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만난 스승과 제자…‘반도네온 거장’ 마르코니와 고상지

어환희 2023. 10. 24.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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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여 개의 키를 눌러 만들어내는 140가지 소리. 탱고 음악의 상징, 반도네온은 흔히 ‘악마의 악기’로 통한다. 연주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19세기 독일인 하인리히 반트가 고안했고, 이후 이주민들에 의해 아르헨티나로 전파됐다는 이 악기는 생김새가 아코디언과 비슷해 간혹 오해를 받기도 한다.

주름통에서 나오는 공기의 힘으로 연주하는 아코디언과 달리 반도네온은 키를 누르는 자체로 소리를 낸다. 스타카토 등 짧은 연주가 가능해 듣는 이에게 보다 정교하고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다만, 피아노 건반처럼 음계가 순차적으로 배치돼 있지 않은 데다 같은 키를 누르더라도 손의 각도, 주법, 또는 앞서 연주한 음에 따라 다른 소리를 내기 때문에 연주가 쉽지 않다.

지난 12일 마포아트센터에서 만난 반도네온의 거장 네스토르 마르코니(우)와 그의 제자 고상지(좌).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반도네온의 세계적 권위자 네스토르 마르코니(81) 이름 앞에 ‘테크니션’이 붙는 이유다. 그는 누에보 탱고(Nuevo Tango·새로운 탱고)의 창시자 아스토르 피아졸라(1921~1992) 생전에 함께 연주했고, 2008년부터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의 탱고 오케스트라 지휘를 맡고 있다. 국내 정상의 반도네온 연주자이자 제자 고상지(40)는 “마르코니 선생님의 연주는 전 세계 모든 반도네오니스트들의 교본과 같다. 극도의 테크닉과 경지에 이르는 연주로 감동을 준다”고 격찬했다.

마르코니는 이달 경기 부천시(11일)·연천군(14일), 서울 마포구(15일)에서 세 차례에 걸쳐 탱고 공연을 열었다. 고상지가 게스트로 등장해 깜짝 듀오 무대를 꾸미기도 했다. 처음 한국을 찾은 그를 지난 12일 서울 마포문화재단에서 만났다. 스승의 인터뷰 소식에 고상지도 한달음에 달려왔다.

Q. 첫 내한이다. 한국에 대한 인상은 어떤가.
마르코니=“근처인 일본까진 와 봤지만, 그간 한국을 올 기회가 없었다. 처음 방문하는 나라라 사실 걱정이 됐고 신경이 예민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전혀 예상 밖이었다. 한국은 상냥하고 예의 바른 나라다. 가장 놀랍고 감동적이었던 것은 관객들의 반응이었다. ‘무대를 좋아하겠지’ 짐작은 했으나 이렇게 환호해주실지는 몰랐다. 한국과 아르헨티나는 다른 나라지만, ‘탱고’ 안에서는 비슷한 문화를 공유할 수 있겠다고 느꼈다.”

Q. 스승 마르코니와 처음으로 함께 무대에 올랐는데, 어땠나.(※인터뷰 전날인 11일 부천아트센터에서 첫 공연이 있었다.)
고상지=“반도네온을 배우기 위해 카이스트 자퇴 후 2009년 아르헨티나로 떠났다. 탱고 오케스트라 학교 ‘에밀리오 발카르세’ 입학 전형 때 마르코니 선생님을 처음 만났다. 당시 학교의 총디렉터였던 선생님은 심사위원 중 한 분이셨다. 과거에도, 지금도, 반도네온 연주를 가장 잘하는 분이라 생각한다. 선생님과 함께 연주하고 무대를 꾸민다는 것은 저에겐 황금 같은 기회다. 감히 소감을 얘기하기도 민망하다. 긴장이 안 됐다면 말도 안 되고, 최선을 다했다.”

지난 15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첫 내한 공연을 연 반도네온 연주자 네스토르 마르코니. 사진 마포문화재단

Q. 한국에서 반도네온은 낯선 악기다. 반도네온의 매력은 무엇인가.
마르코니=“반도네온은 탱고를 가장 잘 나타내는 악기다. 과거 클래식, 전통 음악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했었는데, 탱고가 나 자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반도네온에 끌렸다. 악기 소리에 사람을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다. 열 살 때 아버지가 반도네온을 가져오셨을 때, 본격적으로 연주해봐야지 생각한 적이 없는데도 계속 악기를 만지작거리며 이것저것 눌러봤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시작했고, 이제 탱고를 표현하는 데 있어 반도네온의 소리는 곧 내 목소리이기도 하다.”

Q. 피아졸라 같은 거장들과 공연했고, 피아니스트 오라시오 살간(1916~2016)이 결성한 팀 ‘킨테토 레알(Quinteto Real)’에서도 연주했다.
마르코니=“탱고를 하는 사람들끼리는 모여서 연주하는 기회가 늘 있다. 함께 연주하며 많이 배운다. 피아졸라의 경우, 탱고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많은 영향을 받기도 했다. 각자 개성이 뚜렷한 음악가들이라 다툼과 갈등이 생길 법도 한데, 그런 부분이 전혀 없었다. 한 팀으로 오래 지내지 않아서 이렇게 화목한 관계가 유지되는 걸까, 서로 얘기를 나눈 적도 있었다.”

Q. 학교에서 마르코니는 어떤 스승이었나.
고상지=“연주뿐 아니라 작곡·편곡 활동에 있어서 내게 가장 영향을 많이 주신 분이다. 학교에서 뵌 것과 별개로 개인적으로 선생님 음반을 많이 들었다. 선생님만의 독특한 리프(riff·반복 악절), 코드 등을 워낙 많이 듣다 보니 나중엔 몸에 배서 작업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그 스타일이 나오더라. 최근 가수 김동률의 노래를 편곡했는데, 선생님 음악 스타일의 느낌을 담아 작업하기도 했다.”

이어지는 제자의 칭찬에 마르코니는 “역량을 발휘하는 데 (제 가르침이) 긍정적이길 바랄 뿐”이라고 화답했다. 반도네온과 탱고를 즐기는 법을 묻자 그는 “많이 들어야 매력을 알게 된다”는 정답을 꺼냈다. “음악은 듣는 이의 마음이 얼마냐 열려 있느냐에 따라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이라면서 “탱고를 낯설다고 마음의 문을 닫기보단 꾸준히 듣는 기회를 만든다면, 그 매력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어환희 기자 eo.hwa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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