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인 미만 중처법 적용' 3개월 앞으로…정부는 '적용 유예' 만지작
직원 수 40명 규모의 작은 행사대행업체를 운영하는 최모(46)씨는 내년부터 새롭게 적용받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고민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법안에 모호한 내용이 많은 데다 제조업 중심으로 짜여있어 다른 업종으로선 대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컨설팅도 받아보고 있지만, 형식적인 수준에 그쳐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최씨는 “주업무인 공연·행사용 가설무대 설치는 그야말로 시간 싸움인데, 법을 그대로 적용받으면 현장 운영에 애로가 생길 것”이라며 “당연히 안전은 중요한 문제지만, 정작 안전과 동떨어진 서류 작업에만 치중하게 될 것 같다”고 토로했다.
내년 1월 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5인 이상 50인 미만(건설업 공사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되면서 중소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당초 50인 이상 사업장만 대상이었는데, 2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소규모 사업장까지 범위가 늘어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적용을 유예해야 한다’는 경영계와 ‘즉각 적용해야 한다’는 노동계 목소리가 맞서고 있다.
중소기업들의 가장 큰 우려는 아직 법 적용에 대한 대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서정헌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실장은 24일 한국노총이 주최한 중대재해처벌법 현장적용 토론회에서 “작은 기업에 처벌 잣대를 들이대면 대부분의 사업주가 처벌만 받을 뿐, 실질적인 산재 감소에는 실효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며 “최소 2~3년은 법 적용을 유예하고, 중소기업이 안전에 비용을 투자하고 인력을 고용할 수 있는 여력과 조건을 만들어 주기 위해 정부·지자체·대기업 등이 함께 지원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현행법이 모호한 탓에 대비하는 것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승태 한국경영자총협회 산업안전팀장은 “산업안전보건법과 달리 중대재해처벌법은 모호한 규정이 너무 많고, 외부의 단기 지원만으로 (중소기업이) 의무이행 관리를 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소규모 기업이 안전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방안을 모색하고, 중소기업 실정에 맞게 법률 및 시행령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노동계에선 전체 산업재해의 80%가 5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만큼 적용 시점을 늦춰선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으로 강제해야 안전보건 체계가 구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서강훈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 선임차장은 “추가적인 유예를 둔다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단순히 사람 수로 차등하는 것”이라며 “즉각적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하고 과거 수준에 머무는 안전보건규제를 강화해 실질적인 안전보건이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여당은 우선 ‘적용 유예’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12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적용 유예와 관련해) 현장에서 노사와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보니 이 부분은 좀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며 “예산이나 인력 등 지원을 많이 했지만, (확대 적용 대상인) 83만개 사업장 중 40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고 밝혔다. 환노위 여당간사인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은 적용 시기를 2년 늦추는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현행 중대재해처벌법이 실질적으로 산재를 줄일 수 있도록 실효성 있게 손질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지적한다. 고용부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재해 피해자는 13만348명으로, 전년 대비 7635명 증가했다. 사망자 수도 143명 증가한 2223명을 기록했다. 지난해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재해자와 사망자 모두 늘어난 것이다.
법무법인 율촌의 김관우 수석은 “현재 준비 상태로 볼 때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을) 2년 유예한 이후에도 지금과 같은 상황일 것으로 보인다”며 “시행령 개정을 통해 현실적으로 소규모 사업장에서 실행 가능한 항목 위주로 적용하고, 공동 안전전문 인력 채용을 검토하는 등 실질적인 예방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명구 을지대 보건환경안전학과 교수도 “문서 위주의 행정력 소모를 최소화하고, 실효성 있게 이행할 수 있도록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나상현 기자 na.sang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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