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거물들 "데이터 보라, 경제 빠르게 둔화"…美국채도 급락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가 23일(현지시간) 연 5% 선에 오른 뒤 하락세로 돌아섰다. 미국 월가의 거물급 투자자들이 미 경기가 연내 둔화할 것이라는 경고를 이어가면서다.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이날 한때 5.02%를 기록했다. 이후에 아래로 방향을 틀어 4.8%대로 떨어졌다. 뉴욕증시는 혼조세를 보였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0.27%)는 올랐지만,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0.58%)와 S&P500지수(-0.17%)는 전장보다 떨어졌다. 시장이 국채 금리를 경계하면서 주요 기업들의 실적 발표를 주시한 영향이다.
이날 국채 금리가 하락한 이유는 월가 거물급 투자자들이 미국 경기 하강을 경고한 여파다. 헤지펀드계의 거물인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 캐피털 회장은 엑스(X·옛 트위터)에 글을 올려 "(금리 상승 때 이익을 보는) 채권 공매도 포지션을 모두 청산했다"고 밝혔다. "현재의 장기 금리 수준에서 공매도를 유지하기는 위험이 너무 크다"는 이유다. 이어 "경제는 최근 데이터가 시사하는 것보다 빠른 속도로 둔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애크먼 회장은 지난 8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장기화로 채권 금리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30년 만기 미국 국채를 공매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제는 애크먼 회장이 "더는 금리 상승에 베팅하지 않는다"고 입장을 바꾼 것이다. 최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으로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투자자들이 안전 자산인 미 국채 매입을 늘릴(국채 금리는 하락) 수 있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월가의 '채권왕'으로 불렸던 유명 투자자 빌 그로스도 미 경제가 둔화할 것이란 전망에 힘을 보탰다. 그로스는 이날 엑스에 올린 글에서 "지방은행의 대학살과 오토론(자동차대출) 연체율이 역대 최고 수준으로 오른 것은 미국 경제가 유의미하게 둔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며 "4분기 침체를 예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금리를) '더 높이, 더 오래(H4L·higher for longer)'는 어제의 주문(mantra)이 됐다"고 말했다. 경기가 둔화하면 국채 금리가 더 오르긴 어렵다는 '고점론'인 셈이다.
하지만 미 국채 금리가 더 오르거나, 높은 수준을 지속할 수 있다는 전망도 여전하다. 탄탄한 소비·고용 덕에 미 경제가 회복력을 보이기 때문이다. 오는 26일 미국의 올해 3분기 국내총생산(GDP) 발표를 앞두고 골드만삭스(3.7%→4.0%)와 하이 프리퀀시(4.4%→4.6%) 등은 성장률 전망치를 올렸다. 인플레이션이 지난해보다는 완화했지만, 여전히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목표치(2%)보다 높다는 점도 '고금리 장기화' 전망을 뒷받침한다.
브랜디와인글로벌의 트레이스 첸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채권 금리 상승은 단지 경제 호조 때문만은 아니며 훨씬 구조적"이라면서 "(미 정부의) 높은 재정 지출 때문에 금리는 더 오래, 더 높게 유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Fed는 최근 국채 금리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지난 19일 "국채 금리 상승이 지속하면 제한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릴 필요성이 줄어들 수 있다"고 했다. 국채 금리는 가계와 기업, 정부의 차입 비용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딘 마키 포인트72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Fed가 5%라는 수치 자체에 큰 비중을 두지는 않지만, 국채 금리 급등에 확실히 주목하고 있다"고 짚었다.
서지원 기자 seo.jiwo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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