫 인상을 만들어낸다.
비스바덴은 독일 남서부 헤센 주에 위치했다. 유럽의 각 도시를 연결하는 프랑크푸르트(Frankfurt)가 헤센 주의 가장 큰 도시라면, 이곳은 헤센 주의 주도다. 28만명이 거주하며, 면적(203.9㎢)은 제주시 애월읍과 비슷하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온천지로 유명한 휴양도시인데, 프랑크푸르트공항에서 기차로 40분 거리에 위치해 독일의 다른 지역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당일치기 여행지로 즐겨 찾는다.
주립공원을 오른쪽으로 두고 북쪽으로 5분 가량 걸으면 비스바덴의 번화가 빌헬름거리(Wilhelmstraße)가 나온다. 지난 8월 비스바덴을 찾았을 때에는 시가 주최하는 시티 바이애슬론 경기 무대 설치가 한창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곳곳에 경기 구역을 나타내는 철제 울타리가 설치되고, 빌헬름거리와 가까운 시청사 주변 광장에는 맥주가판 100여곳이 영업을 준비 중이었다.
빌헬름거리는 라인하르트 에른스트 박물관(Museum Reinhard Ernst)에서 손넨베거거리(Sonnenberger Straße)까지 이어지는 900m 구간이다. 고급 상점가가 모여 있다. 비스바덴에서 가장 번화한 구역이자 가장 활기가 넘치는 전통거리이면서, 가로수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이곳은 양버즘나무가 2열로 식재돼 나무 터널을 형성하고 있다. 그 아래로 여유롭게 길을 걷거나 벤치에 앉아 쉬는 시민들을 볼 수 있다. 여름이지만 햇빛을 피하기 위해 급하게 발걸음을 재촉하는 이들은 보기 어렵다. 휴대폰을 들고 이리저리 검색 삼매경에 빠진 이방인들에게도 도시의 거리는 편안하다.
거리에 나무와 벤치 외에 불필요한 장식 구조물은 없다. 맞은 편 보도에는 가로수 대신 꽃 화단이 상점가를 장식하고 있다. 색색의 꽃은 굴곡과 장식이 많은 유럽풍 건물과 어우러지며 거리를 한층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 보도 폭은 가로수가 식재된 곳이 맞은 편 상점가보다 3배 가까이 넓다.
비스바덴 시는 전체적으로 가로수를 집중 식재해 녹지가 주는 청량감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도심 가로수를 2~3열로 심고, 나무 가지를 터널 형태로 관리해 보행로와 주차장에 최대한 넓은 그늘을 제공한다. 가로수 식수 공간은 보도블록을 덮지 않고 모래나 자갈, 풀 등으로만 마무리해 가로수 생장이 잘되도록 한다. 필요에 따라 가로수 보호대와 수분 및 산소공급시설을 설치해 가로수의 생육 기반 관리를 하고 있다. 수목에는 고유 개체번호가 붙는다. 시는 매년 개별 나무의 활력도를 조사하고, 결과에 따라 관리계획을 수립한다.
빌헬름거리의 경우 밤머댐공원(Warmer Damm)과 연결되는 동쪽 구간에 가로수를 심어 녹지를 집중시켰다. 밤머댐공원은 규모가 4만7000㎡, 폭과 길이가 각각 200~250m에 불과하지만 시내 중심지를 관통하면서 시민과 관광객들의 이용 빈도가 매우 높은 공원이다. 사방에 울타리가 없어 빌헬름거리의 가로수 보도와 수평으로 연결된다. 도시를 처음 찾은 여행자들은 녹지가 주는 청량감이 역 앞 주립공원에서 빌헬름거리까지 이동 동선을 따라 길게 이어진다고 느끼게 된다.
시는 가로수나 공원 운영의 가장 중요한 목적을 시민들의 힐링에 두고 있기 때문에 나무를 심거나 관리할 때에 실용성에 주안을 둔다. 시민들이 나무를 베어내는 것에 민감하기 때문에 거대한 나무를 벌목해야 할 경우 그 이유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도록 나무의 상태를 목질측정기와 같은 기기를 이용해 과학적으로 파악하고 관리하는 일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비스바덴’이란 도시명은 ‘푸른 녹색 잔디에서 목욕을 즐긴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비스바덴은 도시의 78%가 공원과 골프 코스 등 녹지로 이뤄졌으며, 작은 도시에 26개의 온천이 있다. 이 도시에서 가로수와 공원을 비롯한 녹지는 유럽의 전통적인 고급 온천 휴양도시로서 비스바덴의 이미지를 드러내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도 하다.
가로수가 지역을 상징하거나 도시에 품격은 준 사례는 우리나라에서도 찾을 수 있다. 영화 ‘와니와 준하’에서 와니가 아버지와 함께 차를 타고 지나가는 장면이 촬영된 곳, 바로 담양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다.
원래는 담양과 순창을 연결하는 국도였다. 도로 공사로 가로수 180그루가 벌목 위기에 처하자 주민들이 크게 반대했고, 기존 도로 옆으로 새 국도가 뚫리면서 산책할 수 있는 길로 조성했다. 가로수길의 총 길이는 2.1㎞, 487주의 키 큰 메타세쿼이아가 양쪽 길가에 자리하고 있다.
담양은 1972년 당시 내무부 시범 가로수 식재 구간으로 선정되면서 담양~순창 간 국도에 3~4년생 메타세쿼이아 1300본을 식재했었다. 당시만 해도 나무가 자라 담양이라는 작은 도시를 유명하게 해 줄 줄은 아무도 몰랐다.
시간이 지나 어린 나무는 성목이 됐다. 연인들은 이곳에서 행복한 순간을 기록하고, 일대를 지나는 차들은 나무 터널이 만든 초록 그늘에 오래 머물기 위해 속도를 늦춘다. 지난해에만 46만2348명이 담양을 찾았다. 전체 주민(4만5445명)의 10배가 넘는다.
담양군은 최근 맨발로 걷는 어싱(Earthing) 열풍을 반영해 가로수길 일부 구간에 흙길을 조성했다. 길게 뻗은 메타세쿼이아는 매 계절 다른 색감으로 도시를 물들이며, 대나무와 함께 생태도시 담양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지역의 상징이자 시민들의 자부심이 되었다.
비스바덴·담양=글·사진 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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